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여섯 번의 레터를 보내드리며 느낀 점은 참 많았지만(오, 마감 세 번이면 한 달이 지나있다 등등), 놀라웠던 것은 구독자님들의 정성스러운 피드백이었어요. 혹시 써주실까, 하며 살포시 놓고 갔던 피드백 버튼인데 많은 분이 눌러주셔서 버튼이 다 헤졌습니다(?) 농답입니다···. <오!레터>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주시고, 기다려 주신다는 것을 느끼고 정말 감사했어요. 이번 호에서는 피드백 채널을 조금 매만져 보았는데요. 감사한 마음을 담아 피드백을 남겨주신 분 중 세 분을 추첨하여 음료 쿠폰을 보내드리려 해요! 레터를 다 읽으신 후 하단의 피드백 버튼을 눌러 작성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오월의봄 문고 시리즈 <오봄문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려요. 탄생 혹은 출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제격이죠. 게다가 '망한' 스토리는 마음을 빼앗기기 쉽잖아요? 그러나 절망의 서사는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속 기획물인 시리즈 디자인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게 풀어 드려요.
오늘의 <오!레터>
🐣 오봄문고 탄생기
✲ 일 좀 줄여보려다 망한(?) 썰
💥 갈팡질팡 북디자인
✲ 포맷, 그 완벽과 찝찝 사이
*메일 제목은 정지우 시인의 시집 『정원사를 바로 아세요』(민음사) 에서 착안했음을 밝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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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봄문고 탄생기 ✲
일 좀 줄여보려다 망한(?) 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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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봄문고’를 아시나요? 오봄문고는 2020년에 선보이기 시작한 오월의봄의 작은 총서 시리즈입니다. 2010년대 중반부터 유유의 ‘땅콩문고’, 코난북스·제철소·위고의 ‘아무튼 시리즈’, 민음사의 ‘쏜살 문고’,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 아르테의 ‘아르테 S’ 등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콘셉트로 짧고 가벼운 작은 책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었고, 우리도 거기에 편승(?)을 좀 해보고 싶었습니다. 아무래도 기존에 우리가 펴내왔던 책들은 주제와 물성이라는 측면 모두에서 가볍다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었으니까 말이죠.
200자 원고지 500매 안쪽의 간소한 분량의 작은 책이라면 충분히 끓지 않은 온도의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을 담기에 편리한 그릇이 될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이 단출한 책들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세상과 기민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의 본령은 사회를 시끄럽게 만드는 데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오봄문고라는 기획은 사회와 함께 호흡하며, 덜 조망되었던 존재와 목소리를 드러내고, 새로운 영역과 지형을 일구는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의 역할을 가볍게 풀어내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오봄문고의 표3에는 이런 소개의 글이 짧게 들어가 있습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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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봄문고는 지금, 여기의 변화를 기민하게 감지하는 질문과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총서입니다.
이 책들이 독자와 만나 단단한 바위 곳곳에 균열을 내는 시끄러운 달걀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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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고백하자면 오봄문고의 콘셉트과 방향과 기조를 정하던 무렵 개인적으로 제 머릿속을 떠돌던 말은 따로 있었어요. 바로 문고본 시리즈를 오래 내온 타 출판사 편집자 친구의 말이었습니다. “쓰는 사람, 만드는 사람, 사서 읽는 사람도 부담이 덜한 게 이 문고본의 핵심이자 장점이죠.” ‘인문사회과학 출판사의 본령’ 같은 것과는 하등 무관한 어떤 기대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원고지 500매라니……. 교정지를 뽑아도 한 손으로 가뿐히 들 수 있겠네? 그런 교정지는 솜털같이 가벼우려나? 이런 원고가 많아지면 출간 종수는 유지하면서도 부담은 좀 줄겠지? 흐흐흐흐흐…….’
고민과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일이 되는 것은 아닌데, 과묵한 편이지만 일단 하자고 하면 일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대표의 의지와 실행력,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다른 구성원들의 건강한 욕망, 거기에 일 좀 줄여볼 수 있겠다는 저 같은 구성원의 간악하고 얄팍한 기대가 더해져 오봄문고가 정말로 세상에 등장하게 됩니다(2020년 10월 《성서와 동성애》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시작으로 《섭식일기》 《미국 정치 평전》 《식물의 시간》 《병역거부의 질문들》 《알페스×퀴어》까지 출간되었군요).
오봄문고들의 제목으로 유추하실 수 있겠지만, 일 좀 줄여볼 수 있지 않나 했던 저의 얄팍한 기대는 이미 사라졌습니다. 책의 물성은 단출하고 가벼워졌지만, 쓰고 만드는 이들의 ‘공임’은 그렇게 쉽게 가벼워지지 않더군요. 게다가 새로운 그릇이 나타나니 새로 담고 싶은 이야기들은 더 많아지고 기민함이 더 필요하니 외려 더 구성원들이 바빠진 것 같은 건 그냥 제 기분 탓일까요……?
