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 구독자 여러분께 최초로 공개하는 신간, 《재앙의 지리학》으로 찾아왔습니다. 표지도 물론 최초 공개이고요. 출간 전부터 이 책을 기다려주신 분이 많은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아래에 어지럽게 보이는 형형색색의 물체들은 모두 의류 쓰레기입니다. 의류 쓰레기들이 육지 쪽으로 쓸리고, 밀리고, 치워지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여기에 이 책에 관한 힌트가 담겨 있어요. 저는 이 장면이 부제에 담긴 ‘수출’의 이미지처럼 느껴졌거든요. 기후붕괴를 수출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지, 감을 잡으신 분도 계실 텐데요. 그럼 신간 소개를 제일 처음 만나보시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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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어진 몸과 마음으로 쓴 서늘한 이야기
⏳ 모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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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측면의 효과는 이제 기대하기 힘들어 보이는 ‘기후위기’라는 말. 위기가 겹겹이 쌓일수록, 역설적으로 누군가에게 경종은 그저 음의 높낮이일 뿐인 식상한 소음으로 전락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위기 대신 ‘기후재난’, ‘기후재앙’, ‘기후붕괴’와 같은 한층 더 현실성 짙은 표현으로 탈바꿈한 채 우리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는데요. 시대에 맞추어 은행나무의 열매가 우수수 떨어지듯 쏟아지는 기후 관련 책들 사이를 착잡한 마음으로 헤치고 탐방하다가도 이런 부끄러운 심증을 품었습니다. ‘읽어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어느 정도는... 아는 얘기이지 않을까?’
어디서 들어는 봤다는 태도, 그리하여 종잡을 수 없겠다는 무력감, 그러나 때로는 ‘우리가 날씨다’라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말대로 야트막한 실천이나마 보태고 있다고 느끼는 효능 비슷한 감각...... 이것들을 기어코 ‘아는 얘기’로 뭉뚱그려버린 채 품은 오만하고 협소한 생각이었어요. 단권마다 다른 주제와 논의를 경유해 설득하며 저마다의 역동성을 가진 책들을 짐짓 ‘아마도 내가 경험으로 알고 있을 바로 그 기후위기 책’으로 쉽게 범주화하는 우를 범한 것이죠. 탱천하고 타오름으로써 사그라져 가는 이 행성을 딛고 선 일원으로서 모든 걸 온전히 체감하고 있다고 생각해버린 겁니다. 탄소, 종말, 살인적, 지속가능, 폭暴을 앞에든 뒤에든 달고 있는 단어들이 담긴 환경 기사를 매일같이 들여다보고, 진정 망해버린 것이냐며 냉소하고, 폭우로 범람한 집 앞의 하천을 멍하니 바라보던 날을 이유 삼아 달라진 기후를 피부로 느꼈다고 여겼기 때문에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그렇게 저는 장바구니에서 긴 시간 체류하는 책들을 뒤로한 채로 서 있던 중 이 책을 만났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은 후로는 다시 뒤로 걸어가 두고 왔던 다른 책들로도 접속하게 됐어요. 어떤 책들은 내가 언제까지나 모르는 사람일 뿐이라는 진실을 따끔하게 일깨워줍니다.
