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2014년 온라인에서 꽤 화제가 되었던 논문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을 바탕으로 쓰셨어요. 논문 이후 단행본 출간까지 무려 8년이 걸린 셈인데, 소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간략한 소회와 함께, 책을 출간하기까지의 8년을 요약해주신다면요?
원래 자기가 쓴 옛 글은 현타를 부르기 마련이라는데, 제가 느낀 가장 큰 현타는 8년이라는 세월이었습니다. 문제의(?) 논문이 나온 이후 대통령이 세 번 바뀌었고, 제 일자리도 세 번이나 바뀌었으며, 제 위치 또한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청년에서 장년으로, 미혼남에서 유부남 애아빠로 변이했습니다. 말하자면, ‘먹고살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8년이 흘러버린 것 같습니다.
그사이 국내 사회과학계에서 낯설게 여겨졌던 ‘빅데이터’ 방법이 발전을 거듭했고, 일베에서 파생되었거나 2014년 연구 때부터 예상하기도 했던 다양한 사건들이 터져나왔습니다. 석사 졸업 이후 허덕이나마 데이터 분석계의 언저리에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기술의 발전을 지켜보자니 연구에 더 적절한 방법을 적용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머릿속 긁지도 못할 어딘가에 항상 점처럼 걸려 걸리적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결정적으로, 이 책 서문에서도 언급했지만 “젊은 의사들”의 공공의대 설립 반대 주장을 보고 헛웃음이 터지면서 ‘개고를 하긴 해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되었어요. 아마 적잖은 분들이 “전교 1등” 운운하며 어떤 의사를 선택하겠느냐는 카드뉴스에 공분하셨거나, 혹은 이미 그 존재조차 잊으셨을지 모르지만, 발심의 계기란 원래 그렇게 우연스러운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책 쓴다 쓴다 하고 미적대고 있는 와중에 그런 계기를 만나고, 때마침 오월의봄에서 좋은 제안을 주셔서 이렇게 인사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김학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Q2. 서문 이야기가 나온 김에 좀 더 얘기해볼까요. 서문을 ‘왜 다시 일베인가’에 대한 일종의 대답으로 쓰셨어요. 이제 혐오문화의 새로운 구심점은 유튜브이고 “이른바 ‘문제적’인 사건 또한 일베보다는 에펨코리아(펨코)에서 더 자주 발생”하지만, 최근의 정치/사회적 상황은 일베의 영향력이 사라졌다기보다는 “오히려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고요. 이 “확대”에 대해, 그리고 2014년의 논의를 갱신한 이유에 대해 좀 더 상세히 말씀해주세요.
이게 또…… 소회의 일부일 텐테, 초고에는 일베의 현황을 이야기하는 부분에 오아시스의 인터뷰 한 장면을 캡처한 짤(“우린 ×× 예전에 끝났어”라고 말하는)이 있었어요. 편집 과정에서 잘렸지만요. 대단히 아쉽게 생각하는데요, 아무튼 실로 그러합니다. 2022년 오늘날의 시점에서 일베는 정말이지 보잘것없는 커뮤니티라고 해도 될 겁니다. 여러 데이터들이 증명해주고 있고, 이번 책을 위해 새로 진행한 데이터 분석 결과를 보더라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일베에게서 과거의 ‘위광’을 찾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디시에서 발원하여 일베가 완성한 혐오의 내용과 표현 방식, 즉 농담의 탈을 쓴 혐오는 더욱 널리 퍼졌습니다. 과거에는 ‘일베충’ 한마디로 정리되었을 혐오발언들이 ‘드립’과 ‘팩트’, ‘정의’나 ‘능력’ 따위의 말과 버무려져 일베와 일베 아님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섞여버렸어요. 이른바 ‘만물 일베설’이란 말이 있는데, 뭐든 마음에 안 들면 일베라고 낙인찍고 추궁하던 행태를 비꼬던 이 말이 기묘하게도 자기실현적인 예언이 돼버린 것 같아요. 일베를 배태한 디시 야갤러들이 암호처럼 쓰던 야민정음이 ‘멍멍이’를 ‘댕댕이’로 쓰는 것처럼 귀엽고 신선한 표현으로 활용되는 사례는 귀여운 수준의 역동이고, 자신이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정의’의 이름으로 혐오에 투신하는 일들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오늘날을 흔히 ‘혐오사회’라고 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다들 신나게 혐오해왔으면서 이 모든 것들이 갑작스러운 양, 마치 특정 집단이 모든 문제의 원인인 양 당혹해하거나 비분강개하는 모습이 보기 힘들기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더더욱 일베와 일베 아닌 것, 혹은 일베를 일베이게 하는 조건을 보려 했던 과거 작업에 대한 갱신 또는 재강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Q3. 일베가 어디서 뚝 떨어진 ‘괴물’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 딴지-디시-일베로 이어지는 일종의 계보를 훑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무척 흥미롭습니다. 이처럼 일베를 타자화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보편화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줄곧 말씀하시는데, 책을 쓰면서도 이 지점에서 여러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특별히 유의했다거나, 잘 풀리지 않아 어려웠던 부분이 있었나요?
