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연휴가 끝나고 새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이번 연휴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서 체력을 비축하는 시간을 보내자고 다짐했는데, 막상 연휴가 다가오니 침대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게 아까운 거 있죠! 부지런히 몸을 일으켜 대청소도 하고, 이곳저곳 다녀오고, 원고를 읽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
연휴 직전에도 여러모로 바삐 움직였어요. 반비 출판사와 함께한 크로스 리뷰 이벤트, (곧 공개될) 또 다른 출판사와의 콜라보 이벤트, 뉴닉 뉴스레터와의 협업을 준비했어요. 북토크 행사 2개를 연달아 다녀왔고, 신간 원고와 책상 위에 쌓아두었던 구간을 번갈아 열심히 읽었습니다. 오월의봄 대표 벽돌책이라고 할 수 있는 『철학 VS 철학』을 한 챕터씩 읽어 나가는 중이었거든요. 오늘은 생생정보통 북토크 편을 띄웁니다. 제가 읽고 있는 『철학 VS 철학』도 소개할게요. 자, 기지개 한 번 켜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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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들불'의 구구님, 『이것도 제 삶입니다』 북토크에 오셔서 아름다운 사진을 남겨주셨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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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생생정보통
이것도 제 삶입니다(+어쩌다 유교걸) &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 모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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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제 삶입니다(+어쩌다 유교걸)
: 박채영 저자 북토크
Point 1. 솔트
서울 종로구 독립문 근처에 있는 ‘솔트(Salt)’에서 진행했어요. 잠시 소개하자면, 솔트는 다양한 모임 활동을 위해 비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공간이에요. 천장이 높고, 창이 길게 나 있어 탁 트인 느낌이 들면서도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수많은 책과 낮은 조도의 조명, 푹신한 소파와 러그, 식물이 섞인 인테리어 덕분에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곳이랍니다.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속 한 구절: ‘그러니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면의 이 불을 계속 지피고, 우리 안에 소금을 지니고 인내하면서, 하지만 너무나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밖에. 누군가 오고 싶은 마음이 들어 거기 와서 앉기를, 그리고 어쩌면 머물러 있기를 말이야.’속의 ‘소금’을 공간의 이름으로 붙이셨다고. 우리 안의 소금이 무엇일 수 있는지 함께 찾고자 하는 마음, 누군가와의 만남과 머무름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공간에서 느껴졌어요.
Point 2. 관계
『어쩌다 유교걸』의 저자 김고은 선생님께서 사회자로 함께해주셨어요. 살짝 비하인드를 말씀드리자면, 박채영 선생님과 김고은 선생님은 십여 년간 함께해 온 친구 사이입니다. 『이것도 제 삶입니다』에서는 섭식장애라는 질병을 직접적으로 묘사하기보다 박채영 선생님께서 삶에서 맺어온 ‘관계’를 통해 풀어내고 있는데요. 동양고전을 공부하며 배운 삶과 공부, 공부와 나, 나와 삶, 나와 타인 사이의 ‘관계’에 관한 깊은 성찰을 『어쩌다 유교걸』 속에 담아주신 김고은 선생님께서 진행해주신다면 잘 어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안 드리게 되었죠. 그래서 이번 북토크의 주제는 '관계 속에 놓인 질병과 몸에 대한 이야기'가 되었어요. 김고은 선생님께서는 인터뷰이로도 활동하고 계셔서 그런지 질문과 질문 사이를 탄탄하고 매끄럽게 채워주셨어요.
여전히 미디어 내에서 섭식장애는 매우 단일하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당도하는 질문 역시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토를 하시나요?” “몇 킬로그램까지 빠졌나요?” “어떤 식으로 살을 빼셨나요?” 같은 ‘증상’에 국한된 모양을 띠는데, 박채영 선생님은 오히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그게 왜 궁금한지’에 대한 질문으로 돌려주고 싶다고 하셨어요(이 방법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그러한 질문은 이 병을 이해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책을 증상으로 풀어내기보다는 ‘질병 역시 나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말하고 싶으셨다고 해요. 책 54쪽에는 “시간이 흐르며 난 점점 증상과 밀착됐다”는 문장이 나오는데, 저는 여기서 ‘시간이 흐르며’와 ‘밀착’이 함께 쓰인 구성이 병과의 관계를 말해주는 것 같았거든요. 관계는 시간에 따라 다른 형태로 변하기도, 다시 돌아오기도, 영영 떠나가버리기도 하니까요. 아무에게도 보일 수 없는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친구 같은 존재 혹은 도피처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이제는 그만 같이 있고 싶은 존재가 되기도 했던 섭식장애와 함께했던 이야기가 책 속에 담겨 있습니다.
