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레터에서는 우리가 지나치지 말아야 할 목소리,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진 이야기를 다룹니다. 첫 문장처럼 '~해야 한다'와 같은 당위의 문장을 발음하거나 읽는 일은 어쩔 도리 없이 늘 가슴의 일렁임을 동반하는 것 같아요. 문장과 행간, 그리고 말과 글로 나타난 사람들을 읽어내면서 현실에 개입하기.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알고, 묻고, 기억해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58호를 발행합니다.
p.s 지난 레터 57화에서 후마니타스 출판사 안중철 대표님의 성함에 오기가 있어 바로잡습니다.
(*안종철→안중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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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우리가 지나치지 말아야 할 목소리
📚 편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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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 28일에 발행된 〈오!레터〉 34화 ‘싸움에도 계보가 있다’를 기억하시나요? 노동운동과 장애인운동을 다룬 신간들을 엮어 구성했던 투쟁특집호였는데, 구독자분들께서 큰 호응을 보내주셔서 뿌듯했어요. 올해는 5월 1일 노동절에 맞춰 《당신의 작업복 이야기》를 선보이기 위해 한창 막바지 작업 중입니다. 이 책을 작업하며 노동문제를 다루는 기존의 책들을 여럿 참고했는데, 그중 다수가 오월의봄 책들이었어요. 우리가 이렇게 많은 노동 책을 내왔구나, 새삼 깨달은 순간이었죠. 올해도 또 한 권의 노동 책을 낼 수 있어 기쁩니다.
특히 눈에 띈 건, ‘노동’이라는 같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다양한 형식과 구성을 시도했다는 점이었는데요. 이번 신간처럼, ‘작업복’이라는 소재를 통해 노동 현장의 문제를 관통하는 책, 일하다 다치거나 질병을 얻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책, 일터에서 발생하는 죽음을 다루는 책, 일터의 성차별과 젠더 폭력을 다루는 책, 노동자의 권리와 그것을 둘러싼 법과 제도, 문화를 친절히 가이드해주는 책, 노동계급의 투쟁을 세계사적 맥락에서 짚어주는 책 등등등…… 정말 많죠? (여기 나열하지 못한 책이 아직 많습니다^^;;)
‘노동 책에도 계보가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알찬 리스트네요. 그래서 이번 호에서는 곧 나올 신간 《당신의 작업복 이야기》를 비롯해, 오월의봄의 또 다른 노동 책을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숨은 노동 찾기》와 《달빛 노동 찾기》인데요. 세 책 모두 각각의 노동 현장에 대한 심도 깊은 취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본문 일부를 (p)re-view 형태로 재구성해봤어요. 이 책들에 등장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말들이야말로, 우리가 절대로 지나치지 말아야 할 목소리일 겁니다. 작업복 책은 ‘미리보기’로, 찾기 세트인 두 책은 ‘다시보기’로 함께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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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 땀, 눈물, 그리고 작업복: 《당신의 작업복 이야기》
📝 경향신문 작업복 기획팀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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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의 작업복 이야기》가 ‘작업복’ 그 이상의 이야기로 읽혔으면 합니다. 작업복을 주소재로 다루지만, 이 책이 겨냥하는 건 결국 우리 사회의 ‘노동 환경’이거든요. 작업복은 그 환경을 가늠해보는 일종의 바로미터이자 매개체고요. 작업복이나 장비라는 극히 세부적인 소재를 가지고도 얼마나 많은 노동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지, 작업할 때 입는 옷 한 벌에도 얼마나 많은 현장의 고충이 담겨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봐주시면 이 책을 입체적으로 읽어보실 수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이 책의 큰 줄기를 이루는 3개의 부를 구성할 때 염두에 둔 것들이 있습니다. 주로 현장의 특성에 따라 작업복의 종류를 가늠하고 부를 나누었는데요. 자본주의의 뒷면(쓰레기)을 담당하는 노동자(〈1부 오물을 뒤집어쓰는 옷〉), 남초 직군으로 알려진 건설/용접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와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서비스업계 여성 노동자(〈2부 차별을 입히는 옷〉), 물과 불이라는 상반된 물질과 사투를 벌이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과 급식노동자(〈3부 물불 가리지 않는 옷〉)의 이야기로 줄기를 잡았습니다. 서로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저는 이 책이 ‘작업복에 대한 취재’를 넘어 ‘우리 사회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이들에 대한 기록’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노동의 종류와 형태는 다르다 할지라도요. 특히, 하수처리장이나 재활용품 선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이야기나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의 이야기는 어디서도 쉽게 접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붐비는 지하철이었는데도 딱 제 주위에만 사람들이 안 오는 거예요. 샤워 다 하고 씻었는데도 그래요. 어깨장화 신고, 방진복 입고 아무리 꽁꽁 싸매도 냄새가 뚫고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일부러 열차 칸 사이 통로에 서 있을 때도 있어요. 거긴 아무도 없으니까. ‘오늘은 이 옷을 깨끗하게, 무사히 벗고 싶다’는 게 매일 비는 소원이에요.”
