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두 번째 '프라이드 먼스' 레터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프라이드 먼스를 주제로 두 명의 작가님께서 글을 보태어 주셨어요. 『퀴어돌로지』의 기획자이자, 공저자이신 연혜원 작가님과 오월의봄에서의 출간을 예정하고 계신 구슬 작가님의 글입니다. 레터 하단에는 작가님들께 응원의 한마디를 남길 수 있는 채널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름 붙인 날들이 당장엔 왁자지껄로 응하고 싶어도 언젠가는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는 점에서 복잡합니다. 열두 달 모두 프라이드 먼스가 되는 날까지! 함께 축제 속에 있어요. 준비되셨죠?
💌 나의 프라이드 먼스 연혜원
💌 미워도 다시 한번, 프라이드 먼스 구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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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자주 연락하지 않는 친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신촌에 있는 정신과 병원이 괜찮다고 했었나?” 갑자기 정신과 병원을 묻는 메시지, 나는 심장이 내려앉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내가 다니는 병원과 이전에 다른 사람한테 추천받았던 상담심리센터를 추천해줬다. 그 친구는 더 이상 미루면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친구는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나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지하철 안에서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멀미가 나고 토할 것 같았다. 집에 도착해서 나는 누워 있는 일 말고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4년째 꾸준히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먹고 있으면서도 친구가 이렇게 갑자기 정신과를 물어 오면 또다시 익숙하지 않은 타격감에 사로잡힌다. 도움을 구하는 요청은 아무리 반복되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년 반복되는 죽음, 너무 잦은 장례식, 하루아침에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 그리고 애도 하지 않는 사회, 애도하기는커녕 모욕을 주는 사회. 그 모든 것들은, 내 몸이 작은 도움 요청마저 절박한 구조 신호로 받아들이게 만들었고, 늘 긴급상황을 앞두고 사는 마음으로 살게 만들었다. 올해 6월에는 지방선거가 있었고, 결국 국회는 지방선거 전에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지 못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도 한다. 프라이드 먼스라고 하지만, 내 마음은 매일같이 나와 내 친구들을 향한 혐오에 붙들려 있다. 혼자 앉아 글을 쓸 때 삶은 참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뉴스를 틀면 금세 내 발목을 잡는 사회가 확성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데 ‘프라이드’가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사회가 그 프라이드를 짓밟기 때문에 죽는 것이다. 프라이드는 짓밟히는지도 모르면서 매일 같이 짓밟힌다. 가족의 지원이 조금씩 끊기고, 일터에서 습관적으로 연기를 하고, 병원에 가기 주저되고, 동성 연인을 연인이라 소개하지 못하고, 솔직할 수 있는 친구가 제한되고, 공공장소에서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방식으로 짓밟힌다. 안철수가 퀴어문화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퀴어특구’라는 아주 흥미롭고 혐오적인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도심지에서 퀴어문화축제를 보지 않을 수 있기 위해 퀴어문화축제에 특화된 지역을 만든 다음, 그 지역을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가 놀랍게도 2021년에 나온 아이디어다. 안철수의 뜻처럼 ‘퀴어특구’가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이미 퀴어들은 퀴어로 정체화한 그 순간부터 퀴어특구를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커밍아웃할 수 있고,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고, 연기를 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애써 자신을 옹호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자신답게 살 수 있는 면적만큼의 무형의 세상이 퀴어들에게는 퀴어특구이다. 이성애자들은 특구가 필요 없다. 온 세상이 특구이니까. 아무도 이성애자들의 사랑에는 개연성을 묻지 않으니까. 퀴어들은 저마다의 마음속 퀴어특구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매일 갇혀 사는 기분을 가지며 살아야 한다. 그 퀴어특구마저 언제 재개발될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끌어안고. 그래서 프라이드 먼스에 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퀴어특구로부터 제발 좀 해방되고 싶어서 퀴어들에게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 애도할 수 있는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퀴어 프라이드는 언제나 애도가 겹겹이 층을 이룬 페이스트리 같은 것이니까. 매일같이 그 페이스트리를 삼키는 마음으로 나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 사회가 쳐놓은 펜스에 쉬지 않고 망치를 두드리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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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프라이드 먼스’를 주제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조사 결과보고서’(2022, 다움)의 한 대목이었다. 자신이 성소수자여서 좋은 점이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답변이 ‘없다’(27.6%)였다는 사실 말이다. 응답자 중 일부는 되려 “좋은 점이 아니라 힘든 점이 많다”며, 질문 자체에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아, 프라이드 먼스와 어울리는 ‘성소수자인 것에 자긍심을 느껴서’라는 답변도 물론 있었다. 응답자 비율이 0.3%에 불과해서 그렇지.
