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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코미디 기술
출간 전 연재 8화(연재 마지막 화): 클럽 대신 카페에 가라
📩 금개 지음
8화(연재 마지막 화) 클럽 대신 카페에 가라
나는 무도키즈[1]다. 아무리 페미니즘과 미국 코미디로 덧칠해도 지울 수 없는 사실이다. 15세 혜지는 문제풀이 연습장에 무도 멤버들의 별명을 낙서하며 킬킬거렸고, 그저 친구들을 경악하게 만들기 위해 아저씨들을 커플로 엮어 팬픽을 썼다. 〈무한도전〉은 내가 말하고 관계 맺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격이 활발하게 형성되는 청소년기 10년 동안 하나의 프로그램만 봤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 나에게는 기회가 한정되어 있었다. 내가 혼자서 바보상자에 풍덩 빠지지 않도록 배려해준 엄마 덕분이었다. 엄마는 텔레비전 연결선을 뽑아 핸드백에 챙겨서 출근하는 타입이었다. 나에게 공식적으로 허락된 한국 방송은 일주일에 하나뿐이었고, 나는 〈1박2일〉 대신 〈무한도전〉을 골랐다.
나무위키에는 ‘무도충’이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무한도전〉이 최고의 예능이고, 다른 예능들은 그렇지 못하다는 우월감’에 빠지는 사람이다. 내가 딱 그런 부류였다. “〈1박2일〉이나 〈스타킹〉 식으로 우악스럽게 웃기는 건 별로지~!”라면서 ‘무도충’ 클럽에 소속된 것을 우쭐해했다. 거의 매주 달라지는 기획에서 멤버들의 캐릭터와 관계성이 발전해 나가는 구성이 시트콤과 닮아서 좋았다.
지하철 상대로 달리기, 목욕탕 물 빨리 퍼내기 등의 어처구니없는 도전에 진지하게 임한다는 초창기의 슬랩스틱 컨셉을 지나 실내 세트장의 토크쇼 형식으로 바뀌면서 〈무한도전〉에도 여성들이 등장하게 된다. 못난 남자들의 잔치에 여성이 등장하자 세계관에는 균열이 생겼다. 김연아와 김태희 등의 미녀 스타들이 게스트로 나오면 멤버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멤버들이 평소의 공격성을 드러내지 못해 재미없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미녀가 등장하면 웃기지 않았다.
미녀가 아닌 여자들이 등장해야 웃겼다. 개그우먼 동료들이 ‘못생긴’ 역할을 자처할 때야 무도 멤버들과 맞붙어 웃음이 터졌다. 무도 멤버들이 대놓고 소개팅하고 싶지 않아 하는 송은이가 울분에 차서 소리 지를 때처럼. (“난 뽀뽀하고 싶지 않아 제동이랑!!!”) 아예 못생김을 주제로 열린 ’못친소 페스티벌’에도 여자 참가자가 있었다. ‘못생김 경쟁’은 대부분의 스포츠처럼 혼성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여성에게 내려지는 ‘못생겼다’라는 평가가 훨씬 모욕적인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장윤주는 예쁘다. 슈퍼모델 출신이란 건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외모를 가졌다는 뜻 아닌지? 장윤주는 못생겼다는 라벨링을 이겨낼 만한 명분을 이미 갖췄기 때문에, 다시 말해 예뻐기 때문에 오히려 ‘못친소 레이디’가 될 수 있었다.
〈무한도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다른 슈퍼모델 여성으로는 홍진경이 있다. 〈무한도전〉의 새로운 멤버를 선정하는 공개 오디션 기획 ‘식스맨 프로젝트’의 유일한 여성 홍진경은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남성복을 입은 채로 등장했다. 주말 예능 클럽의 입장 조건이 ‘남자일 것’이라는 비밀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이름부터 식스‘맨’인 그 자리는 당연히 남장 신사 홍진경의 것이 아니었다.