―하수처리 노동자 장경환씨(가명)
“어두운색 옷을 입으면 지저분한 일을 한다는 인식을 주는 것 같아요. 점심시간에 지상으로 올라가면 우리를 아래위로 훑어보는 듯한 시선이 분명히 느껴지거든요. 각종 자격증도 있어야 하고 전문 지식이 필요한 일인데도 맨홀 아래에 들어가 있으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옷이라도 외출복같이 환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금방 더러워지겠죠. 그래도 밝고 깔끔한 옷을 입으면 이 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이나마 바뀌지 않을까요?”
―하수처리 노동자 장경환씨(가명)
“제 친구들도 제가 여기서 일하는지 몰라요. 안 보이니까. 하남 스타필드 옆 지하에 소각장이 있다고 하면, ‘거기 지하가 있어?’라고 해요. 일반 시민들이 하남시에 폐기물 처리 설비가 있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정도만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소각처리 노동자 허윤길씨
“집다 보면 구더기도 있고 바이러스도 들어 있을 수 있는 걸 매일같이 손으로 만지죠. 작업하다 어디 가서 씻을 데도 없어요. 유해 물질이 집으로 옮겨지고 아이들한테 영향이 갈 수밖에 없는 거죠.”
―환경미화원 유승덕씨
“정말 정신없더라고요. 사방에서 불은 번지지, 불길이 너무 세니까 ‘우리가 이걸 어떻게 잡을 수 있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 경사도가 급한 데서 불 끈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룻밤 새 불을 껐는데, 언제 지나가는지 모르게 껐어요. 생각해보면 끔찍하고 위험한 순간이 많았죠.”
―산불재난특수진화대원 신현훈씨
“저희가 독한 세제를 많이 써요. ‘오븐 클리너’라고 하는 건데 피부에 닿으면 피부가 그대로 타요. 분명히 방수앞치마로 무릎을 감싸고 후드를 닦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오븐 클리너가 앞치마 갈라진 틈을 그대로 통과하고, 바지 속으로까지 스며든 거예요. 따끔따끔해서 보니 피부가 타고 있었어요. 1년 넘게 치료했어요.”
―급식노동자 유혜진씨(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서울지부 급식분과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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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을 잃은 그대에게: 《달빛 노동 찾기》
📝 신정임·정윤영·최규화 지음, 윤성희 사진, 김영선 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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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달빛 노동 찾기》는 제가 정말 애정하는 책이에요. 제목부터 참 좋은데, 《숨은 노동 찾기》의 후속편 격으로 나온 책이죠. ‘달빛’이라는 단어는 아름답지만, ‘달빛 노동’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기록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쓰라린 마음으로 읽었어요. 제목에서 짐작하실 수 있듯, 우리 주변에 있는 ‘야간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놀랐던 건, 이 야간 노동자들이 특별하고 생소한 일을 하는 이들이 아니라, 제가 아무렇지 않게 영위하는 일상을 곳곳에서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이었어요. 바꿔 말하면, 우리가 일상에서 누리는 크고 작은 여러 편의가 실은 누군가의 밤잠을 앗아가는 야간 노동을 통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죠. 도시를 굴러가게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많은 야간 노동을 요구하는지, 이 사실이 얼마나 비가시화되는지, 그리고 그것이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불평등하게 배분되는지 선연히 보여주는 이 책을 권합니다.
특히 항공기 기내 청소를 담당하는 조업 노동자들, 1년 365일 새벽부터 새벽까지 운행되는 지하철을 살피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자들, 《당신의 작업복 이야기》에도 등장하는 단체급식 조리원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말끔함’이라는 흔적만을 남긴 채 사라지는 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들렸으면 합니다.
“아무 때나 불러요. 나오라면 그냥 나가야 돼요. 스케줄을 정해도 한 시간 일찍 나오라 하면 나가고. 정상적으로 스케줄이 돌아가려면 지금보다 40~50명이 더 필요해요. 바꿔 얘기하면 고용 안 하고 다른 노동자들 피 빨아 먹고 있다는 거예요. 하루 15시간씩 일하면 죽어요, 죽어. 다들 잠 못 자고 일에 시달리니까 삶이 피폐하죠. 근로기준법은 없고 비행기가 법이에요.”