얼마 전 일곱 번째 오봄문고 《알페스×퀴어》가 출간되어 겸사겸사 오봄문고를 소개해드리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혹 떼려다 혹 붙인……, 아니, 그냥 일장춘몽 같았던 한 편집노동자의 꿈을 고하는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만두맨 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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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팡질팡 북디자인 ✲
포맷, 그 완벽과 찝찝 사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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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란 말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말 같지만 디자인 이전, 태초에 포맷이 있다. 편집 디자인에서 포맷은 서식의 구조라고 말할 수 있는데 단행본의 본문은 그 구조가 잘 드러나지만, 표지에서는 이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포맷을 확연히 볼 수 있는 책의 표지가 있다면 전집과 시리즈다. 출판사에서 전집이나 시리즈를 기획·출판하는 것이 부담과 기대를 안고 하게 되는 일이다 보니 전집이나 시리즈를 디자인하는 것은 디자이너에게도 부담스럽다. 하지만 표지에서 포맷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출간 목록이 정해지지 않은 시리즈를 디자인할 경우에 디자이너에게 제일 고민스러운 지점은 당연히 제목의 길이일 것이다. 예를 들어 두 글자 제목의 책과 열 아홉 자 제목의 책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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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크기로 제목을 놓았더니 긴 쪽의 제목은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표지의 절반을 차지해 버렸다. 짧은 쪽, 긴 쪽 제목 모두를 위해 제목글자를 얼마나 줄여야 할까? 문학동네시인선 시리즈의 디자이너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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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명, 책 넘버, 저자 이름, 제목을 다 같은 글자 크기로 연결해버리고 볼드로만 구분하는 포맷을 만들었고 나머지는 색과 여백으로 시리즈를 디자인했다. 그런데 첫 행 저자 이름 옆에 ‘시집’ 두 글자 중에서 한 글자 ‘시’만 있는 것이 뭔가 좀 찝찝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문학동네시인선 디자인에 대한 답변에 나와 있는데 ‘시’들이 모여 있는 ‘집’이라는 느낌을 독자에게 더 잘 전달하고 싶다는 의도라고 한다. 나는 그 의도가 아니라도 찝찝함을 감수한 이 포맷의 핵심은 연결성이고 그래서 제목 외에 포맷으로 결정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것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시’와 ‘집’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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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연결성이라는 포맷이 위와 같은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첫 행의 마지막 글자 ‘시’도 찝찝한데 제목에서 마지막 글자 ‘다’가 세 번째 행에 한 글자만 등장하는 표지가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이 디자이너의 고뇌를 내 일인 양 느끼며 이토록 찝찝함을 이겨낸 포맷에게 경배를 드리고 싶다. 오오 포맷이시여!
또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낸 시리즈도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워크룸의 제안들 시리즈이다. (한때 편집자들이 이 시리즈를 들고 와서 이대로 해달라고 할 때마다 나는 대체 이게 무슨 디자인인지 알고나 하는 얘기냐고 소리를 치고 싶었다)이 시리즈는 제목의 크기가 아니라 공간을 포맷으로 정해서 어떤 길이의 제목이 오든 정해진 공간에 넣으면 끝난다. 난 이 부분이 너무 통쾌한데 리스트도 정하지 못하고 그래서 제목 길이도 알려줄 수 없는 누군가에게 '엿 먹어라'를 날리는 것만 같다(이건 그냥 내 생각이다). 거기에다가 더해서 이런 식의 상황이라면 이렇게 예쁜 싸바리에는 제목이고 뭐고 넣어줄 수 없다는 듯 책등 이외에 표지에는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고 몽땅 띠지에 넣어버렸다. 언제나 디자이너로서 내 한계를 정확히 알려주는 그 중요한 제목을 띠지에 넣어버리다니 괘씸하면서도 속이 후련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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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세 권을 보면 제목 길이에 따라 글자의 크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볼 수 있다. <프란츠 카프카-꿈> 과 <조르주 바타유-불가능>은 똑같이 세 개의 행을 가지는 제목인데도 제목의 크기가 다르다. 아마도 공간이 이 포맷의 절대적인 핵심이기 때문에 행 수와 관계없이 제목이 공간을 지배하는 크기만큼 제목의 크기도 정한 것 같다. 그런데 역시나 세 번째 <토머스 드 퀸시-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에서 찝찝함이 또 생긴다. ‘드’로 끝나는 첫 번째 행과 파선 뒤의 ‘예술’이라는 글자 말이다. 