자라는 동안 〈무한도전〉에 나오는 여자들을 관찰하며 내 안에는 ‘예쁜 여자=웃는 여자, 못생긴 여자=웃기는 여자’라는 도식이 생겼다. 장윤주나 홍진경처럼 ‘개성 있게 예쁘지만 못생겼다고 주장하며 조금은 웃기는 여자’ 카테고리도 작게 있었다. 아쉽게도 나는 슈퍼모델은 아니었지만, 이 근처 카테고리를 공략하면 되려나? 막연히 생각했다.
여자 중학교에 다닐 때가 살면서 가장 공격적으로 웃기고 웃은 시절이었다. 우리는 〈무한도전〉의 짝퉁 취급을 받던 〈무한걸스〉와는 달랐다. 나와 친구들에겐 비교 대상이 없었다. 우리가 원본인 세계관에서는 서로 정신없이 놀리고 막말하면서 웃고 웃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모든 게 달라졌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그 쪽지’를 발견한 것이다. 한국에서 학교생활을 해본 여자라면 ‘그 쪽지’의 변주를 통과의례처럼 거쳤을 것이다. 남자애들의 치기 어린 장난이라고 가볍게 여겨지지만 (적어도 우리 담임은 그랬다. 아닌가? 너무 수치스러워서 이르지도 못하고 내가 혼자 넘겨버린 거였나?) 여자애들의 외모 정병에는 불을 붙이는 사건. 분수를 모르는 남자애들은 자고 싶은 순서대로 여자애들을 줄 세워 쪽지에 썼다. 그 쪽지에 이름을 쓴 사람이 아니라 이름이 적힌 사람이라서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청천벽력으로 실감했다. 내가 ‘무도’가 아니라 ‘무걸’로, 지상파에서 케이블 채널로 밀려날 거라는 나쁜 예감이 들었다. 나는 언제나 교실 주변부 말고 정중앙에서 웃기고 싶었는데 여자였다. 당장 남자가 될 수는 없으니 남자들과 동맹을 맺어야 할 것 같았다. 동시에 그 쪽지의 순위권에 들고 싶은 것도 같아서 마음이 바빴다.
다행히도 입시 클럽에 입장하자 각종 욕망이 찬물 끼얹은 듯 잠잠해졌다. 여기서는 철저하게 금욕적 생활양식이 요구되었다. 학교는 학생들이 거세된 개체로 지내기를 종용했다. 연애하다가 교무실에 불려가 헤어지겠다는 각서를 쓴 커플도 있었고 스킨십이 소문나자 퇴학당한 커플도 있었다. 나는 모범생답게 ‘대학 가서 하면 돼’라는 달콤한 유예에 몸을 맡기고 일상에서는 성애적인 욕망을 기꺼이 없앴다. 애꿎은 남자 아이돌 멤버 두 명에게 더러운 망상을 전부 외주 주고 교실의 남자애들과는 죽마고우처럼 지냈다. 아이돌 남자들에 비하면 현실 남자애들은 여러모로 실망스러웠으니 그들과 플라토닉하게 지내는 건 쉬웠다. 문제는 약속의 땅,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였다.
대학이라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는 연애하라는 정언명령이 있었다. 모든 성애적 행위가 유예된 척박한 광야 생활 동안 나는 가상의 남자끼리 하는 가상의 연애만 지켜보는 화분 같은 거였다. 그런데 대학에 오자마자 갑자기 내 몸으로 현실의 남자를 만나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한테도 그러지 않을 선택권이 있었는데…… 워낙 ‘대학 가서 연애’라는 최면에 깊이 빠진 나머지 그 밖을 상상하지 못했다. 일단은 여자처럼 보여야 했다. 갑작스럽게 왕 리본이 달린 머리띠를 착용하고 머리카락에 웨이브를 넣었다. 치마를 입고 발에 안 맞는 구두를 신고 삐걱대기 시작했다. 웃기고 싶은 욕망은 그대로인데 성적인 매력을 가지고 싶은 욕망 쪽이 엄청나게 치고 나온 것이다. 곤란한 욕망들의 각축장이 된 나는 학과에서 제일 웃긴 남자와 연애해버리기로 결심했다. 모두가 연애 혹은 섹스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어서 아무도 맘 편히 웃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연애를 해버리는 게 새 학기의 긴장을 해소할 유일한 출구로 느껴졌다.
