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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읽고 굽고 놀려라
코미디에는 ‘로스팅(roasting)’이라는 형식이 있다. 직역하면 ‘굽기’인데, 상대를 불타기 전의 아슬아슬한 주제로 슬슬 열받게 놀린다는 점에서 실제 굽는 행위와 비슷하다. 우리나라 네티즌 용어로는 ‘딜 넣다’[1]가 적절하게 대응된다. ‘딜’이 실제로 상대에게 타격을 줬을 때 ‘긁혔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로스팅에서 긁히면 ‘탔다(burnt)’라는 표현을 쓴다. 대개 유명인이나 정치인을 놀리며 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조 바이든이 아직 미국 대통령일 때 백악관 만찬에서는 코미디언들을 초대해 로스팅 공연을 하라고 아예 판을 깔아줬다. SNL에서 시사 코너를 진행하는 콜린 조스트의 로스팅 첫 농담은 이거였다.
“제 고등학교 때 사진을 자료화면으로 쓰다니 너무하네요. 바이든에게는 할 수 없는 짓이죠. 조가 고등학생 때는 (사진) 기술이 발명되기 전이었으니까요.”
현직 대통령을 눈앞에서 놀리려면 얼마나 많은 고민과 홍보팀과의 소통이 필요할까? X-식민지 국민으로서 잘은 모르겠지만 하여튼 진짜로 문제가 될 만한 것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이로써 바이든의 나이는 놀려도 되는 것으로 판명났다. 바이든은…… 82세다. 그는 ‘고령 논란’에 대통령 자격을 의심받곤 했다. 하지만 콜린 조스트의 농담에 약간 당했다는 표정으로 박장대소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나이가 많다는 건 ‘진짜’ 문제가 아니게 된다.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사실이자 작은 약점이 된다. 수위가 강한 농담에도 웃은 로스티(roastee, 놀림당하는 사람)는 ‘난 이런 조크도 웃어넘기는 관대하고 유머러스한 사람이야!’라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킬 수 있다. 로스팅은 정치인을 한 나라의 통수권자나 걸어다니는 입법기관보다는 융통성 있고 재치 있는 개인으로 보이게 하는 정치 풍자에 종종 활용된다.
정치 풍자는 지적이고 고급스러운 장르로 인정되는 면이 있다. 일단 청자에게 정치에 관심이 있다는 느낌, ‘깨어 있는 시민’ 느낌을 준다. 게다가 보고 웃기까지 한다면? 시사 상식에 통달해 이 농담을 이해한 데다 혼란한 정치적 상황에도 피식 웃는 멋진 내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을 심지어 영어로 할 수 있다면? 나는 거의 매주 유튜브로 미국 SNL의 콜드오프닝과 위켄드 업데이트를 본다. 짜잔 제 얘기였습니다. 짱이죠? 미국 문화 애호가 한국인 영어 교사에게 박수! 감사합니다.
한편 여러번 시도했으나 한 번도 웃는데 성공하지 못한 프로그램은 〈SNL 코리아〉의 정치 풍자 스케치다. 현재 쿠팡플레이에서 미국 NBC의 판권을 받아 제작 중인 한국판 SNL의 정치 풍자는 대부분 실제 인물과 아주 비슷한 분장을 하고 말투를 모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나무위키에 인물을 검색하면 ‘논란’ 탭에 있을 만한 단어를 반복하며 말장난을 한다. 예를 들어 이재명으로 분장한 권혁수 배우가 식당 꽁트에서 ‘명태회’[2]를 시키거나, 주변인들이 재명-혁수에게 ‘사촌 짜장’[3]을 시키자고 긁는 식이다. 〈맑눈광이 간다!〉 코너는 젊은 여성이 국회의원에게 ‘일반인의 잔혹한 질문’을 하는 인터뷰 콘셉트다. 주로 ‘밸런스 게임’ 형태로 국회의원들에게 곤란한 선택지를 준다. 최근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을 데려다놓고 이재명에게 〈흑백요리사〉식 별명을 지어준다면 ‘정치하는 돌아이’와 ‘대장동 마피아’ 중 뭐가 낫겠냐고 질문한 것에서는 조금 헛웃음이 나왔지만 진심으로 재밌다고 생각한 농담은 없었다.