어떤 일이든 균형을 잡는 일이 어려운 것 같아요. 연구자로서도 마찬가지여서, 균형이 중요하다고 계속 생각하면서도 일베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화가 나다못해 피가 식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자연히 가끔은 연구대상에 대한 증오나 환멸이 심해질 때도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타자화와 보편화 사이의 균형을 따지는 게 정말 의미가 있는 일일까, 그런 회의에 빠진 날이 많았던 것 같아요. 책의 3장에서는 일베 게시물을 다루는데요, 그들의 말들, 특히 댓글을 하나하나 읽고 정리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그 양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활자들을 마주하는 정신적인 스트레스 때문이었지 싶어요.(그 글들을 다신 읽기 싫어서 데이터 분석을 시작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악은, 이들에 대한 증오로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이들에 동기화되고 있는 저를 발견했을 때였던 것 같아요. 일베의 가장 강력한 전략인 ‘웃음’을 피하는 것, 또는 웃음을 의도한 글 앞에서 거리를 두는 것이 가장 어려웠지 싶습니다. 일베에 들어가보신 분들, 또는 약간 고약한 취향의 유머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일베적인 웃음코드가 뭔가를 분명히 ‘건드린다’는 것, 그래서 종종 폭발적인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걸 경험해보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웃음이란 강력한 마력을 가지고 있어서, 글을 보고 낄낄대다 보면 그 분위기에 휩싸여 마치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웃음의 대상, 곧 타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환영을 느끼게 됩니다.
Q4. 2011년~2020년 일베 데이터 전수를 수집해 분석한 2장과 일베 이용자 10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4장은 이 책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울러 일베가 보여주는 혐오의 행태가 과연 ‘일베만’의 문제인지를 물으며, 나름의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했던 루리웹과의 비교 분석을 진행하는 5장도 놓칠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저자로서 이 장은 꼭 읽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있다면, 그 이유는요?
제가 학위논문을 쓰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경계하는 것은 인상비평 그 자체입니다. 이 책에 풀어낸 일베 게시물에 대한 양적 분석, 게시물 하나하나에 대한 담론 분석, 일베 이용자들과의 심층인터뷰, 그리고 일베의 ‘피안’이라 여겨진 루리웹과의 비교는 일베 또는 일베적 멘털리티를 탐구하기 위한 실증적 자료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간 과정이라서, 부족하나마 책 전체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굳이 꼽자면…… 아무래도 인터뷰를 다룬 4장 말미에 제시한 평범 내러티브에 대한 내용입니다. 많은 분들과 함께 논의해보고 싶은 내용이에요. 언젠가 기회가 되는 대로, 제가 일베를 일베이게 하는 핵심이라고 주장한 평범 내러티브에 대한 독자분들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하나만 더 꼽자면 이 질문의 바로 앞 질문에서 언급하신 부분, 일베의 계보를 말하는 1장도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일베, 나아가 사이버공간에서의 혐오는 갑작스럽게 등장한 게 아니라 나름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배양된 것이고, 지금도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피해가기 어려운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그냥 다 읽어주십사 하는 것 같아서 겸연쩍긴 합니다.