앞서 말씀드린 ‘이 책’은 바로 출간이 임박한 《재앙의 지리학: 기후붕괴를 수출하는 부유한 국가들의 실체》입니다. 원제는 《Carbon Colonialism》, 지난 〈오!레터〉 65화에서 본문 발췌로 소개해드렸죠. 오늘은 《재앙의 지리학》과 기후를 다룬 몇 권의 책을 함께 소개하며 책에 담긴 몇 가지 논의를 소개하는 글을 지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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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국가는 비시민의 해방보다 자국 시민의 해방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때로는 다른 국가를 수단으로 삼아 자국의 이익을 추구한다. 네이션-국가의 이러한 이중적 본성은 기후위기 대응에서도 드러난다. (...) 특히 자원과 권력을 가진 나라들이 문제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곳인 동시에 자신을 향한 재앙의 피해를 가장 늦출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개도국 중에는 이처럼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유산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애초부터 불리하게 구조화된 경우가 많다. (...) 그러니 세계 모든 지역의 사회적 대비 상태, 재난 취약성, 회복력, 인프라 설비 등은 식민 지배 유산의 정도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그런데 1.5도니 2도니 하는 하나의 전 세계적 단일 목표를 정해놓고 그 수치가 초과되면 ‘전 세계’가 위험에 빠진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기술관료적 보편주의에 입각한 목표 달성 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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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bon Colonialism》, 원제를 직역하면 ‘탄소 식민주의’입니다. 저자 로리 파슨스Laurie Parsons는 이 책에서 여러 문장으로 탄소 식민주의를 설명해요.
“더 부유한 국가들이 글로벌 산업에서 자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축소하는 가운데, 이익은 더 적고 환경에는 더 많은 피해를 입히는 공정을 글로벌 남반구로 ‘외주화’함에 따라 이러한 공정에 관련된 배출량, 최소한 언론의 표제를 장식하는 수치가 함께 이전되는 것이다.”(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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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다큐인사이트: 지속 가능한 지구는 없다(2부: 재활용 식민지)〉 중 한 장면 / (영상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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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 북반구의 부유한 경제국들이 자신들의 공급망 확대를 위해 남반구의 저개발국가들로 생산을 외주화하면서 자국 내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고 있는 겁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마치 ‘선진국’들이 과거의 방식을 청산하고 새롭게 터득한 녹색정책에 맞추어 진화한 것처럼 보이도록 하죠. 그로 인해 남반구의 저개발국가들은 자연환경 파괴 및 기후붕괴와 맞닥뜨리고, 극악의 기후환경 속에 위험하게 놓인 노동자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받으며 착취됩니다. 농업을 생계유지 수단으로 삼던 시민들은 점점 기후의 악조건 속에서 생업을 잃게 되고, 또다시 탄소를 유발하는 산업 노동 혹은 대출 등으로 내몰리면서 늪과도 같은 악순환을 겪게 되고요. 아웃소싱을 밑거름 삼은 눈속임의 진보이며, 국가적 차원의 그린워싱인 셈입니다.
부유한 경제국들이 산업의 더러운 단계를 거친 뒤 탄소배출량을 줄여 진보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한때 우리도 저랬으니 조만간 그들도 우리의 발자취를 따라올 것’(17)이라는, 부유한 세계의 관념을 강화하기 때문인데요. 실제로는 세계 많은 나라에서 동일한 결과가 도출되지 않음에도, 쿠즈네츠 곡선Environmental Kuznets Curve 같은 지표는 부유한 경제국들의 추론을 뒷받침하기도 합니다. 이 곡선은 환경오염을 GDP에 대응시킨 그래프인데, 국가의 경제개발 과정에 따라 오염이 상승하다가 이후 하강하는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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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저자 로리 파슨스는 이를 두고 이렇게 질문해요.
“그러나 만일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만일 한 곳이 깨끗하기 때문에 나머지 한 곳이 파괴된 것이라면? 만일 한 곳이 안전하기 때문에 나머지 한 곳이 위험해진 것이라면?”(18)
그는 위의 질문과 같은 발상이 이미 기후정의 담론에서 주류로 자리잡아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특정 인구 집단이 더 취약해진 것은 단순한 우연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인데요. 어떤 맥락인지 이해하기 위해 책 속의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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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네덜란드: 11세기에 시작되어 수백 년 동안 이어진 국가 차원의 제방 건설 활동이 이뤄지기 전까지 네덜란드 국토의 대부분은 물에 잠겨 있었다.
② 런던의 방벽, 템스 배리어Thames Barrier: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영국의 수도를 안전하게 보호한다. 이것이 없었다면 템스강은 주기적으로 범람해 런던을 덮쳤을 것이다.