미국산이 원조 진짜 맛집이고 국산은 가짜라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물론 미국 문화에 대한 선망은 내 개인적 페티시라기보다 국가적인 현상에 가깝고 로스팅이라는 개념 자체도 미제이기 때문에 한국판에 대한 평가에 박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미국과 한국 SNL이 구사하는 풍자의 퀄리티 차이를 유의미하게 입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려는 건 진짜 아니다. 나는 한국 정치 상황이 재료라면 누가 와서 어떻게 구워 삶아도 맛을 느낄 수가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색인 퀴어 페미니스트 코미디언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초호화 예산으로 완전히 새로운 포맷의 코미디를 만든다고 해도 웃을 수가 없다, 한국 정치 상황이 주제라면. 나는 지금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웃음거리가 아니기를, 한 나라의 통수권자나 걸어다니는 입법기관으로 정확히 기능하기를 원한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 계엄을 선포했다. 정치 풍자라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아직 진행 중이다. 솔직히 이 시국에 코미디에 대해 쓰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계엄’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코미디 작가에게 어떤 위기를 주었는지…… 일단은 이 연재 원고의 발행 당일 새벽 1시까지 동료 작가 두 명을 괴롭혔으며 초고도 완성하지 못했다는 점을 밝혀둔다. 아 좀 봐주십쇼. 계엄 선포 당일이랑 토요일에 집회 다녀왔다가 공황 오고 그랬어요. 제게도 계획이라는 게 있었습니다. 여자친구한테 놀림당하다가 울어버린 에피소드로 가볍게 시작해서 원래 하던 펨 부치[4] 농담이나 계속하려고 했다고요.
원고는커녕 어느 하나에 집중하지도 어디에도 발붙이지 못하고 설익은 쌀처럼 붕붕 흩어지는 느낌으로 지낸 며칠 동안 정치에 관한 농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농담 1] 3일 밤 집회에서 국회를 떠나는 헬기를 보면서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채로 서 있었다. 동행인 활동가가 들고 있던 페미니스트 깃발이 그의 여혐보따리를 자극한 것인지, 지나가던 어떤 아저씨가 외쳤다.
“이건 쥴리 계엄이라고 불러야 해! 쥴리가 대통령 옆에서 술 먹이고 조종한 거야!”
그러고는 웃었다. 스스로를 대단히 재치 있다고 생각했을까? 여성과 성노동자 혐오를 한 큐에 해낸 고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나니 정신이 돌아왔다. 맞다…… 탄핵 시위라는 거 이런 거였지. 시위의 문제점? 사람이 너무 많다. 근데 사람이 적으면? 시위라는 게 성립하질 않는다. 당연히 여성혐오자, 호모포비아들에게 노출될 위험도 커진다. 근데? 안 나갈 수는 없다. 걸어서 트라우마 속으로……
[농담 2] 7일 토요일 집회에서는 내가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는 생각만 반복했다. 인파에 떠밀리는데 숨쉬기가 너무 어려웠다. 여대 깃발을 든 20대 여성들이 밀지 말고 천천히 움직이라고 소리지르고, 중년 남성들이 어느 학교에서 왔냐며 기특하다고 말 거는 광경을 보니까 눈물이 났다. 이거 내가 아는 장면 같아. 아니 나는 전혀 모른다…… 겨우 빠져나가서 섹시 산타복으로 갈아입고 이태원으로 출근했다. 요즘 주말 저녁에 일하는 레즈비언 가라오케 바는 ‘10.29 안전과 기억의 길’ 바로 옆 골목에 있다. 솔로파티를 진행하면서 농담을 던졌다.