Q5. 일베의 등장은 ‘혐오의 자유’를 말하는 이들의 등장이기도 했지요.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었고요. 책을 읽다 보면 사이버공간에서의 혐오표현이 ‘유머’와 너무 긴밀하게 붙어 있어서 이 지경이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어떤 이들은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가 대부분 ‘일베화’되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지요?
우선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유머는 결코 남초 커뮤니티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당장에 SNS만 보더라도 여초카페를 출처로 하는 각종 유머 게시물들이 엄청난 반응을 얻고 있죠. 몇몇 페이스북페이지는 아예 그런 (거의 불법인) 캡처 게시물로만 콘텐츠를 꾸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이버공간에서 ‘웃음’은 핵심 동력이자 일종의 자본이에요.
문제는 이 웃음을 유발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어떤 농담은 ‘기대되는 행위와 배치되는 것’을 제시하며 웃음을 유발하지만, 어떤 농담은 대상의 ‘열등함’을 지적하며 웃음을 유발합니다. 특히 후자는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유력하게 자리해온 농담의 장르였다고 할 수 있는데요. 타인을 비방 또는 비하하는 농담은 그 말이 ‘농담’이라는 점에서 발화자에게 거의 무제한적인 사면권을 제공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쉽게 말해, ‘웃자고 한 말에 왜 죽자고 달려드느냐’는, 그래서 달려든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건데(예컨대, 최근의 윌 스미스처럼요), 이는 농담의 탈을 쓴 혐오가 비판에서 빠져나가는 가장 전형적이고도 쉬운 방법입니다.
‘일베화’라는 말에 대해서는 워낙 다양한 평가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강력한 ‘성토’가 포함되어 있으니 웃음의 문제만으로 볼 일은 아닐 거예요. 일베와 펨코, 디시, 나아가 루리웹이나 인벤, 클리앙 등 잘 알려진 대규모 남초 커뮤니티들은 대개 반페미 정서를 공유하거니와, 제가 책에서도 거듭 주장하듯이 이러한 정서는 결코 새로운 게 아니고 아주 오랫동안 체계적으로 길러져온 것이기에, 커뮤니티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새삼 ‘일베화’라는 명명이 필요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Q6. 마지막으로, 곧 출간될 《보통 일베들의 시대》를 읽을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워낙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글을 탈탈 털어내 정리한 책이라 개인적으로는 뿌듯하지만, 여전히 곳곳에서 아쉬운 점들이 눈에 밟히기도 합니다. 특히 8년 전 인터뷰에 응한 일베 이용자들에게 그래서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박근혜 탄핵이나 ‘이대남’ 부상 등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렇게도 추구했던 ‘평범’에 이르렀는지를 물어보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제가 그들의 모든 말을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했겠지만, 그들이 ‘일베’인 동시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남성-청년이기도 하다는 데 집중해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여러 해에 걸쳐 조금씩 수정하고 보완하며 쓴 책인지라 몇몇 곳에서는 시간적인 간극을 느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개똥녀 사건 등 오늘날의 20대 독자라면 낯설게 느껴질 사건들도 언급이 되고요. 각주 등으로 이런 간극을 메워보고자 했습니다만, 미처 메우지 못한 부분들도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회과학 도서에서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데이터 분석 관련 용어들도 장벽이 될 수 있겠지요. 해서, 의도와는 달리 어떤 독자에게는 끝내 불친절한 글로 읽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모쪼록 너른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