―항공기 기내 청소 노동자 지명숙·김태일씨(공항항만운송본부 비정규지부 노동자)
“오후 6시에 출근해서 오전 9시 10분에 퇴근을 하는데요. 역사에 있는 안내부스에서 1시간씩 교대로 근무를 합니다. 중간에 돌아가면서 한 명씩 식사를 하고 오고요. 역무실에 들어와서는 승차권 판매에 따른 수입금을 마감하고 앞서 얘기한 역무원들이 하는 일들을 합니다. 관제센터에서 어떤 시설물이 안 좋다고 연락이 오면 확인하러 가기고 하고요. 그러다가 막차가 0시 58분에 들어오면 손님들이 모두 내리도록 안내합니다. 막차엔 취객들이 많아서 안 내리려고 버티는 사람들 상대할 때면 난감하죠. (……) 휴식자들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첫차를 맞을 준비를 하러 나오고, 당직자는 첫차를 함께 보낸 뒤 새벽 5시 40분쯤 들어가서 3시간 휴식을 취합니다. 우리 조는 한 명 있는 여직원이 한 달에 한 번 당직을 서고 나머지는 저랑 한 직원이 서로 돌아가면서 당직을 서고 있습니다.”
―서울교통공사 노동자
“잠을 제대로 못 자니까 몸에 무리가 많이 가죠. 한번은 잠도 잘 안 오고 목소리가 거의 안 나와서 병원까지 찾아갔어요. 의사 선생님이 대뜸 ‘어떤 근무를 하세요?’라고 묻더라고요.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한다니까 그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이명이 생긴 지도 꽤 됐고요. 저뿐만 아니라 10년 넘게 일한 직원들 중엔 귀가 멍하게 울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단체급식 조리원 박정연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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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도 익숙한, 그러나 너무도 낯선: 《숨은 노동 찾기》
📝 송기역 기획, 최규화·정윤영·신정임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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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가 뭔지 아시나요? ‘당신이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 이야기’입니다.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인데, 왜 우리는 ‘숨은 노동’을 찾아야 할까요? 책 뒤표지의 카피도 정확히 이 지점을 건드리고 있죠. “우리 곁에 늘 있는 사람들, 그런데 왜 보이지 않을까?” 수많은 노동 책들을 접하며 하게 된 생각인데, 노동의 핵심은 언제나 ‘비가시성’에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재화나 서비스든 우리가 그것을 온전히 누리려면, 그것을 관리하는 이들이 존재해야 하고 필연적으로 ‘노동’이 따라야 합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그 노동 혹은 노동의 흔적이 이용자에게 보여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노동의 과정’은 생략되고, 우리는 언제나 ‘노동의 결과물’만을 접하죠. 멀쩡하고 말끔한 사물의 상태를 보며 그 뒤에 숨겨진 누군가의 노동을 짐작하고 연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이 책 《숨은 노동 찾기》의 기획이 돋보이는 건 그래서입니다. 이 책을 기획하신 송기역 시인의 서문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앞으로도 이런 책을 계속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고민을 이어가게 해주는 구절이거든요! 여러분도 꼭 같이 읽어봐주세요.
“우리가 매일 만나는 노동자들.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어떤 개인사를 간직한 채 지금 그곳에서 땀 흘리고 있을까? 우리는 대개의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적당히 꾸며진 성공담이나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들의 이야기를 찾아나서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는 오늘자 신문이나 조만간 도착할 잡지의 지면 곳곳에 모자람 없이 실려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외롭게 싸우는 이들의 ‘송곳 같은’ 이야기이고 우리 사회 불안정노동의 보고서이기도 하다.”
“간식 챙겨주고, 짬날 때마다 청결하게 하고, 말벗해드리고, 무엇이 불편한지 알아보고, 이걸 계속 반복해서 해야 해요. 진짜 치매 환자는 계속 불러대고 이렇게 누이면 저렇게 뉘여달라, 저렇게 누이면 이렇게 해달라, 물 달라, 오줌 마렵다, 사람이 떨어지면 무서우니까 계속 부르는 거예요. (……) 몸종 하나 샀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취급해요. 못해주면 서비스 업종인데 뭐하느냐, 하고. 간병사들끼리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는데 보호자 입에서 ‘선생은 무슨 선생이야, 지까짓 것들이’ 그런 말을 들으면 직업에 대한 회의를 느끼죠.”
