안녕하세요 선생님. 《제 얘기가 그렇게 음란한가요?》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섹스 칼럼니스트 은하선입니다. 2015년에 《이기적 섹스》라는 책을 냈고, 방송이나 글, 강의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섹슈얼리티에 대해 이야기해왔습니다. 《이기적 섹스》를 냈을 때는 ‘와, 내가 하고 싶은 말 다 했다. 이제 사람들이 책 읽겠지.’ 이런 오만한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사실 북토크를 진행해도 책을 읽고 오는 분들은 많지 않거든요. 그만큼 책을 읽어주시는 건 감사한 일이고요. 우리는 모두 바쁜 현대인이니까요. 그럼에도 제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그 덕분에 또 이렇게 두 번째 저서도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10년 만에 펴내는 단독 저서라니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더군다나 이번엔 은하선이라는 한 사람을 굉장히 세세하게 드러내는 책이에요. 섹스 칼럼니스트, 페미니스트로서 시달렸던(?) 온갖 시끄러운 일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은데, 어떤 마음과 생각으로 이 책을 쓰셨나요?
사실 이 책이 이렇게 늦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중간에 소송도 세 건이나 생기고 여러모로 복잡한 마음에 원고를 썼다 고쳤다 하다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세 건의 소송 중 두 건은 성폭력 관련 소송이었는데, 그중 하나는 또 제가 그 사건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민사였어요. 도와주시던 변호사님도 그렇고 주변에서는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마음이 그렇지 않더라고요.
첫 번째 책인 《이기적 섹스》에는 오로지 섹스 이야기만 응축해서 넣었어요. 제가 겪었던 성폭력이라거나 이런 일들을 일부러 삭제했는데, 그래서인지 책이 나온 이후 제가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무슨 은하선이 성폭력이냐. 미투에 숟가락 얹는 거냐. 섹스를 즐기는데 무슨” 하는 식의 말들을 참 많이 들었지요. 그래서 두 번째 책에는 꼭 성폭력 관련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물론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요.
소송이 진행 중이었고 판결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어쩌면 책에 그 내용을 넣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어요. 결과적으로는 소송이 잘 해결되었고, 책에는 쓰지 못한 내용이지만 소송 끝나고 몇 년 뒤에 가해자가 사망했어요. 누군가의 죽음으로 인해 제가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었지만, 그 후로는 이 사건에 대해 더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어요. 마음이 편안해지니 첫 책에 비해 저를 세세하게 드러내는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극히 은하선의 시점에서 쓴 글들이에요.
프롤로그 마지막 문장이 “인생, 까짓것 망해봤자 은하선이니까”(15쪽)예요. 어째서 본인의 인생을 망했다고 말씀하신 걸까요?
제가 제 인생을 망했다고 본다기보다는 대중들의 시선을 그대로 쓴 문장인데요. 어떤 사람들은 텔레비전에 나오던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 망했다거나 팔리지 않는다고 쉽게 생각하더라고요. 물론 그게 그렇게까지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웃음) 매체에 더 이상 얼굴을 내보이지 않아도 삶은 지속되거든요. 그런데 매체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내밀었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입에 쉽게 오르내려도 되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어찌 됐건 지금의 나의 삶을 누가 뭐라건 지속하겠다는 의미에서 쓴 문장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정상성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태어난 누군가의 삶은 이미 마이너이고 망한 상태라고 쉽게 폄하당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궤도에서 벗어난 삶, 즉 망한 삶 그것도 충분히 망한 대로 의미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저는 어쩌면 그 망함의 최고점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렇다면 망해도 은하선 정도니까. 살아봐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 소수자들? 이런 의미도 담고 싶었고요.