웃긴 남자에게는 권력이 있다. 《남자는 왜 친구가 없을까》를 쓴 스탠드업 코미디언 맥스 디킨스는 “유머는 남성 우정에 있어 토템과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농담이 권력과도 결부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농담은 남성 관계를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이며, 상대방을 밟고 위로 올라가기 위한 경쟁에서 무력을 과시하는 것과 같다.” 내 첫 남자친구는 ‘알파’라고 단정짓기엔 다소 하자가 있었지만, 그를 중심으로 〈무한도전〉 같은 관계성이 형성되는 건 확실해 보였다. 나는 그 사람의 여자친구가 되는 선택을 통해 잠재적 연애 상대(못 웃기는 여자)로 전락할 가능성을 표면적으로 제거하는 동시에 웃기는 남자들의 무리에 편입되길 기대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이제 더 이상 연애 상태라는 원심력에 좀비처럼 이끌려가는 솔로 나라 여자 참가자로 살지 않아도 되기는 했다. 남자애들이 둘러앉아 지저분한 농담을 주고받을 때 나는 남자친구의 팔짱을 끼고 질세라 한술 더 떴다. 그러면 잠시 남자 클럽 특별 회원증이 손에 쥐어졌다. 남성성을 훔쳐 알파로 군림하는 기분을 드물게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연애를 통해 명예 남성 되어 웃기기’ 전략은 그다지 효과적으로 지속되지 않았다.
작가 크리스토퍼 허친스는 《여자들은 왜 안 웃길까?》라는 글을 썼다.[2] 비록 그가 백인 남성이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니 편견을 갖지 말고 들어보시라. 허친스에 의하면 여성에게 웃음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부차적인 문제이다. 여성은 웃을 일이 아닌 더 높은 소명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반면 남성의 경우, 다른 모든 비난보다 ‘안 웃기다’는 비난에 가장 참혹하게 무너진다.[3] 남자들에겐 농담이 거의 유일한 소통 방식이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로버트 프로바인의 실험에 의하면 여성은 남성의 농담을 들을 때 70퍼센트가 웃는 데 비해, 남성은 여성의 농담을 들을 때 38퍼센트만 웃는다고 한다. 같은 유머라 해도 여성이 더 반응을 잘 보이고, 남성은 애써 반응하지 않는 현상을 두고 《유머니즘》의 저자 김찬호 교수는 “여성의 유머 감각이 남성보다 높다”고 분석한다. 유머의 수용 능력 또한 유머 감각으로 보는 시각이다. 여성 코미디언 캐서린 라이언스는 의외로 "여성이 남성보다 웃기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코미디는 수용되는 사람에 의해 성립되기 때문이다. 팔짱 끼고 고개 돌린 관객에 대고 ‘네가 틀렸다는 걸 증명하겠어’라며 웃기기에 성공하기는 어렵다. 여자가 안 웃기다는 사실에 대해 입장을 철회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 다수인 세상에서 여자가 웃기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웃기는 여자 되기라는 나의 바람은 여러 맥락에서 난항을 겪고 있었다. 원피스를 입고 있는 나를 남자친구가 번쩍 들어 올려 내 속옷이 보였을 때 남자애들은 다 웃었지만 나는 그냥 얼굴이 빨개졌다. 남자친구 자취방에서 섹스하고 잘 치우지 않은 콘돔을 발견한 남자애들이 웃을 때도 그랬다. 걔들이 ‘일간베스트 저장소’ 사이트의 ‘유머 게시물만 공유’하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도 나는 초대받지 못했다. 예뻐서 욕망당하는 여자가 되는 것도 웃기는 것도 양쪽으로 실패하던 나날이었다. 웃을 일도 웃기고 싶은 마음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지나가는 선량한 시민들을 향해 ‘뭐가 좋다고 웃고 다녀……’라며 무표정으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한동안은 화만 내고 다녔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 이후였다. 이전까진 경쟁하듯 한마디 보태던 농담들에 “그런 건 웃기지 않습니다”라며 정색하는 걸 개인적인 사명으로 삼았다. 누가 즐거워 보이면 “여자들이 죽어가는데 웃음이 나와?”라며 다그쳤다. 갓 페미니스트 클럽에 입장했을 때는 이마에 ‘killjoy’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다녔다. 농담의 시대가 끝나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색하는 여자로서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은 원래 웃지 말자고 다짐했을 때 가장 많이 웃게 된다. 장례식장에서 앞에 있는 조문객의 구멍 난 양말을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상황과 비슷한 원리이다. 게다가 삶이 여러모로 팍팍해서 마른 장작처럼 건조하고 경직된 웃음 상태로는 금방이라도 바삭 부서질 것 같았다. 다행히도 그 시기에 존나게 잘 싸우면서도 잘 웃는 여자들을 알게 됐다. 그 여자들은 대부분 활동가였다. 무슨 단체를 만들고 깃발을 뽑고 각자 반찬을 싸 와서 나눠 먹으며 막 웃었다. 그들의 에너지는 기이할 정도였고, 함께 웃으면 마음이 편했다. 여기 끼면 되겠다 싶어서 얼른 여성 활동가 클럽에 가입했다.