③ 프랑스의 그랑 라크 드 센Grands Lacs de Seine(센강의 큰 호수들): 파리의 동맥으로 간주되는 센강에 홍수가 미치는 압력을 완화해 1910년 파리 대홍수급의 참사를 다시는 겪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한 조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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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례들을 통해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위험에 노출되는 취약성이 결코 불가피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20) 저자는 재해란 자연적인 것이 아니며, 폭풍, 홍수, 가뭄 같은 위험요소가 취약성과 경제적 불평등을 만났을 때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여전히 재해를 자연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현실과 거리를 두는 이유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요. 여기서 이 책의 한국어판 제목이 《재앙의 지리학》인 이유를 유추해보실 수 있어요.
로리 파슨스는 로열홀러웨이런던대학 인문지리학 분야의 선임 강사로, 기후변화가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다양한 프로젝트에서 책임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리학을 기반으로 기후변화의 영향을 형성하는 경제적 불평등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하는 그는 현시대의 난무하는 글로벌 생산 체계에 의구심을 품고, 그 속에 숨겨진 환경 영향을 탐구합니다.
《동물권력》의 저자 남종영 선생님께서 써주신 《재앙의 지리학》 추천사에는 이런 문장이 있어요. “기후변화는 숫자가 아니다. 세계 시민, 부자와 빈자 그리고 가축과 야생 동식물의 삶과 얽힌 현상이다.” 이처럼 이 책은 또한 그간 수많은 숫자와 그래프가 말해주지 않았던 실제 삶들을 들춰내고 쟁점화해 긴요한 의제로 소환합니다. 캄보디아와 같이 탄소 식민주의 피해의 전형성이 드러나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기존의 금융·경제·계획·환경과학의 영역에서 용납하지 않던 구술된 경험의 언어를 수집하고, 이러한 전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피해의 참상을 폭로하죠. 과학과 같은 영역에서 구술이 근거로 채택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인데, 사실은 우리가 선험적으로 규정된 과학적 진실이라고 믿는 것들 역시 정치와 이해관계, 불균등한 경제력과 얽혀 있다는 점을 밝히면서요. 이와 같은 배경을 인지하고 책을 읽으신다면 전체 글의 구조와 전개 방식을 더욱 잘 파악하실 수 있으실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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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의류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사진 출처: EMERiC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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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의류 기업들의 확장 후보지로 순위를 다투는 나라 중에는 월평균 급여가 26달러인 에티오피아보다 더 낮은 곳도 있다.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개발도상국들이 의류 제조업 파티에 초대받으면서 패션 브랜드들은 계속 바닥 찍기 경쟁을 이어갈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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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경영에 관해 들어보신 적 있나요? ESG란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의 머리글자를 딴 단어로, 기후위기 시대에 맞추어 기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기업성과지표 중 하나입니다. 기업 활동에서 친환경, 사회적 책임 경영, 지배구조 개선 등 투명 경영을 고려해야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다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매일경제용어사전)
북저널리즘에서 출간된 《그린워싱 주의보》(이옥수)에 따르면 “2022년 5월, 테슬라는 S&P 500 ESG 지수에 편입된 지 불과 1년 만에 인권 및 탄소 배출 전략 부재 등의 이슈로 퇴출됐다”고 합니다. 기업이 아무리 수송 부분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성과를 냈다고 하더라도, 지배구조적 측면에서는 보완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ESG 지수 자격에서 퇴출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죠. 이는 기업 내에서 노동자의 인권 문제와 같은 구조적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 역시 산업적 차원의 지속가능성 면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노동문제는 이 지점에서 극도로 과소평과되어 있어요. 노동력의 통제만큼 생산성을 강화하고 보장하는 방법은 없다고 여기는 작금의 현실 세계에서는 아래와 같은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학고재 출판사에서 출간된《지속 불가능한 패션 산업에 이의를 제기합니다》는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의 빈민가 세 곳에 사는 의류 공장 여성 노동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67퍼센트가 일터에서 물리적인 폭력을 당했다는 보고가 있었”음을 밝힙니다.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하고, 심지어 우리 옷장에 여러 벌 담겨 있는 바로 그 여러 의류 브랜드 공장에서 불법 아동 노동이 성행하고 있었고, 이것이 적발되었을 때 유명 브랜드들은 하나같이 ‘본사 지침을 어긴 무허가 하청’ 탓으로 돌리기 바빴죠. 보수報酬는 끝도 없이 내려가고, 폭력이 만연하고, 이 모든 것이 지속되는데도 노동자들이 의류 산업으로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화 레터에서 편독자님이 남겨두신 〈독서를 위한 꿀팁〉에는 ‘농민들은 어떻게 해서 산업 노동자가 되며, 그 과정에는 어떤 환경상의 변화가 있었을지, 그리고 그 변화를 견인하고 강제하는 힘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기’가 있었어요. 책을 읽다 보면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생업을 중단시킨 주범과도 같은) 기후위기를 재생산하는 산업에 투신하게 되는 건 거의 불가피한 귀결처럼 보입니다. 산업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설계와 통치 아래 많은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재구성되죠.
