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김용균, 김용균들』 이 나왔습니다. 책을 어떻게 보셨나요?
→이인구: 제 편은 세 번 정도 읽었어요. 처음에는 종이 화장지를 몇 개나 뽑아서 읽었어요. 눈물이 너무 나서. 그래도 꾹 참고 세 번 읽었어요. 그곳의 상황을 일일이 표현할 순 없지만, 근무자가 아닌 분들께서 이렇게 써주신 걸 보고 잘 쓰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김미숙: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세밀하게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감정도 잘 표현된 것 같고요. 책에 대한 평가는 당사자보다는 책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책을 펴내는 것은 무언가를 알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잘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 편집자: 김미숙, 이인구 선생님은 처음에 책 출간 때문에 인터뷰 요청을 받으셨을 때 어떠셨나요?
→김미숙: 용균이가 방송에는 많이 나왔지만, 지금은 벌써 저 멀리 간 사건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책은 역사잖아요.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니까 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편으로는 걱정도 했어요. 개인 세 명을 조명하다 보면 놓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누가 만들어도 모든 걸 다 담을 수는 없으니까 후속 작업들로 더 보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요. 함축적으로 몇 분만 들어가 있으니까. 앞으로는 조선소라든지 다른 현장의 이야기들도 많이 드러나면 좋겠어요.
→이인구: 그간 다른 책에서 나오지 않았던 내용들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반가웠어요.
✱ 김미숙: 인터뷰하면서 우리 같이 이야기 나누었잖아요. 그러면서 어떤 것들을 느꼈는지 궁금해요.
→림보: 인터뷰하면서 ‘진짜 잘 몰랐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다시는*> 활동을 했기 때문에 유가족분들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아주 모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잘 안다고 말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같이 이야기하면서 ‘이 속에서 겪어내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겪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죠.
*산업재해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
✱ 편집자: 개인적으로는 이인구 님을 인터뷰이로 선정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산재 사건에서 조망되지 않았던 피해자 혹은 당사자라는 점에서도 인상적이었고, 산재 트라우마에 대해서 다루어주신 부분이 좋았거든요. 특히 유족, 노조 활동가가 아닌 일터의 동료가 일터에서의 산재로 인해 세계와 삶이 재구성될 수 있다는 점이 깊은 울림을 줬고요.
→림보: 상처가 되는 사건을 트라우마라고 얘기하는데, 이 책 관련해서 회의하고 글을 쓰면서 그 모든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한국 사회에서 트라우마가 될만한 많은 사건이 있었는데, 한 번도 제대로 사과받은 역사가 없잖아요. 그걸 계속 떠올리고 있었어요. ‘세월호’처럼 큰 사건도 마무리가 잘 안 된 상황이잖아요. 사실 개인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이나 사건들도 소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우리 사회가 많은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라는 걸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맥락에서 김용균 씨 사건을 같이 겪은 사람들의 사건 이후의 삶도 궁금했고, 그래서 저는 이인구 선생님 인터뷰를 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산재 사건은 관련 활동가들 말고는 잘 잊히게 마련이니까, 이 책 작업을 통해서라도 알리면 좋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이인구: 저는 이런 걸 느꼈어요. 트라우마는 처음 가졌던 느낌만이 계속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긴다는 거예요. 스스로 스트레스, 트라우마와 싸워야 하기도 하지만, 저 때문에 가족이 받는 피해를 못 느낀다는 것도 문제죠. 사실 제일 무서운 게 이거예요. 내 변한 모습에 대해 가족이 나에게 얘기해줘도 저는 의식을 못 한다는 것. 제가 스스로 자각했을 때는 이미 2~3년이 지나있더라고요. 그때 비로소 슬프고, 눈물이 났어요. 그 3년 동안 우리 아내는 다른 사람하고 살았다는 거죠.
→권미정: 삼성중공업 사건*에서 트라우마를 겪으신 분들 얘기도 들어보면,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이 폭력적으로 변해있거나 알면서도 제어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니 가정이 파괴되는 수순으로 가는 거죠.
→김미숙: 피해는 또 다른 피해를 낳는 것 같아요.
→권미정: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 세 분 역시 우리 입장에서는 피해자예요. 그리고 조금 더 내용을 확장한다면 그 피해자 주변에 있는 가족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버텨내야 했던 시간을. 다른 사람들이 그분들의 고통을 들을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왜 그들이 그 시간을 견뎌내고 버틸 수밖에 없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이번 책에서는 많이 담지 못했어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피해 당사자라는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렇게까지 확장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거 같아요.
→김미숙: 트라우마는 자기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잘 모르는 사람들은 유족이나 트라우마 피해자에게 ‘예전으로 돌아와라.’라고 요구하거든요. 저도 ‘이제는 좀 일상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냐, 삼 년이나 됐는데.’ 그런 얘기를 들어요. 그럴 때 ‘당신 같으면 자식이 죽었는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냐’고 되묻거든요. 그러면 생각해보고 못 잊을 것 같다고 번복해요.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두려움도 있고, 거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보니 그러는 것 같아요. 우리 유족들은 그렇게 겪지 않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어떻게 대답하면 그 사람들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봐요. 그런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저 사람들은 나를 이해 못 해’ 그렇게 갈라놓지 않고. 비록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요. 저도 겪지 않았을 때는 잘 몰랐거든요. 좀 더 가까이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에요.