우리는 ‘퀴어’라는 분류에 너무나도 많은 종류의 정체성, 지향성, 외모, 여러 가지 생활 양식, 그 외 기타 등등을 몰아서 쑤셔넣고 산다. 지정성별을 의심하지 않는 ‘시스젠더 이성애자’가 아닌 모든 것들을 ‘비정상’으로 분류하고 눈에 보이는 일상 밖으로 축출한 결과다. 퀴어(queer)라는 영단어가 원래 ‘기묘한’, 또는 ‘괴상한’이라는 의미를 갖는 만큼, 아무튼 일상의 평범성에서 벗어난다 싶은 것들은 대강 ‘퀴어’라고 퉁쳐진다. 그러므로 퀴어 집단의 구성원이 갖는 특성 역시 단일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언제부턴가 다양한 미디어가 ‘다름’은 ‘틀림’이 아니고, 나아가 ‘특별함’이라는 달콤한 프로파간다를 유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다른 사람’인 퀴어들은 ‘틀린 사람’이 되어 유무형의 사회경제적인 차별을 받으며 살아간다. 아니, 사회 단위까지 갈 것도 없다. 기본적으로 집단은 구성원이 ‘비슷해지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존재들은 자기 자신의 고유함을 걸고 외부 세계와 대결한다. 어떤 존재들은 고유함을 사수하고, 어떤 존재들은 굴복한다. 대부분의 경우는 일정 부분 타협한다. 그러니까 위대한 퀴어 아티스트 이반지하님의 가르침대로, 우리의 복잡한 존재증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충 홍석천/하리수 비슷한 거예요.”
나는 생각한다. 퀴어로 산다는 건, 나다움을 지키기 위한 불화의 연속이고, 그 불화의 범위와 강도만큼 삶에 피곤함이 덧붙는 것이라고. 삶이 지긋지긋한 만큼, 퀴어로서의 삶도 지긋지긋하다고. 다른 사람들이나 나 바깥의 세계에 나를 증명하고 설득하는 것만큼이나, 나 자신을 정의하는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은 지난하고 고통스럽다. 나는, 퀴어들은, 아니 우리는 스스로를 새롭게 발명해야 한다. 그 과정은 고단하고, 무엇보다도 외로운 길이다.
그 외로움을 덜기 위해 수많은 퀴어들이 ‘프라이드 먼스’에 축제를 벌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공간에서 나는, 우리들은, 퀴어들은 이 세계에 스스로의 자리를 마련하고, 존재증명을 획득하는 과업을 이룩해낸 영웅들이다. 그리하여 참가자들은 웃고, 춤추고, 떠들고, 노래한다. 마땅히 서로 다른 우리들을 찬미하며.
…여기까지가 개념적 차원에서의 ‘나의 프라이드 먼스’ 이야기다. 현실에서 내가 느낀 프라이드 먼스는 뭐랄까, 좀 더 명절에 가까운 느낌이다. 평소에는 일언반구도 없던 기업들이 갑자기 무지개가 그려진 온갖 잡동사니들을 출시하는 가운데, 그 속셈을 빤히 알면서도 속절없이 지갑을 열어주고 만다든가, 퀴어 퍼레이드에 갔더니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 들거나 갈등을 빚었던 인간들을 ‘연대’의 공간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트럭이나 봐야 했다거나 하는 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퀴어는 ‘가족’이 맞는 것 같다. 가족이란 원래 안 맞는 거니까….