“자격 없어도 연애할 수 있어요. 대통령 보세요. 저 오늘 옷 색깔(빨간색) 보고 오해하실 수도 있는데 아니에요. 오늘 탄핵 집회 다녀왔습니다.”
[농담 1]은 불쾌했고 명백한 여성혐오 발언이다. [농담 2]는 그냥 분위기를 띄워야겠어서 한 말이라 내가 전혀 즐겁지 않았다. 어떤 농담은 뒷맛이 씁쓸하다. 별로 웃고 싶지 않았던 일을 무리하게 웃음거리로 만들고 나서 돌이켜보면 상처 위에 임시방편으로 붙여두었던 테이프를 떼어내는 느낌이 든다. 계엄 상황에서의 정치적 농담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이 와중에도 진심으로 웃은 순간이 있었다는 걸 기록하고 싶다. 8일 저녁 집들이에서 친구들과 함께 아예 정치적 현실과 동떨어진 원고를 읽을 때였다. 계엄 사태에서 코미디 원고 쓰기가 얼마나 괴로웠냐면 친구들을 등장인물로 팬픽을 썼다. 챗gpt에 친구들의 단편적인 특징과 프로필을 넣고 시나리오를 써달라고 주문했다. 정말로 해야 할 일을 회피하기에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므로 추천한다. 팬픽의 내용과 대사는 너무 전형적이라 최악이었지만 은근히 실제 인물들의 특성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모두가 웃었다. 이 시국에 코미디 기술을 활용한다면 친구들을 놀리는 데 써야 했다. 놀리기는 상당히 기술적인 장르고 아무한테나 하기에는 꽤나 품이 들기 때문이다.
놀리기가 깁(give) 주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퀴어 커뮤니티에서 처음 배웠다. ‘깁 준다’라는 표현도 퀴어 용어이니 짚고 넘어가자. 왜 ‘give’ 뒤에 ‘준다’를 동어반복하는지? 베풀고 봉사한다는 의미를 굳이 두 번 반복할 정도로 강조하기 위해서다. 조금 남사스러운 이야기지만 레즈비언들끼리는 잠자리 성향을 이야기할 때 ‘깁(give)’과 ‘텍(take)’이라는 표현을 쓴다. 대게 상대에게 신체적 기쁨을 선사하며 본인의 기쁨을 누리는 쪽을 깁, 신체적 자극을 즐기고 퍼포먼스로 기쁨을 선사하는 쪽을 텍이라고 부른다. 남사스러운 이야기니 비밀을 꼭 지키도록.
재치 있게 놀리는 기술 자체가 재능이 되는 광경은 드랙퀸 서바이벌 프로그램 〈루폴의 드랙 레이스〉에 반복해서 등장한다. 〈드랙 레이스〉에는 매 시즌 서로를 ‘리딩(reading)’하는 코너가 있다. 루폴은 ‘도서관 개장 시간’이라며 ‘〈파리 이즈 버닝(Paris is burning)〉의 전통에 따라’ 독서 시간을 갖자고 제안한다. 〈파리 이즈 버닝〉은 보깅, 드랙, 하우스, 볼 등 눈부신 퀴어 문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중반의 뉴욕을 배경으로 유색인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의 해설자이자 드랙퀸 도리언 코리는 리딩에 대해 “모욕의 진짜 예술 형식”이라며 퀴어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언급한다. 해당 장면의 자료화면에는 부둣가에서 집적거리는 남성들을 살짝 유혹하면서도 ‘꾸짖을 갈’ 중인 드랙퀸이 나온다.
“무슨 일 있어? 심리적 변화라도 겪는 중? 내 빛나는 피부 만져봐. 넌 감당 못해. 너 같은 웃자란 오랑우탄은.”
