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패동 제이와이피
얼마 전 『기본소득, 공상 혹은 환상』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기본소득’을 전면 비판하는 책입니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는 사람, 기본소득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막연히 동경하는 사람, 기본소득을 비판은 하고 싶은데 정확한 논리를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유용한 책입니다. 책이 나오자 이 책에 대한 다양한 질문들이 나왔습니다. 그 질문들을 정리하면서 기본소득에 대해, 그리고 이 책에 대해 더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Q: 기본소득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A: “한 사회의 모든 개인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정액의 현금”이 기본소득의 정의입니다. 즉 보편성(‘모두에게 지급’), 개별성(‘개인 단위’), 무조건성(‘조건 없이’) 등이 충족되어야 기본소득이라고 말합니다.
Q: 기본소득론자들은 왜 ‘보편성’와 ‘무조건성’을 강조하는 걸까요? 이게 과연 실현 가능한 걸까요?
A: 이 조건들은 기존 복지제도들과 차별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기본소득론자들은 복지국가를 반대하거든요. ‘무조건성’과 ‘보편성’은 기본소득의 특장점으로 선전되곤 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반쪽짜리’ 무조건성과 보편성입니다. 돈을 줄 때야 ‘모두에게 똑같이 100만 원’ 식이지만,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모든 시민의 재산과 소득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파악을 통해 지극히 차등적이고 누진적인 세금 징수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금 징수의 과정이 공정하지 않다면, 즉 나보다 재산이나 소득이 많은 사람이 나보다 적게 내고 있다면, 저 ‘모두에게 똑같이 100만 원’도 공정하지 않은 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 공정한 분배제도는, 그 이상으로 공정한 조세제도가 확립되기 전에는 불가능한 꿈에 불과합니다.
이런 조세제도가 확립되었다면, 이를 어떻게 재분배하는 게 좋을까요? 기본소득론자들의 주장대로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게 공정한 것일까요?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많이 주는 게 좋을까요? 기본소득론자들은 기본소득만 있으면 사람이 굶어 죽지도 않고 빈곤이 사라질 것처럼 주장하지만, 거기엔 별다른 근거가 없습니다. 기본소득을 준다고 해서 빈곤이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요.
Q: 책에는 기본소득의 역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매번 기본소득론이 패배했다고 나오는데요. 무엇 때문에 패배했던 것인가요?
A: 기본소득의 역사는 곧 패배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 후반까지 세 차례 산업혁명을 겪을 때마다 ‘기본을 보장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토머스 페인, 버트런드 러셀, 밀터 프리드먼 등이 그런 사람들이었죠. 첫 번째 패배는 임노동 체제가 확립되면서 기본소득론이 패배하게 됩니다. 당시 노동자들에게는 임금이 곧 기본소득이었던 셈입니다. 두 번째는 국가의 역할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기본’의 주장이 패배하게 됩니다. 복지국가의 발달이 그 결과이구요. 세 번째는 소득세제를 통한 정밀한 소득보장제도가 확립되면서 ‘기본’의 요구가 사그라들게 되었습니다. 소득세제가 위기에 처한 대중들에게 정밀한 소득보장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일자리 수가 줄어들고 고용관계도 다변화해서 기본소득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실체가 아직 분명하지 않은 시점에서 기본소득이 대중의 경제적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은 아니라고 책은 비판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기본소득론도 결국 실행 불가능한 정책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Q: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 청년수당, 아동수당, 농민기본소득 등이 한국의 기본소득론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기본소득 성격의 정책’인가요?
A 아닙니다. 이것들은 ‘보편적 급부’의 한 형태일 뿐이지, 여기에는 ‘원래 그들의 몫을 그들에게 되돌려준다’라는 기본소득의 이념을 조금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즉 ‘모든 개인에게 정기적으로 정액의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이 기본소득의 정의인데, 긴급재난지원금 등은 보편적 급부의 형식을 띠지만, 모든 보편적 급부가 기본소득은 아닌 것이죠.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요긴한 역할을 했다고 여겨지는 긴급재난지원금은 이른바 ‘선진국’ 중에서 복지제도가 비교적 약한 나라에서 시행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즉 복지제도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이런 긴급지원금을 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체계가 잘 잡혀 있었던 거죠. 이런 의미에서 긴급재난지원금은 본격적인 기본소득 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디딤돌이 아니라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복지국가 도입의 필요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요?
Q: 책은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론자들이 국가를 보는 시각은 어떤가요?
A: 기본소득론자들의 국가에 대한 관점은 굉장히 모순적입니다. 기본적으로 기본소득론자들은 ‘최소 국가’를 지향합니다.
기본소득론의 구조를 ‘징발’과 ‘지급’으로 나눈다고 해봅시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징발’과 관련해서는 부자들에게서 많은 세금을 거둬들일 수 있는 그야말로 철옹성 같은 국가를 상정합니다. 하지만 ‘지급’과 관련해서는 무기력한 국가가 상정됩니다. 우리 이웃이 뻔히 굶어 죽고 있는데도, 세금 등으로 거둬들인 막대한 돈을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똑같이 나눠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삼성의 이재용도, 길거리 노숙자도 똑같은 금액을 받게 되는 거죠. 이렇게 모든 개인에게 조건 없이 정액의 현금을 나눠주는 기본소득제가 과연 기존의 복지국가 제도들보다 우월할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Q: 책에는 기본소득이 현실에서 실행되기 어려운 정책이라고 했는데, 그럼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A: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장되어야 할 것은 ‘경제적 안전’이지 ‘소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국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강조합니다. 국가는 자본주의 경제를 구성하는 세 측면, 즉 생산·분배·소비에 모두 관여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기구라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반면 기본소득론자들이 말하는 기본소득은 ‘분배’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해결책입니다. 이를테면 일자리 불안 문제를 기본소득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또 그게 제일 바람직한 해결책일까요? 기본소득을 지급한다고 해서 모든 영역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소득의 보장은 경제적 안전의 일부만을 구성할 뿐 대중에게 가해지는 불안정성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기본소득이 분배 측면에서만 기여하는 정책이라면, 국가는 생산·분배·소비의 모든 측면에서 관여하며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앞장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가를 구성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