가난한 국가의 전통적인 생계 수단을 압박하는 방식(전통적인 농촌 생활 방식의 질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산업 내로 포섭하고→그 탓에 가속화되는 산업화는 기후를 악화시키고→노동자들은 악화한 기후의 최전선에 배치되고→기후변화는 다시 농촌의 생활 방식을 재건할 수 없게 하고...... 덫과도 같은 이 모든 것이 계속해서 강화되는 방식의 사이클을 통해 노동자들이 끊임없이 산업으로 유입되면서 그들의 자리가 재편됩니다. 책 속에 이와 같은 내용이 아주 자세히 정리되어 있어요. “따라서 기후변화는 산업화 이야기가 끝나는 지점에서 출몰하는 동시에 글로벌 공장을 확장시키는 촉매 역할을 한다.”(73)
이렇게 《재앙의 지리학》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노동문제’를 주요하게 다루며 우리에게 이것 역시 산업적 차원의 지속가능함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제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는 점입니다. 현장에 있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적극 인용하면서 주변 세계와 함께 호흡하는 방식으로요. 이는 저자가 책 후반부에서 ‘기후 지식 역시 권력’임을 언급하며, 기후 문제에서 존재하는 발언권의 불평등을 일갈한 맥락과 닿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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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문제를 겪는 한 개인의 경험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 무엇보다 그것은 목소리를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 즉 지리학적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말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것은 글로벌 추출 체계의 논리 아래 짓밟힌 사람들의 말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수단도 제공한다. 이런 수단을 통해 우리는 글로벌화된 경제에 만연한 합리성의 대척점에 있는 인간의 얼굴을 부각하고 그들의 말을 증폭시킬 수 있다.
《재앙의 지리학》, 로리 파슨스 지음, 추선영 옮김, 오월의봄, 2024, 26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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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열 가마 속 벽돌 산업 노동자 (*사진 출처: THOMAS CRISTOFOLETTI/BBC) / (기사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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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테면 저자는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서쪽 변두리 방향에 위치한 벽돌 가마 밀집 구역으로 독자를 데려갑니다. “유명 브랜드 라벨이 붙은 옷가지들이 급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지친 발길에 치여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현장으로요. 그가 생생한 언어로 그려낸 도경은 악전고투하는 노동자들의 모습 옆에 독자를 세웁니다. 이는 로리 파슨스가 계속해서 독자를 견인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는데, 무엇보다 글로벌 공장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의 눈을 통해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가 거듭 강조하는 부분이에요. 단순히 취약한 대륙을 끓게 만드는 온난화로서 기후위기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경제의 압력으로 인해 이미 한계점에 다다른 생계 수단을 압박하는, 점점 더 커지는 압력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벽돌 노동자들이 옷가지, 비닐봉지, 라벨, 넝마 더미를 태우며 치솟는 시커먼 연기 기둥 옆에 서서 만든 저렴한 벽돌은 대부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일부 국가의 시민이 사용하게 되는데요. 학대, 착취, 물리적 폭력, 성폭력 등에 노출되는 아동들이 강제 노역하는 일터에서, 누군가 유해 찌꺼기를 대량 흡입하면서도 탈출할 수 없는 일터에서 만들어지는 벽돌을 구입하고 싶은 소비자는 아마 없을 겁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계속 벽돌을 구입해요. 