Point 3. 너무나 미워하고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들
엄마와 이모들 사이, 그러니까 말 그대로 모계사회에서 자란 박채영 선생님께는 자신을 둘러싼 ‘여자들’이 책의 한 장(2부 「나를 키운 여성들」)을 할애할 정도로 매우 중요했는데요. 김고은 선생님의 질문 “채영은 스스로를 미워하고 그만큼 사랑한다고 말해요. 2부에서는 가족에게도 그러한 마음을 갖고 있음이 드러나고요. 미워하고 사랑한다는 형태의 사랑은 채영에게 어떤 것인가요?”에 박채영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어요. 어떤 사람에게서 나와 닮은 구석을 발견할 때 미워하게 되고, 그 사람이 그러한 상태에서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나 자신도 사랑할 수 있게 된다고요. 그러니 주변에 있는 타인이 곧 나를 말해준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들을 믿는 것, 나를 믿지 못할 때 타인을 믿어보는 것으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음을 이야기해주셨어요. 이 이야기를 할 때 박채영 선생님과 김고은 선생님의 눈맞춤이 반짝반짝해 보였어요. 그러나 반전, 박채영 선생님은 김고은 선생님을 미워한 적이 없으시다고! 이에 김고은 선생님은 조금 불안해하셨지만(?) 이 예외에도 두 분의 우정은 북토크 내내 오가는 대화에서 선명하게 느껴졌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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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with. 도우리 작가님)
: 이소진 저자 북토크
Point 1. 서점 리스본
서점 리스본에서 진행된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 북토크. 서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죠. 서울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 숲길 끝자락에 있는 리스본은 문학‧인문‧예술 서적을 큐레이션 및 판매하는 서점입니다. 1층에서는 책을 살펴보거나 구매할 수 있고, 2층에는 아담하고 따뜻한 느낌의 독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요. 북토크도 이 공간에서 진행했고요. 리스본에는 ‘생일책’이라는 이벤트가 있는데, 2층에 생일책이 예쁘게 포장‧진열되어 있어요. 리스본 생일책 박스는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 같은 날 태어난 사람에 관한 책 혹은 초판 발행일이 같은 책과 굿즈로 채워져 있다고 합니다. 생일에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싶을 때, 나를 위해 선택하거나 소중한 사람을 위해 구매하면 좋을 것 같아요. 또한, 어떤 책인지 알 수 없어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비밀책’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리스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서점 입구에 파라솔과 함께 작은 외부 공간이 마련되어 있는데, 초여름에 이곳에서 음료나 맥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죠.
Point 2. 증발
진행을 맡아 주신 도우리 선생님은 자기 위로이면서 자해인 ‘중독 문화’와 함께 청년들의 삶과 문화가 맺는 복잡한 관계를 다룬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한겨레출판)의 저자입니다. 이소진 선생님의 “이것이 새로운 이야기라는 반응이 의아하고 신기했다”는 말에 크게 공감하는 청년여성 당사자이기도 하고요. 북토크 초반, 도우리 선생님 질문 중 인상 깊었던 이야기가 있어요. 일본에도 ‘죠하츠’라는 사회 현상이 있는데 이 책의 ‘증발’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에 관한 질문이었죠. 이에 이소진 선생님께서는 ‘사라짐이라는 형식은 같지만 일본 죠하츠의 경우, 신분 세탁을 하거나 깊은 산처럼 못 찾는 곳으로 숨어 들어가는 방식으로써 사회로부터 자발적 격리되는 상태를 이르는데, 쉽게 신분을 바꿀 수 없고 이동해서 숨을 수 있는 땅이 적은 한국의 여성들은 존재 자체의 사라짐을 택할 수밖에 없기에 죽음을 생각하게 된다’고 답변하셨죠. 그러나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죽음(사라짐)을 원할 땐 ‘고통 없이 이행되는 죽음’을 바라게 되기 때문에 ‘증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다고요.
Point 3. 연구자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연구참여자의 입말을 최대한 살렸다는 점인데요. 이는 개인의 입체적 삶에서 복잡성이 탈각될 수 있는 문제에 관해 깊이 고민하셨기에 나온 결과입니다. 이소진 선생님께서는 “연구자가 연구참여자의 말을 정리하는 과정에서도 관점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며 “말이 너무 깔끔하면 실제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전작을 내고 나서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자신에 대한 말이 만들어지거나, 타자화되었던 경험을 들려주시기도 했는데요. ‘어떤 사람이 불쌍하다고 여겨지거나 타자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셨다고. 인터뷰는 단순히 연구참여자가 연구자에게 고통을 말하는 과정이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므로 그 과정은 무척 쉬웠으며(특히 자기 경험도 많이 말씀하셨다고 해요) 술~술~ 진행되었다고 해요.