그 소속은 오래가지 않았다. 갑자기 여자를 좋아하게 돼버려서 좀 더 구체적인 활동을 해야 했다. 이제 소수자성을 하나 더 얹은 프리미엄 단체를 찾아야 했다. 바로 퀴어+페미니스트 단체였다. 이쪽 동네는 지리적 특성상 견고한 집을 짓기는 어려워 보였다. 클럽인 줄 알고 들어갔더니 2주 뒤에 영업이 끝나거나 누가 죽어서 혼비백산 장례식장으로 바뀌곤 했다. ‘콜렉티브’, ‘프로젝트’ 등의 이름으로 간이 텐트 같은 게 엄청 많았는데 하여튼 그런저런 거처들을 드나들며 같이 웃을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어떤 여자애랑 눈이 맞아서 코미디 팟캐스트도 하게 됐다. 이걸 하면서는 여자이면서도 웃기는 주체가 될 수 있는 데다 여자들의 사랑도 받을 수 있어서 꽤 만족스러웠다.
소수자 마을 주민들은 웃을 일이 별로 없는 나머지 내가 하는 말에 웬만하면 웃어주고 싶어했다. 게다가 동네 특성상 광인들이 넘쳐났다. 보고만 있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광인들의 묘기, 광기를 다스릴 방법이 오로지 유머뿐이었던 재야의 고수들, 이미 ‘생존자 유머’라는 독보적인 장르를 개척한 구루[4]까지. 이 광기의 일부가 되어야 광대로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웃기는 일이 “삶의 근본이고 라이프스타일이며 젠더이고 섹슈얼리티이자 커뮤니티”[5]라고 말한 이반지하의 동네에 전입신고를 마치고는 생각했다. 이전의 방식으로는 안 된다. 이 광인들과 영원히 함께하려면 더 유연한 공동체를 상상해야 한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어떤 클럽에 소속되고 싶었다. 그건 확실한 정체성을 공유하는 무리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일이었다. 여자애들, 남자애들, 페미니스트, 퀴어 클럽에 가입 신청서를 내고 정식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클럽에서는 계속해서 나를 증명하고 정체성을 갱신해야 했다.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의 신분증을 확인해 입장을 제한하기도 했다. 이제는 클럽 소속을 ‘전부 취소(Never mind)’[6]하고 대신 카페를 차릴 예정이다. 클럽과 달리 카페는 방문이 자유롭다. 모두가 서로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지 않다.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쫙 빼입고 특정 성별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실 것과 자리를 선택해 앉고 언제든 나갈 수 있다. 혼자서 떠난대도 시끄러운 EDM이 남긴 이명을 들으며 허무함을 느낄 일이 적다. 원한다면 편한 차림으로 다시 돌아오면 되니까. 하지만 내가 말하는 카페는 스타벅스나 빽다방처럼 물리적인 장소가 아니다. 실제 ‘커피 카페’에 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영업시간에도 맞춰야 한다. 나도 모르는 새에 상당히 비윤리적인 대기업의 악행에 동참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내가 말하는 카페라는 개념의 출처는 인터넷 밈인데, 벌써 뭔지 알겠다면 당신은 나와 대화가 잘 통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인터넷을 좀 줄이는 게 좋겠다. 중간중간 먼 풍경을 바라보며 눈을 쉬게 해주거나.)