처음 두 권에서 보여졌던 포맷의 완벽함이 세 번째 책에서 여실히 찝찝함으로 드러나게 되지만 다시 한번 이 찝찝함을 이겨낸 포맷에게 경배를 드리고 싶다. 오오 포맷이시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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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제안들 16으로 나온 <토머스 드 퀸시-심연에서의 탄식/영국의 우편 마차>에서는 제목의 길이 때문에 ‘드 퀸시’가 첫 행에 모두 들어가게 되어 찝찝함을 잃어서 매우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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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의 과제였던 오봄문고 시리즈 디자인을 얘기해보자면 오봄문고 시리즈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인문, 사회, 에세이로 분야조차 한 가지가 아니었고 처음 몇 권의 리스트는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정해진 것이 없었다. 디자인하는 내 입장에서는 제목의 길이는 대체 어느 정도까지 예상해야 할지 표지에는 어떤 이미지를 넣을 수 있을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난감했다. 그렇다고 요즘 나오는 이런저런 시리즈들처럼 추상적이고 중립적인 이미지들과 컬러로 면을 채우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가 나는 포맷의 완벽과 찝찝 사이에서 버틸 능력도 용기도 부족하다. 엉엉. 그렇지만 나는 결심한다. 모든 걸 다 낼 거라면 모든 걸 다 담을 수 있는 포맷으로 품어 줄테다아. 그래서 고전적인 포맷으로 돌아가서 ① 모든 걸 다 품는 제목 폰트 ② 모든 걸 다 품는 흰 바탕의 공간을 베이스로 표지에서 형태가 바뀌는 것은 이미지뿐이라고 설정했다. 바뀌는 그 이미지는 그림이기도, 사진이기도, 타이포그래피이기도 하며 초심으로 돌아가 잔재주 피우지 않고 담백하게 오래오래 999권까지 만들고 싶다고 소망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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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봄문고 시리즈는 계획했던 대로 아직까지 잘 나오고 있다. 이 와중에 나는 또 꿈을 꿔본다. 포맷은 포맷을 깨뜨릴 때 또 그 희열이 있는 법. 오봄문고 시리즈에서 흰 바탕이 아닌 첫 책은 무슨 책이 되려나!
가내수공업자 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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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나온 오봄문고 ✲
❶ 『성서와 동성애』: ‘반동성애’의 근거가 되는 성서 구절을 역사적 개연성을 좇으며 정치사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한 책.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는 ‘성서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해석에 반기를 들며, ‘반동성애’로 해석되는 구절들을 치밀하게 다시 살핀다.
❷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 저자에 따르면, 헌법불합치의견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여 임신중단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태아의 생명권” 개념을 끝내 유지함으로써 적지 않은 모순과 비합리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와 “태아의 생명권”을 동시에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분명히 제시함으로써, 합리적 논쟁의 장을 구성하는 규칙을 마련하고자 한다.
❸ 『섭식일기』: 인간의 손이 닿으면 그곳이 어디든 남아나지 못하는 세상. 언제나 그렇듯 시작은 ‘죄책감’이지만, 거기 머무를 수만은 없다. 저자는 이 거대한 폭력의 고리를 조금이나마 끊어보려 식탁 위 ‘자그마한 저항’을 실천하기로 한다.
❹ 『미국 정치 평전』: 미국의 이상하고 독특한 선거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과정과 현재를 분석하고, 확고한 연방제와 삼권분립이 독재자를 꿈꾼 트럼프를 어떻게 좌절시켰는지를 분석한다. 또한 트럼프의 반민주적 행태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이유 등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❺ 『식물의 시간』: 크론병이라는 자가면역질환 때문에 아프고 약한 몸으로 살아가는 한 명의 인간이 자신처럼 작고 연약한 식물들을 돌보고 그 삶에 개입하게 되면서 느낀 소회와 통찰들을 풀어내고자 했다.
❻ 『병역 거부의 질문들』: 2020년 대체복무제 시행을 이끌어낸 평화운동 단체 전쟁없는세상에서 19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저자 이용석이 병역거부와 평화운동을 둘러싼 이야기를 생생한 경험담으로 전한다.
❼ 『알페스X퀴어』: 저자는 모든 것을 퀴어하게 ‘착즙’할 수 있는 이 괴상한 알페스라는 세계의 욕망들과 그 욕망들이 충돌하고 각축하는 장면들을 다각적으로 포착해낸다. 그 장면들을 통해 팬픽과 퀴어의 관계성, 팬픽의 퀴어한 가능성, 남성 아이돌 알페스가 어떻게 비남성과 여성의 것이 되는지, 이 모든 것을 퀴어하게 착즙하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괴상한 일인지를 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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