섹스 칼럼니스트와 미투, 이 두 가지를 말하는 글이 두 편이나 들어 있죠. 꼭 미투가 아니더라도 성폭력 관련한 글이 적지 않아요. 선생님께 미투는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제가 사랑하는 음악, 아주 어릴 때부터 전공했던 오보에 레슨 선생님으로부터 겪은 성폭력이라 그 과정에서 생긴 많은 일들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 근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송을 진행하는 사이에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라거나 타인의 괴롭힘 안에서 내가 힘들어졌을 때 그 힘든 감정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그런 여러 가지를 어쩔 수 없이 배웠어요. 그건 정말 슬픈 일이지만 사실이기도 하거든요. 클래식 음악계라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공간 안에서 그 가해자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보살핌을 받게 되는지를 보기도 했고요. 음악을 할 수 없겠다는 생각, 불안감, 여러 가지 복잡함 안에서 그 감정들을 다루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하기도 했어요.
성폭력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이 온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그런 일이 생겼을 때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고 누군가와 연결되는 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래야 일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요. 특히나 클래식 음악계처럼 보수적인 곳일수록 성폭력 사건이 생겨도 밖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피해자만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제 글을 읽고 누군가 조금이라도 힘을 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책에서 더 힘줘서 써보았습니다.
젠더토크쇼를 표방했던 EBS 〈까칠남녀〉가 여러 논란(?)과 함께 결국 폐지되었죠. 고정패널이었던 선생님이 혐오세력의 공격으로 중도하차를 하셨고요. 이미 2018년에 한국 대중문화도 일보 진전을 했던 셈인데, 지금은 오히려 이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가 더 어려운 사회가 돼버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책을 보면 방송을 매우 즐기셨던 것으로 읽혀서 여러모로 아쉬우셨을 것 같아요. 하차 당시와 이후 폐지를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당시에 방송국 앞에 혐오세력이 진을 치고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로비에 드러 누워서 기도를 하기도 했고요. 직원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정문을 막는 바람에 후문으로 오가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어요. 도대체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었죠.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하고 방송이 끝나게 되어서 아쉽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 다시 보면, 그렇게 끝나게 되어서 혐오세력의 진상을 사람들이 더 강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성소수자 반대한다는 피켓을 들고 방송국 앞에 서 있는 사람들까지가 방송의 완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요. 사람들이 농담처럼 퀴어문화축제의 완성은 부채춤 추고 북치는 혐오세력이라는 말을 하잖아요. 비슷한 거죠. 물론 당시에는 무척 괴로웠어요. 지금은 지났으니 하는 말입니다. 더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많은 혐오의 시간들을 겪으며 세상이 발전했는지, 그 발전의 시간에 누가 있었는지를 중요하게 기억하지 않을까요?
대표하려 든 적 없으나 하필이면(?) 텔레비전에 나가는 바람에 페미니스트, 성소수자를 대표하게 되고 이 때문에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혐오세력의 공격에 시달리셨어요. 개인이 어떻게 견뎠을까 싶을 정도로 엄청난 난장판이었는데, 어떻게 그 시간을 통과하셨나요?
진짜 마음이 심란했을 때, 그러니까 2018년에 비건 식당을 오픈했어요. 공간이 진짜 자그마한데 바쁠 땐 무지 정신없거든요. 식기세척기가 없어서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주문받고, 전화받고, 서빙하고, 설거지하고, 칵테일 만들고 여러 가지 일을 멀티로 하다보니 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은하선 때문에 가게에 오는 손님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던데, 손님들은 대부분 제가 누군지 관심도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바쁜 일상이 그 괴롭힘을 지나올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어요. 물론 제 원래 성격이 잘 먹고 잘 자고 그런 편이라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요.
당연히 누구나 저처럼 그 흙탕물을 지나올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괴롭힘을 개인한테 감당하라고 말할 수는 없죠. 결국은 은하선 개인을 향한 화살이 아닌 퀴어와 성소수자, 여성, 페미니스트를 향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사이의 일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책이 나오기 전까지 어떤 독자분들께 가닿게 될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이번 책을 통해 또 어떤 분들과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제 글을 읽으시면서 글쓴이의 의도보다 읽으시는 분 각자의 의미를 찾으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