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안녕하세요. 편독자입니다. 5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흐리고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더니, 요 며칠은 제법 초여름의 문턱에 들어선 느낌이 나네요. 이쯤 되니 동시에 올해도 벌써 반이 지나고 있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되새기게 됩니다. 낼 책은 아직 많은데, 반년이나 지났다니!(놀람과 공포)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요?😅
저는 조만간 여러분께 소개해드릴 신간 마감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감 기간에 성급히(!) 이런 글을 끄적거리고 있으니, 일종의 ‘마감 일기’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6월 둘째주 초 정도면 만나보실 수 있을 것 같고, 조만간 열릴 서울국제도서전에서도 재미있고 뜻 깊은 이벤트와 함께 찾아갈 예정이에요.
그래서 그 책이 무엇이냐면요. 《틈새 연대기》라는 제목을 가진 에세이입니다. 부제는 ‘해방과 추방 사이를 떠도는 몸의 질문’. 임신중지, 데이트폭력, 강간, 자위, 오르가즘, 폴리아모리, 비혼 등 사적인 것으로 탈락되어온 이야기를 통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다룬 독보적인 작업 《붉은 선》을 시작으로, 퀴어 페미니스트 무당으로서 선보인 《신령님이 보고 계셔》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등을 통해 단단한 독자층을 확보한 (홍)칼리 선생님의 신작이에요.
이번 책부터는 ‘정홍칼리’라는 새 이름으로 인사를 드리게 될 텐데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신령은 성차별과 종차별을 넘어서는 존재”(인스타그램 소개글)라는 세계관 속에서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아시아 여성, 성노동자, 정신장애인 등 무척 다양한 소수자들의 넋과 호흡하며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계십니다. 스스로를 정확히 “퀴어 페미니스트 비건 샤먼”으로 소개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3년만의 신작인 《틈새 연대기》는 여러 가지 얼굴을 지닌 책입니다.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묵직한 흙내음이 느껴지기도 하고,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날에 만물이 머금은 눅진한 습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그러다가 어떤 대목에서는 쾌청한 햇빛에 갓 구워진 빨래의 보송함과 경쾌함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독창적입니다. 독창적인 책은 세상에 많지 않냐고요? 맞는 말이죠!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독창성은 뻔한 소재와 뻔한 궤적에서 다른 것, 즉 ‘틈새’를 발견하는 갖가지 일상적 실천들에서 비롯됩니다. ‘해외여행(기)’라는 너무나 예상 가능한 소재와 형식을 제시하는 듯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판타지의 이면과 심연을 향해 나아가죠.
이 책을 여행기이면서 동시에 여행기가 아니라고 소개한 이유도 거기 있어요. 책을 열면 펼쳐지는 첫 꼭지의 첫 장면(인도 델리 공항)은 이 책을 그 흔한 여행기로 잠시 착각하게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이 여행이 시작부터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추방’인지 ‘해방’인지 모를 알쏭달쏭한 여정을 시작하게 된 가난한 이방인 여성(저자)은 그때부터 ‘틈새의 존재’로서 세계를 표류하며 여러 질문들을 발견하고 다듬어나갑니다. 질문의 대상은 주로 남성중심의 가부장 국가권력이 지탱시키는 구조와 질서. 이방인은 이 지긋지긋한 망령귀가 한국뿐 아니라 지구 어디서든 암약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름다운 이국의 풍경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들.
이렇게 《틈새 연대기》는 끝내 ‘여행기’의 형식을 벗어던져버립니다. 호화로운 포장지로 싸여 있지만 동양(인) 혐오와 서구우월주의, 성차별 등이 본질을 이루는 해외여행의 판타지를 가감 없이 벗겨내는데요. 여성-아시아인-퀴어-무당-성노동자-정신장애인-약초 수행자-비영어 사용자-……라는 한계 없는 소수적 정체성으로 자기 자신과 타자를 (재)구성하는 존재가 세계를 표류하며 어떤 장면들과 조우하는지, 또 어떤 틈새의 연대들을 펼쳐내는지 기대해주세요.
더불어, 본격적인 책소개에 앞서 칼리 선생님께서 《틈새 연대기》를 읽어주신 독자분들을 생각하며 정성껏 만들고 그린 행운의 인장을 먼저 보내드립니다. 《틈새 연대기》의 서사가 듬뿍 담긴 멋진 인장을 구경하며 이 책의 내용을 마음껏 상상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럼 곧 다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