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에 대한 상상을 붙잡으며
묻고, 사유하고, 성찰하며 책 만들기
📬 오월의봄 일동
12월 3일, 그날 밤을 잊지 못할 겁니다. 우리는 한 명의 괴물을 봤습니다. 그 뒤 우리는 거리 등 곳곳에서 싸우는 사람들을 봤습니다. 우리 또한 각자만의 광장에서 싸웠습니다. 이 시대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책 만드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책을 만든다는 건 진정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는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쿠데타 이후 쏟아진 수많은 질문들, 그리고 우리가 품었던 질문들을 나누었습니다.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했지만,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게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질문들을 더 날카롭게 벼리고, 사유하고, 성찰하며 책을 만들기로 다짐했습니다. 빠진 질문도 많지만, 우리가 이야기했던 ‘질문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봤습니다.
→ 한국의 민주주의
한국에서 민주주의란 대체 무엇이었던 걸까?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켰을 때, 떠오른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은 바로 다음 질문들로 이어졌습니다.
도대체 한국 민주주의는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박근혜 탄핵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나아갔다고 인정되기도 했는데, 몇 년 사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윤석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까?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은 누구이고, 왜 그 수는 줄어들지 않을까? 왜 극우정당은 사라지지 않는가? 극우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부흥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트럼프의 등장이 의미하는 바는? 도대체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광장의 시민들
이번에도 시민들은 광장에 나가 목소리를 높였고, 그곳에서 수많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졌습니다. 이 거리의 시민들이야말로 한국사회의 자랑스러운 역사이기도 합니다. 그 힘으로 결국 윤석열도 탄핵했습니다. 이제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요? 윤석열이 파면되고,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텐데, 그렇게 되면 ‘승리’한 것일까요? 박근혜 탄핵 이후 한국사회와 한국 민주주의가 달라지지 않은 것만 봐도 그것이 ‘승리’가 아니라는 걸 선명히 알 수 있습니다.
광장의 시민들이 박근혜를 몰아냈는데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가 오히려 후퇴한 건 무엇 때문일까? 윤석열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 걸까? 이 광장에서 울려 퍼진 수많은 이야기가 정치와 우리의 일상 곳곳에 반영되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 질서를 외치는 사람들
“질서 유지를 위해 소수의 병력을 잠시 투입했다.” “질서 있는 대통령 조기 퇴진.” 윤석열도, 윤석열을 옹호하는 국민의힘도 모두 ‘질서’를 외쳤습니다. 가만 보면 광주항쟁 때도, 파리코뮌 때도 ‘질서’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질서 유지를 위해 시민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라.” “시위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권력을 거머쥔 자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말한 ‘질서’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가 원하는 세계는 절대 오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다시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들이 말하는 ‘질서’란 무엇인가? ‘치안’의 시각으로만 정치를 바라보는 세력들이 바라는 바는 무엇인가? 이런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판을 새로 짤 방법은 없는가? 시민의 자치, 자율적 노동, 자유로운 연대의 세계를 구축할 방법은 무엇인가?
→ 국민의힘을 없애는 방법?
윤상현, 권성동, 추경호, 나경원, 권영세 등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얼굴만 봐도 화가 치밉니다. 염치도, 부끄러움도 없이 아직도 윤석열을 옹호하고 있죠. 그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라 자기 자신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런 정치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계속 국회의원에 당선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정치 무대에서 쫓아내는 방법은 없을까요? 답은 간단하죠. 그들을 뽑아주는 시민이 없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퍼나르는 가짜 뉴스, 각종 혐오도 심각한 사회문제입니다.
왜 시민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걸까? 그들을 뽑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혹시 우리의 가족, 친구들은 아닌가? 광장에 있는 시민과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시민은 다른 사람들인가? 5분 이상 생각하지 않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인가? 자신에게 불리한 공약을 하는데도 그들을 뽑아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시민성이란 무엇일까?
→ ‘나중에’를 외치는 사람들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건 민주당이 정치를 잘못한 탓도 클 겁니다. 한국의 양당제는 늘 수많은 모순을 양산해왔습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다양한 시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대변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도 매번 민주당은 시민이 이룬 성취를 흡수해갔습니다. 우리는 얼마 뒤 또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허무맹랑한 말을 하는 민주당 후보를 봐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각종 개혁 과제는 ‘나중에’ 하자고 말하는 정치인을 또 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이런 민주당을 무작정 옹호하는 자칭 시민사회운동 인사도 나타날 겁니다. 아예 민주당에 합류하는 사람들도 있겠지요. 그런 사람들이 오히려 시민운동의 성과를 한순간에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걸 ‘나중에’ 하자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지켜볼 겁니다.
한국 양당제의 모순은 무엇이고, 그걸 깨뜨릴 방법은 무엇인가? 대통령제는 좋은 것인가? 과연 우리는 대안세력을 만들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 진보정당이 자리 잡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체제 너머를 상상할 수 있는 정치를 만들 수 있을까? 체제 전환 시민운동이 더 활발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누군가를 버리고 가는 민주주의”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민주주의가 만개하는 때 오히려 묻히는 투쟁들. 만인이 만 가지 색깔과 요구로 싸우는 게 민주주의일진대 ……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뒤덮이면서 고립된 삶의 목소리들. 늘 누군가를 버리고 가는 우리들의 민주주의.” 그러면서 ‘전장연, 동덕여대, 한화오션, 334일째 구미 옵티칼 고공농성’ 등을 언급했습니다. 모두 지금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데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 이 사람들이 아직도 싸우는지, 왜 그들의 요구는 늘 무시되는지 똑똑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함께 싸웠지만, 기록되지 못하고 소외되고 마는 사람들을 늘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늘 소란스럽게 들춰내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러는 너희는 어떤데?”
윤석열과 국민의힘은 싫어하지만, ‘부자’를 꿈꾸며 주식을 하고, 자기 자식만은 ‘일류대’에 보내고자 하는 친구, 가족이 있습니다. ‘민주주의자’라고 자처하면서도 ‘페미니즘’은 싫고, 관료적이고 가부장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오월의봄에서 일하는 우리 자신은 어떨까요?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 가치 지향, 성적 지향 등이 서로 다른데도 합리적인 토론과 소통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노동자로서 자유롭게 일하고 있는 걸까요? 오월의봄에는 불합리하고, 억압되는 것은 없을까요? 우리도 우리 자신들을 꾸준히 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드는 책과 더불어 언제나 이 질문들을 품고 살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각양각색의 시민들이 쏟아내는 질문들을 빠뜨리지 않고 잘 듣겠습니다. 그만큼 더 깊고 다양한 책들이 출몰할 수 있도록 고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더 많은 ‘이후’에 대한 상상이 쏟아지길 기대하며, 이후의 세계를 기록하는 시대의 증언자가 되겠습니다. 계속해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