리딩은 ‘똑똑하게 틈’을 벌리는 행위다. 결점을 발견하고 과장해서 웃음을 만들면 된다. 리딩을 성공시키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 상대를 잘 알고 관계를 파악해야 한다.
: 안타깝게도 놀림은 사회성 장르다. 상대에게서 놀려도 되는 결점은 뭔지, 절대 건드리면 안 될 부분이 있는지 진중한 관찰과 기민한 판단이 필요하다. 상대가 가벼운 장난쯤은 웃어넘길 체력이 있는지, 취약한 상태인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놀리는 사람과의 관계와 힘의 방향도 매우 중요하게 고려할 요소다. 언제든 사과하고 개선해나갈 여지가 있는 친구인지, 좀 어려운 친구인지, 사회적으로 잃을 것 없는 사람인지, 그에 비해 나의 위치는 어떤지 등을 고민하는 것이 좋다. 그야말로 ‘읽는’ 과정이다.
- 내부를 향하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 〈파리 이즈 버닝〉에서 도리언은 리딩이 “게이 vs. 스트레이트 상황이라면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리딩의 대상은 커뮤니티 내부, 혹은 임시로라도 내부에 포섭하고자 하는 상대를 향한다. 우정을 돈독하게 하는 ‘인사이드 조크’를 지향하는 한편, 공통점만으로는 놀림거리를 찾을 수 없다. 나에겐 있지만 상대에게는 없는 것, 혹은 상대만 가진 특별한 지점을 짚어내야 리딩이 이뤄진다.
- 웃게 해야 한다.
: 리딩도 여느 코미디처럼 결과 중심적인 성격을 띤다. 웃음을 만들지 못하고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 뿐이라면 리딩이 아니라 실패한 막말이 된다. 농담의 소재가 된 바로 그 사람이 조금 긁히더라도 그곳에 있는 누군가는 웃어야 한다.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를 쓴 김초롱 작가의 북토크에 동료 코미디언과 함께 참석한 적이 있다. 그날 놀리기에 대해 김초롱 작가가 했던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참사 이후, 혼자 밥을 먹으며 〈무한도전〉을 틀어놓았다가 문득 깨달았다고 한다. 요즘은 아무도 자신을 놀리지 않는다는 걸. 그 가볍고 장난스러운 행위가 너무 그리웠다는 얘기를 듣고 동료와 한참을 고민했다. 누구를 어떻게 놀릴지, 무엇을 농담거리로 삼지 않을 것인지. ‘이걸로는 절대 못 웃긴다’는 소재로도 끝내 웃기고 싶은 대상, 혹은 잠시라도 넘어서고자 하는 주제가 있는지. 우린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지난번에도 말했듯 이건 굳이 안 해도 되는 업보 쌓는 행위다. 그래도 어떤 사랑은 위험을 감수해야만 가능하다. 이 혼란 속에서도 농담이라는 사치스러운 행위를, 서로 읽고 긁고 굽고 태우는 침범을, 사과와 용서와 회복까지도 허용해주는 관계와 공동체가 당신에게 있기를 기원하며. 아직 없어도 괜찮다. 이 혼란스러운 원고를 끝까지 쓰고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대충 비슷한 걸 나눴다고 간주하겠다.
[1] ‘데미지 딜링(Damage Dealing)을 줄여 표현한 한국식 게임 은어. 딜을 넣으면 데미지(손상)를 입히게 된다.
[2] 명태균을 떠올리게 하는 말장난.
[3] 사천 짜장을 일부러 틀리게 발음해 살인 사건 가해자인 사촌 조카의 변호를 맡은 일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4] 레즈비언 커뮤니티 내에서 연애 상대를 식별하거나 식별당하기 위해 고수하는 특정한 스타일. 억지스러운 젠더 역할놀이 같은 면이 있어서 놀리기 딱 좋다. 펨, 부치 각각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따로 원고 한 편이 필요하므로 오늘은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