→권미정: 그런 맥락에서는 저는 책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 부분만이 아니라 독자들께서 다른 여러 측면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2017년 발생한 삼성중공업 크레인 충돌 사고료 6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다쳤다.
✱ 편집자: 희음 선생님께서는 김미숙 선생님의 이야기를 집필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저는 김미숙 선생님의 ‘흔들리는 모습’들과 흔들리면서도 살아가려고 하는 모습들이 솔직하게 드러난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미숙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만, 선생님께서도 이것을 잘 담아주신 것 같아요.
→희음: 아주 다르게 멀리 나아갈 순 없겠지만 김용균 관련 다른 책이나 자료집에서 담기지 않은 이야기, 흔히 상상할 수 있는 유가족의 모습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어요. 김미숙 선생님께서 그렇게 연결해주시기도 했고요. ‘유가족다움’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검고 어두운 옷을 입어야 하고, 늘 울상을 지어야 하고. 또 그런 것들을 기대하면서도 굉장히 아이러니하게 본인과 직접 얽히면 유가족들이 불편하게 있는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유가족에게 이 두 가지를 다 바라고 있는데 김미숙 선생님께서 그 두 가지를 다 깨고 싶다는 말씀을 해주셨고 그걸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 고민했어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선생님에 관해서도 우리가 상상하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어머니이자 여성, 분노와 슬픔으로 인해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단단해진 신체 같은 것을 떠올리는데, 그런 고착화된 상이 깨지면 좋겠다 싶었어요. 마침 김미숙 선생님께서 ‘그분은 그분이고, 나는 나다.’ 그런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편집자: 그 부분 너무 좋았어요.
→김미숙: 저는 사실 싸울 때는 흔들림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런 활동들을 계속하면서 용균이 얘기를 계속해야 하니까 내면적으로 흔들릴 때도 생겼던 것 같아요.
✱ 편집자: 제가 권미정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김용균투쟁은 어떻게 이렇게 커질 수 있었는지’를 여쭤봤는데, 선생님이 집필하신 3부에서 그 이야기가 같이 담긴 것이 저는 좋았어요. 여러 사람이 김용균 투쟁을 ‘자기 싸움’으로 가져갔다는 점을 잘 짚어주셨죠. 쓰시면서 어떠셨나요?
→권미정: 사실 저는 [3부의 인터뷰이인] 이태성 동지에게 미안하기도 했어요. 3부에서 투쟁의 전반을 다루게 되면서 상대적으로 이태성 동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지 못한 것 같아서요. ‘김용균투쟁’이라는 상징을 어딘가에 담아야 하는데 다른 두 분의 이야기에는 담기 어려웠거든요.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는 처음부터 노동자들도 투쟁하려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고, 노조 간부라고 해서 이런 투쟁을 다 알아서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이들도 투쟁 속에서 변화하고, 성장하고, 후퇴하기도 했다가 다시 앞서가기도 한다는 거예요. 또 하나는 김용균투쟁을 노조가 함께했다는 겁니다. 사실 김용균 씨가 조합원이 아니었잖아요. 그래도 노조에서 문제의식을 느끼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고, 감당할 수 있든 없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것을 결정했어요. 산재는 지금도 계속 발생하는데,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주변의 노조에서 같이 해야 하는 것으로 안아줬으면 좋겠는 거예요. 조합원이 아닌 노동자의 사고에 대해 어떤 태도와 관점으로 그 문제를 바라보고, 행동해야 할 것이냐에 대한 나름의 첫발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조란 일하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어떻게 지키고 확대할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투쟁을 하는 곳이고, 그것이 사업장 안에서 일어날 때도 있고, 정부를 상대로 벌어질 때도 있는 것이고요. 그런 투쟁이 시민들의 공감과 참여로 사회를 좀 더 좋게 만드니까요. 김용균투쟁은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자기 위치에서 참가했던 싸움이었죠.
✱ 편집자: 혹시 원고를 기록하시면서 어려웠던 순간이나 좋았던 순간에 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림보: 저는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김미숙 대표님, 이인구 선생님, 이태성 동지를 만나게 된 것 그 자체가 의미 있고 좋았어요. 쉽게 만나 뵐 수 없는 분들인데 이 작업을 통해서 제가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쓰는 과정은 어려웠어요. (웃음) 다 그러셨을 것 같아요. 글이 몇 차례 수정 거치면서 끝나갈 때 좋더라고요. (웃음)
→희음: 저도 만남의 자리가 좋았는데, 그 장소가 다 달랐어요. 김미숙 대표님은 김용균재단, 이태성 선생님은 발전노조 사무실, 이인구 선생님은 군산. 각자의 캐릭터와 장소가 묘하게 연결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각각의 장소에 가면 또 다른 몸과 마음이 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저에게 귀한 경험이었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셋만 같이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편집자 선생님과도 함께 작업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 좋았습니다. 기댄다는 것이 어떤 건지, 공저자 두 분께 기대는 것과 다른 느낌이 들어 좋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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