Point 4. 현재
도우리 작가님은 『우리는 중독을 사랑해』에서 ‘갓생 담론’을 다루셨는데요. 신자유주의 사회 통치 안에서 ‘변화’라는 가치가 올라가게 되면서 이직과 전직을 반복하며 자신의 인적자본을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의 모습을 짚어주셨어요. 현재의 ‘K-인적자본’이 요즘의 ‘갓생 담론’이라 생각한다고요. 전통적인 노동 소득에 기댄 노력을 통해서도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구조의 벽이 있음에도 여성들이 원인을 자신의 노력 부족으로 꼽는 것에 크게 안타까움을 표하셨어요. 이소진 선생님께서는 “가족과 멀어지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 바꿀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인 자기 자신을 바꾸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하셨죠. 여성에게 가족은 성공을 담보로 해야만 안전할 수 있는 공간임과 연결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여성들에게 달라붙은 위험 요소는 실상 10년 전, 20년 전에도 존재했지만, 이제는 차별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무력감을 크게 느끼게 된 것으로 진단하시기도 했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기 위해, 누군가의 언어를 잘 이해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이곳에서 함께 모여 있다는 사실이 새삼 감격스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이소진 선생님의 다음 연구에 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어요! IT산업 웹 개발자 남성과 웹 개발자 여성, 웹 디자이너 여성, 이렇게 세 집단을 인터뷰해 각 집단 노동의 차이, 임금 차이, 자산형성의 실패와 성공, 금융 시장의 성별화 경향 등을 주제로 연구하신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소진 선생님께서 북토크에 오신 분 중 추첨을 통해 전작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을 선물로 주시면서 훈훈하게 마무리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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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펼치면 되나요?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이 책 한 권이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드는 부제 덕택에 언젠가 이 책을 읽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두께에 압도당해 펼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책을 병렬독서법으로 읽으면서 이 책은 왜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철학 VS 철학』은 장마다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➀ 각 쟁점의 중요성: 각각의 철학적 쟁점과 관련해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기본 문맥, 동서양 사유 전통에서 이 쟁점을 이해하는 방식 등
➁,➂ 각 쟁점에 대해 상이한 견해를 밝힌 철학자들의 주장
➃ 고찰: 쟁점과 관련된 비교철학적 전망들을 소개
이 책을 처음 열게 된 건 루이 알튀세르의 유고집 『역사에 관한 글들』출간을 준비하면서였어요. 원고를 읽으면서 머리를 싸매고 있던 와중 ‘아, 이건 처음부터 잘못됐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 그럼 처음부터 돌아가서... 어디로 돌아가야 하지? 처음이 어디인지 막막했습니다. 그때 이 책이 떠올랐어요. 처음이 어디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자! 목차로 가서 손가락으로 스윽 훑으며 알튀세르 파트를 찾아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습니다. 알튀세르 철학의 근간이 되는 주장을 기본적으로 훑을 수 있었고, 원고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죠. 처음부터 ‘이 책을 완독해야지!’하고 다짐하기보다는 우리를 이루고 있는 삶을 알아가고 싶을 때, 철학자의 주장이 우주처럼 거대하게만 느껴질 때, 그들의 텍스트가 거미줄처럼 방대하고 복잡하게 느껴질 때, 차근차근 징검다리를 건너는 심정으로 하루에 한 챕터씩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책의 큰 장점은 우리가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생활의 예시 혹은 삶에서 마주칠 수 있는 장면들로 철학자의 주장을 설명해준다는 점이에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철학자의 사상과 닮은 (우리 삶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 책이 매우 주체적으로 쓰였다는 것이죠. 강신주 선생님의 관점으로 완성된 철학사의 주관적 서술은 ‘철학 속의 우리’가 아닌 ‘우리의 철학’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독창적인 안목을 제시하는 철학자들과 그들의 텍스트를 우리 안으로 직접 가져올 수 있게 안내하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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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 저자의 주관적인 해석이 곁들여진 ‘고찰’ 파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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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를 돕는 부록까지
부록은 무려 150쪽이 넘습니다. 인명사전, 개념어사전, 그리고 함께 읽으면 좋을 텍스트까지. 20쪽이 넘는 철학사 연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체적인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기에 굉장히 유용해요.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며 어지러이 펼쳐져 있는 시대를 잡아 앉혀 한눈에 보기 편하게 정리했습니다. 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루에 2명씩/2개씩 인명사전과 개념어사전을 읽어보고 있네요. 매일 책을 여닫으면 은근히 뿌듯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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