어제 XXX 카페 다녀왔습니다
XXX 카페가 열린 건 아니고요
그냥 카페에서 XXX 생각했습니다
카페에 간 건 아니고요
그냥 집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사실 커피도 안 마셨습니다
그냥 XXX인 상태입니다[7]
잠시 음미하는 시간을 갖자. 훌륭한 시 한 편과도 같은 밈이다. 나는 이제 어딘가에 소속되거나 클럽에 갈 체력도 없고 그저 생활 반경 안에서 ‘XXX 카페’를 연다. 친구들, 트친들, 직장 동료들, 유튜브 댓글창의 사람들, 시트콤의 방청객들과 함께 웃을 때면 일시적인 공동체가 생긴다. 이걸 대충 카페라고 부르자. 웃음 카페 동시 접속 사건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유머라는 건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면서 의미의 변주를 즐기는’ 고급 행위이기 때문이다.[8] 여러분도 이 글을 읽는 동안은 금개의 코미디 카페에 잠깐 와 있는 것이다. 모쪼록 머무는 동안 마음이 편한 곳이기를 바란다. 겉으로는 DM으로만 문의를 받는 힙스터 카페처럼 보이겠지만 어르신도 어린이도 올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다. 콘센트를 차지하고 오래 앉아 있거나 시끄럽게 떠들더라도 눈치 주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언젠가 여러분의 카페에도 초대되고 싶다. 그리고 대체 어떻게 생기게 된 카페인지 창업 스토리도 알게 된다면 좋겠다.
[1] 1990년대~2000년대생의 오랜 〈무한도전〉 팬을 일컫는 말.
[2] https://bit.ly/41TR05A
[3] 누가 ‘안 웃기다’고 말한 상처는 문신처럼 살갗을 파고들어 자리를 잡아 평생 간다. 진짜 남자-여자를 철저히 나눈 성차에 대해 생각하자는 게 아니라 ‘남성적’,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벤다이어그램의 동그라미 두 개를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4] 《나는 왜 이렇게 웃긴가》 (이야기장수, 2023) 를 쓴 퀴어, 다매체 예술가 이반지하를 일컫는다. 바로 다음 문장에 나오지만 그의 유머는 많은 퀴어들의 삶에 영향을 미쳤기에 한 번 더 강조한다.
[5] 이영경, 〈‘매운 사이다’ 같은 이반지하식 유머···정상사회의 견고함을 흔들다〉, 《경향신문》, 2023.6.6.
https://www.khan.co.kr/article/202306061851001
[6] 호영, 《전부 취소》, 읻다, 2024. 호영은 번역(translate)하는 젠더취소자(transgender)이다. 《전부 취소》의 영문 제목은 《Never mind》인데, 직역이 아닌 셈이다. 한글 제목과 괄호 안의 영문 제목이 나란히 있으면 SM엔터테인먼트에서 발표한 케이팝 노래 제목 같아서 그렇게 적어봤다. 대표적인 예시로 엑소의 〈중독(Overdose)〉이 있다.
[7] 원본 밈에서 XXX는 ‘진훈’이다. 진훈은 웹툰 〈가비지 타임〉의 배경이 되는 고등학교 이름이다. 아이돌, 2D 덕후들 사이에는 특정 인물의 ‘카페’를 열어 팬들끼리 기념하고 교류하는 문화가 있다. 실제 카페를 대관해 진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해당 밈의 원본 게시글은 삭제된 상태다.
[8] 김찬호, 《유머니즘》, 문학과지성사, 2018. “유머는 스킬이 아니다. 일정한 세계를 공유하면서 의미의 변주를 즐기는 정신이다. 그것은 자기를 상대화하는 용기, 주어진 상황을 낯설게 바라보는 관점을 요구한다. 타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그 움직임을 순간 포착하는 직관도 필요하다. 그것은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훈련해서 체득할 수 있는 요령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