벽돌이 자신에게 오기까지의 경로를 알 길이 없기 때문이죠. 생산의 도달 범위가 완전하게 글로벌화됨에 따라서 공급망의 길이는 어마어마하게 길어졌고, 소비자들이 그 복잡성을 하나하나 파악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요. 소비자까지 가지 않더라도 실제로 벽돌의 공급원을 파악하는 일은 기업 내부자에게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한 기업 안에서도 공급망의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과 지속가능성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의 연결은 먼 거리로 인해 느슨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물리적 실체를 지닌 공장 건물에서는 물자와 재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다. (...) 그러나 글로벌 공장에서는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물리적 공장에서는 중앙에서 주기적으로 생산 공정을 직접 감독하겠지만 글로벌 공장에서는 정밀한 기술 지표에 의해 조정되는 원격 모니터링 방식으로 생산 공정을 감독한다. 물리적 공장이라면 직접 눈으로 보면서 감독할 것을 글로벌 공장에서는 체크 박스에 표시하는 방식으로 감독한다.”(104)
그러니 이렇게 불투명하게 얽히고설킨 글로벌 공급사슬망 아래에서 개인 소비자들이 이른바 ‘녹색 소비’, ‘착한 소비’를 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저 역시 한 명의 개인으로 굉장히 고민하던 지점인데요. 일상의 긴급한 필요 속에서 개인은 소비와 덜 소비하기, 대안 물품 구매하기를 반복하며 의구심과 자책의 굴레에 들어앉기도 합니다. 거대한 위기를 돌파하는 방식으로써 소비의 변화란 매우 지엽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그러다가 위기로부터 자신을 유리한 채로 방관자가 되길 선택하기도 하죠.
저자는 소비자가 갖는 힘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생산의 역학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지식을 점검할 필요성을 말하며, 글로벌 공장의 그린워싱에 반박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진정으로 해야만 하는지 자세히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2부 전반에 걸쳐 기후 발언을 둘러싼 권력관계, 기후행동을 포섭하는 기업의 논리를 정교하게 분석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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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는 독자들을 쓰레기장, 물고기가 사라진 호수, 화학물질로 뒤범벅된 경작지 같은 오염의 현장으로 데려 감으로써 그 실체는 물론 지속가능한 생산이라는 수사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오롯이 보여주고자 했다. (...) 진실을 알게 되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충격에 빠질 것이다.
《재앙의 지리학》, 로리 파슨스 지음, 추선영 옮김, 오월의봄, 2024, 263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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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 파슨스가 말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릴 만한 진실은 책에서 계속 등장하지만, 이것이 집약된 부분은 바로 에필로그입니다. 이 책의 요점이기도 한데요. 기후위기에 대한 진정한 조치를 무력화하는 여섯 가지 신화를 소개하고, 날을 곧추세우며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하면서 우리에게 이와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요. 아마 목록을 보시면 어떤 방식으로 이것을 깨나가는 작업을 했을지 궁금해지실 것 같아요.
① 첫 번째 신화: 기후변화가 더 많은 자연재해를 유발한다?
② 두 번째 신화: 소비를 통해 기후붕괴에서 벗어날 수 있다?
③ 세 번째 신화: 환경주의자들은 넷제로를 위해 싸운다?
④ 네 번째 신화: 국경 안보를 강화해 수십억 명의 기후 이주민을 가로막아야 한다?
⑤ 다섯 번째 신화: 지속가능성은 국내에서부터 시작된다?
⑥ 여섯 번째 신화: 기후과학은 정치와 무관한 합의다?