―청주시노인전문병원 요양보호사 권옥자씨
“딱 두 차례 쉬는데 쉬는 시간에 중간 입금도 해요. 한 번에 마감하면 너무 많으니까 중간에 입금을 하는데 사실은 이것도 업무죠. 전에는 식사도 거의 마시는 수준이었어요. 왔다 갔다 하는 것만도 15분이 걸리잖아요. 그래서 밥 시간을 10분 더 늘렸어요. 그러면서 10분 더 시간 주는 거라고 얼마나 생색을 내는데요.”
―서울고속도로 톨게이트 수납원 한은미씨
“모아놓은 걸 차에 실어야 되잖아. 차에 실은 걸 버리고 와야 되거든. 그러니까 세 사람씩은 꼭 타고 가는 거야. 둘은 위에서 쏟아내고, 밑에서 마대를 개갖고 다시 갖고 와야 되거든. 한 번에 다 못 실으니까 그렇게 하는데 다섯 번씩 왔다 갔다 하면 그것만 해도 열 시간이야. (……)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은 냄새가 역겨워서 환장하지. 막말로 여름 같은 때는 음식물 통을 열면, 허연 구더기가 손으로 막 올라와.”
―K기업 청소 노동자 박봉순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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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많이 읽고 싶은 분들을 위한 오월의봄 ‘노동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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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버씨의 죽음: 갈아넣고 쥐어짜고 태우는 일터는 어떻게 사회적 살인의 장소가 되는가
김영선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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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 기획, 이은주·박희정·홍세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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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김용균재단 기획, 권미정·림보·희음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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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획, 김철식·김혜진·신순영·안명희·엄진령·윤지영·이미숙·장귀연·최은실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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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으로 할 수 있는 일
⏳ 모래
타인의 시간적 감각을 헤아려보는 일
온다프레스에서 지난 10년간 세월호 유족들이 밟아온 삶의 경로를 담은 세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2022년 봄부터 2년 여간 단원고 피해자 가족 62명과 시민 55명을 총 148회 인터뷰하고 참사 관련 기록들을 검토하여 종합해낸 《520번의 금요일: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2014~2023년의 기록》, 이제는 20대 후반 청년의 삶을 살고 있는, 세월호참사 당시의 생존자, 형제자매, 시민의 이야기를 담은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세월호 생존자, 형제자매, 그 곁의 이야기》, 한국의 작가들이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고자 10년간 치러온 ‘304낭독회’의 작품선집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304낭독회 2014~2023 선집》. 이 책들을 펼치고, 소개글을 쓰기까지 많이 망설여졌어요. 이 망설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들여다보는 시간을 오래 가졌는데, 내 슬픔을 우선으로 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마음이 얼마나 좁고 알량한 것인지… 직면하고 맞서며 오랜 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이 책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러워졌고,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그 용기를 읽어내고 소개하고자 이렇게 몇 자 적어봅니다.
이 세 권의 책을 읽다 보면 누군가에겐 시간이 선형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진실을 새삼스럽고, 낯설게 마주하게 됩니다. 때로 과거는 미래를 예상할 때만큼 요원하게 느껴지고,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 앞에 ‘벌써’라는 수식을 붙이는 것은 매우 익숙하니까요. 시간은 그저 흘러갈 뿐이라고, 누구나 쥔 것만 같은 진리를 잠시 옆으로 제쳐 두고 타인의 시간을 가늠해보는 일, 그러다 실패하는 일, 그럼에도 멈추지 않겠다 다짐하는 일은 이 책들을 들여다볼수록 사건처럼 일어납니다.