하지만 퀴어들의 ‘애국가’나 마찬가지인 레이디 가가의 ‘본 디스 웨이Born this way’에 맞춰 몸을 흔들거나, 이제는 전설이 된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합창하며 느끼는 짜릿한 일체감이란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펄럭이는 무지갯빛 프라이드 플래그 아래, 서로 부대껴 가며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어떠한 종적 계보도, 횡적 연결도 없이 외따로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 실제로 겪을 땐 상상하는 것만큼 우아한 느낌이 아니라는 것조차 우리는 안다. 뜨겁고 습한 날씨, 시끄러운 북과 앰프로 무장한 기독교 계열 혐오 세력들의 공해에 가까운 퍼포먼스, 그리고 그들을 딱히 막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경찰들의 무신경함까지.
그럼에도, 지지고 볶고 힘들고 미워도 다시 한번 프라이드 먼스를 찾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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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PRIDEMONTH 이벤트 🎁
알라딘에서 프라이드 먼스를 맞아 이벤트를 진행 중이에요. 대상 도서는 오월의봄의 <퀴어돌로지>, 돌베게의 <다채로운 일상>, 현암사의 <성소수자 지지자를 위한 동료 시민 안내서>이며, 대상 도서 포함 국내 도서 2만원 이상 구매 시 '#Pridemonth'가 새겨진 '레인보우 핸드타올'을 받아보실 수 있어요. '팬픽이반', '팬코', '연성', '알페스', '무지개 깃발', '퀴어 팬덤', '케이팝'의 단어들에서 가슴이 뛴다(!) 하시는 분들은 이벤트 페이지를 클릭, <퀴어돌로지>를 만나보세요! * 위의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이벤트 페이지로 연결됩니다.
- 이벤트 기간 : 2022년 6월 8일 ~ 선착순 한정수량
- 이번 주문으로 발생할 예상 마일리지에서 우선 차감됩니다.
- 예상 마일리지로 부족한 금액은 기존에 보유한 적립금, 마일리지 순서로 차감됩니다.
- 보유 적립금/마일리지가 부족한 경우, 남은 금액은 추가로 결제하셔야 합니다.
- 외국도서, 중고도서, 전자책 주문금액은 제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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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북펀드『김용균, 김용균들』 D-2 📖
김용균재단의 첫 책, '김용균이 변화시킨 사회와 사람들 이야기' 『김용균, 김용균들』 북펀드가 알라딘에서 진행 중입니다. 6월 23일이 마감일이니 이틀 남았네요. 김용균재단에서 써주신 [기획의 변]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책을 덮으며 여러분이 세상은 바뀌고 있고, 더딘 과정이라도 포기하지 말자고, 우리는 사실을 기억하고, 기억을 나누고 행동하면서 같이 가자고 얘기해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이 행동이 언제까지나 ‘진행 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을 기억하려 합니다. 아래에 짧은 책 소개를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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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0일,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 씨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습니다. 그 죽음을 나의 일로 받아들인 많은 이들이 함께 싸우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그 한계는 있을지언정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으로도 이어진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2022년, 김용균 사망 사건의 책임자들에 대한 1심 선고의 내용은 참담했습니다. 죽은 사람은 있지만 잘못한 사람은 없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는 듯도, 전혀 변하지 않는 것도 같아 보입니다.
이 책은 김용균 씨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모인 여러 사람이 마음을 모아 설립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에서 선보이는 첫 번째 책으로, 김용균 씨의 죽음을 살아내고 있는 세 명의 이야기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김용균 씨와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고, 김용균 씨의 주검을 발견한 ‘산재 생존자’ 이인구 씨, 김용균 씨의 어머니이자 ‘산재 유가족’이면서 ‘노동운동가’가 된 김미숙 씨, 발전 비정규직 노조 활동가로서 김용균투쟁에 깊숙이 관계해온 이태성 씨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이 책은 김용균 씨의 죽음과 그 이후의 싸움을 보여주며, 산재가 한 노동자와 한 사업주 사이의 개별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드러냅니다. 나아가 그 죽음을 각각의 방식으로 겪어내는 이 셋의 이야기 역시 피해자이자 생존자의 목소리라는 것을 환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치지 않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여전히 외쳐야 하는 현실, 비정규직 규모가 1,1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현실, 위험과 죽음이 외주화된 현실 앞에서는 우리가 살아남은 김용균들에 다름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는 데, 우리가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하는 데 이 책이 작은 역할이나마 하기를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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