로리 파슨스는 자신이 견지해온 관점, “기후는 사회라는 옷을 입고 인간을 만난다”는 것을 끝까지 강조하고, 탄소 식민주의의 종식을 요구하는 태도를 부단히 연마하길 청하며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원고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는 무엇을 인식하고, 행동할지에 대한 지도가 어렴풋이 그려지는 것 같았어요. 혹시 지속가능함이라는 거대 담론에 의구심이 들거나 무엇을 헤아려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분들이 계신다면, 기후불평등에 관한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고 싶으시다면, 탄소 식민주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궁금하시다면 이 책을 꼭 기다려주시길요. 아마 이른 시일 내로 여러분께 출간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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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 토요일 오후 3시 강남역 일대에서 기후정의행진이 시작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907 기후정의행진 우리의 요구〉
① 불평등이 기후재난이다.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주거권-노동권-기본권을 보장하라.
② 위기에도 존엄하게 살 권리! 차별 철폐, 돌봄 증진, 공공 의료 및 공공 교통 확충하라.
③ 민주주의와 공공성 훼손하는 재생에너지 민영화 중단하고,
공공재생에너지로 정의롭게 전환하라.
④ 노동자-시민 주도 정의로운 전환. 기후정의-사회정의에 기반한 산업구조 실현하라.
⑤ 비인간 동물을 상품화하는 공장식 축산을 정의롭게 전환하고, 동물 착취 시스템을 철폐하라.
⑥ 무기 수출-전쟁 지원 중단하고, 군비 축소-반전 평화 실현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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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느린 정의: 돌봄과 장애정의가 만드는 세계》
(원제: Care Work: Dreaming Disability Justice)가 곧 출간됩니다.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 지음ㅣ전혜은ˑ제이 옮김
🏕️ 캠퍼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돌봄망이 무수히 교차하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를 버리지 않을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퀴어 장애인 유색인 펨 작가, 장애정의 공연 단체 '신스인발리드'의 리드 아티스트 공연예술가, 장애정의운동가인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신하의 책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됩니다.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연구자 전혜은과 페미니스트 활동가 제이의 공역으로 말이지요. 두툼한 역자 해제도 덧붙습니다. 한국에서 아직은 낯선 개념인 장애정의(Disability Justice)가 무엇인지, 계급/젠더/섹슈얼리티/장애/인종이 교차하는 자리에서 우리는 어떤 운동, 어떤 돌봄을 실천해야 하는지, 그리하여 어떤 세계를 상상하고 만들 수 있는지를 저자의 사유와 경험으로 생생하게 말하는 책입니다. 장애정의의 관점으로 세상은 물론이고 사회운동 또한 다시금 바라보게 해줄 책이기도 해요. 그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해방 공동체를 꿈꾼다면 이 신랄한 설계도를 꼭 획득하십시오. 추석 전에 출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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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장애정의를 행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다고? 당신은 당신이 그걸 하고 있다는 걸 그냥 알게 될 거야. 왜냐하면 사람들이 늦게 나타날 거고, 누군가 토할 거고, 누군가는 공황발작을 일으킬 거고, 소위 ‘접근 가능한’ 건물의 경사로가 고장나서 제시간에 진행되는 일이 아무것도 없을 거거든. 당신은 당신의 기준점을 제때에 충족하지 못할 거고,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우리는 우리를 포함시켜준다고 고마워하진 않을 거야. 우리는 의제를 설정하길 원할 거야. 아프거나 미쳐서 내는 긴 휴가, 사람들 앞에서 정신줄을 놓치기, 직장에서 장루 주머니를 비우고 마약성 진통제인 바이코딘을 먹고 일하기—이런 것들도 우리의 리더십으로 보일 수 있어. 장애정의는 느려. 사회정의에 가장 정통한 비장애인들조차 뚫어지게 쳐다보거나 기겁하는 사람들이 곧 장애정의야. 많은 주류 비장애인들이 실패라고 여기도록 배워온 게 바로 장애정의의 모습이야."(본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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