“다른 사람들한테 10년은 어느 정도 시간의 흐름이에요? 궁금해요.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저의 속도가 분명히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 같아요. 저는 세월호참사가 나고 10년이 됐다고 안 느껴져요. 얼마 안 된 사건 같아요. 사실 좋은 것만 기억하고 싶은데 동생을 생각하면 좋았던 것보다 아픈 기억들이 더 커요. 왜 그런 건 옅어지지도 않는지.”ㅡ남서현(구술자, 세월호참사 유가족 형제자매), 〈날마다 한 걸음씩, 그렇게 10년〉,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p.330
나는 세월호를 알고 있을까
책을 읽을수록 들었던 생각, ‘나는 세월호참사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는 정확하게 곱표를 칠 수밖에 없었어요. 아이의 시신을 먼저 찾은 부모들이 남은 부모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남은 부모들은 찾은 부모들에게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해야 했던 그 비통의 시간을, 그렇게 ‘마지막 한 사람이 돌아올 때까지 함께 기다리겠다’며 방파제에 촛불을 밝히던 날들을, 차디찬 바닷물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던 희생자들의 엉켜 있는 팔을 주무르면서 ‘엄마한테 가자’라고 달래니 신기하게도 굽어 있던 몸이 풀렸다는 이야기를, 희생자의 사촌오빠인 척 다가온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모두 했지만 그가 기자인 걸 알았을 때의 배신감과 허망함을, 슬픔과 무력함을 겹겹이 껴입고도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다’라는 편견에 주위를 서성이다 드디어 “저도… 말해도 되나요?”라고 내뱉는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가지 않아 학교에 남겨졌고, 친구들과 일상을 잃었지만 ‘피해자와 생존자’라는 이분법 안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산소중독 증상으로 쓰러졌지만 바로 복귀해 활동을 이어간 잠수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친구의 장례식에 가지 못하게 하는 의료진을 피해 몰래 옷을 갈아입고 빠져나가던 초조한 걸음을, 끝까지 마지막 인사를 못했던 이들의 죄책감을,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스러져갔던 친구와 가족을 위해 무언가 하고 싶었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또다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사람들을……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만나게 되었어요.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도 저는 ‘안다’고 결코 말하지 못하겠지만, ‘모른다’는 말이 가지고 있는 외면의 성질 또한 정확하게 직시해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얼굴들을 생각하며
인생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은 그 자체로 의미 있기도 하지만, 우리를 둘러싼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그것을 나의 일로만 그치지 않고 확장할 때 생겨납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요? 합당한 이별을 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하여 누군가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사람들,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들은 여기에 남아서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재난참사를 설명하는 더 나은 방법을 알고 싶어서’ 담론을 분석하고(이영수), ‘누구한테나 일어날 수 있지만 그 누구한테도 일어나서 안 되는 재난참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트라우마를 안고서라도 다른 유가족과 연대하고(수진 아빠 김종기), 생존자인 자신이 가지는 책임감으로 또 다른 참사의 생존자를 위로하고(장애진), ‘우리 같은 생존자의 이야기도 누군가에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며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하는(김주희)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상실 이후에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주고 있어요. 모르는 이들에게도 다시는 같은 고통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의지. 그것이 이 책들 속 행간에서 가장 또렷하게 느껴졌습니다. 유가족과 남겨진 사람들이 ‘슬퍼하기를 멈추지 않기’를 저항의 수단으로 삼아왔던 것처럼, 우리 역시 기억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기록의 계보가 존재하는 궁극적인 이유일 테니까요.
“우리가 그 애도를 통해서 되살리려는 게 뭘까를 계속 생각한다. 그냥 관성처럼 기억하자, 잊지 말자 하는 게 아니다. 물론 그 사건 자체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하고 의미화하는 게 무척 중요하고 아직까지 진상규명이 안 됐다는 게 너무 답답하다. 하지만 애도를 통해 결국 살리려고 하는 게 삶이라는 말을 향해 우리가 모인다는 것 자체 아닐까.”ㅡ양경언, 〈대담: 읽고 쓰기에 담긴 힘을 믿는다는 것〉(김현·양경언·황정은),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의 말을 이어갑니다》, p.297
✳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세월호참사 이후 다른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인권활동가들이 모여 있다. 피해자의 시선으로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애쓰며, 그것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들 길을 찾아 세월호 가족과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해왔다. 박민진(한낱), 박지연, 박희정, 배경내, 어쓰, 이호연, 홍세미, 홍은전 등이 취재 및 집필에 참여했다.
✳ 사단법인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가족협의회
세월호참사 직후 ‘세월호 단원고 유가족대책위’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2015년 1월 단원고 희생자, 생존자 일반인 희생자, 생존자 그리고 생존 화물기사까지 아우르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피해자 가족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사단법인 조직체계로 개편했다. 지난 10년간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사회적 기억 및 추모 조성을 위해 앞장서왔다. 국가폭력 및 다양한 재난참사 피해자들과의 연대활동 등도 활발히 벌여왔다. 가족협의회 활동은 재난참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및 재난피해자 권리 증진의 큰 마중물이 되었다.
✳ 304낭독회
세월호참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작가들과 시민들이 꾸려가는 모임이다. 희생자 304명을 추모하는 뜻으로 매월 한 차례씩 총 304회를 치를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4년 9월 광화문광장에서 첫 번째 낭독회를 치른 이래로 테이크아웃드로잉, 구본장여관 등 투쟁 현장과 단원고등학교, 대학 도서관, 마을 책방 등 다양한 삶의 장소에서 낭독회를 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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