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삶의 목적이 되어버린 우리의 삶
왜 우리는 늘 상처받고 고통받으며 살아갈까?
《상처받지 않을 권리 다시 쓰기》 출간
🚶♂️ 산책자
‘강신주’라는 이름을 널리 알린 책
책 제목에 ‘다시 쓰기’라는 말이 붙어 있죠? 네, 맞습니다. 이 책은 ‘개정판’입니다. 원래는 2009년에 《상처받지 않을 권리》라는 제목으로 출간됐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당시 이 책이 얼마나 유명했는지를요. 2009년 초판 출간 당시 언론사 평을 잠시 살펴보지요.
“‘사용’보다 ‘기호가치’로서의 자본주의 소비 성찰”(〈경향신문〉)
“자본주의의 덫에 걸린 욕망의 군상들”(〈동아일보〉)
“돈에 예속되는 자유 그 안에서 병들어가는 현대인”(〈서울신문〉)
“자본주의적 삶의 허실에 대한 인문학적 진단과 처방”(〈한겨레〉)
“자본주의의 비뚤어진 욕망을 직시하자고 주문하는 책”(〈연합뉴스〉)
“20세기 자본주의의 역사와 인간의 욕망을 다룬 인문 교양서”(〈조선일보〉)
“‘소비의 자유’... 알고 보면 ‘돈에 대한 복종’”(〈오마이뉴스〉)
“인문학적 관점으로 자본주의의 속살 들여다기”(〈부산일보〉)
초판 출간 당시 언론사 평만 봐도 ‘화제의 책’이었다는 걸 알 수 있을 겁니다.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고, 이 책을 계기로 저자 ‘강신주’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만 해도 저자 강신주는 장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소장 동양철학 전공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서양철학자가 대거 등장합니다. 이 책이 나온 뒤 강신주는 동서양 철학을 종횡무진 횡단하는 철학자이자 인문학자로 자리매김하지요. 이 책 이후 《철학 VS 철학》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철학이 필요한 시간》 등을 연달아 내면서 출판계에는 이른바 ‘강신주 현상’이 거세게 불기도 했습니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 다시 쓰기》 출간 의의
그런데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7~8년 정도 ‘절판’ 상태였습니다. 당연히 왜 다시 출간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상처받지 않을 권리 다시 쓰기》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왔네요. 초판이 나온 지 15년 만입니다. 15년, 참 긴 시간입니다. 그 시간 동안 세상은 어떻게 되었나요? 더 좋아졌나요?
《상처받지 않을 권리 다시 쓰기》는 다섯 명의 인문지성의 안내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즉 ‘자본주의’가 키워드지요. 그런데 초판이 나온 2009년의 자본주의와 개정판이 나온 2024년의 자본주의는 얼마나 다른가요? 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처럼 “억압의 양상, 즉 억압의 방식만” 바뀌었을 뿐 우리는 더 상처받는 삶을 살고 있지 않나요? 여기에 개정판 출간 의의가 있는 듯싶습니다. 우리는 더 자본주의를 면밀히 살펴야 하고, 자본주의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초판의 논의를 이어가면서 내용과 구성을 대폭 수정했습니다. 거의 새로 쓴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페라리스, 지금 시대의 웹자본주의를 성찰하는 철학자
“저는 짐멜, 벤야민, 부르디외, 보드리야르의 사유만으로, 구체적으로 말해 돈, 대도시, 백화점, 유행, 매춘, 도박 등 소비생활에 대한 비판적 성찰만으로, 우리 이웃들이 자본주의와 맞설 지혜와 용기를 얻으리라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의 웹자본주의는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고 거대했습니다. AI, 가상현실, 집단지성, 웹, 빅데이터 등으로 상징되는 웹자본주의는 산업혁명에 비견될 정도로 인간과 세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으니 말입니다.”(〈개정판 머리말〉에서)
초판이 나온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가장 달라진 건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웹자본주의일 겁니다. 초판에 등장했던 게오르그 짐멜, 발터 벤야민, 피에르 부르디외, 장 보드리야르의 안내로는 웹자본주의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죠. 그래서 저자는 지금 시대의 철학자, 21세기 현재 철학사적으로 신실재론(New Realism)을 이끌고 있는 마우리치오 페라리스를 안내자로 채택합니다. 페라리스는 “사변에서 만들어진, 자기 머리에서만 편안하게 만들어진 혁명들”을 거부하며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수준에서 데이터 사회를 냉철하게 파헤치고 있는 철학자입니다. 이렇게 개정판에 페라리스를 추가함으로써 초판이 나올 당시에는 예측하지 못했던 웹자본주의를 성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5명의 탁월한 인문지성이 안내하는
자본주의에서 상처받지 않고 살아남는 법
《상처받지 않을 권리 다시 쓰기》에는 다섯 명의 안내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게오르그 짐멜(돈과 도시), 발터 벤야민(유행, 도박, 매춘), 피에르 부르디외(구별짓기와 아비투스), 장 보드리야르(소비사회), 그리고 마우리치오 페라리스(다큐멘탈리티와 웹자본주의)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자본주의적 삶의 내적 논리를 이론적으로 포착하려고 했던 인문학자들이죠. 또한 자본주의에서 길을 잃지 않고 새로운 삶을 꿈꾸는 방법을 모색했던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안내를 통해 책은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우리 삶을 장악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역사를 파헤치고, 우리 삶이 얼마나 자본주의로 인해 상처받고 있는지를 아프게 직시하게 만듭니다.
제일 먼저 우리는 짐멜을 통해 대도시와 돈에 몰려드는 이 시대 욕망의 맨얼굴을 확인하게 될 겁니다. 둘째는 보들레르의 도플갱어 벤야민입니다. 그를 통해 유행, 매춘, 도박과 같은 자본주의적 삶의 편린들을 자세히 엿볼 수 있을 겁니다. 셋째는 부르디외입니다. 사회학자답게 현장조사를 통해 벼려진 그의 성찰은 자본주의에 의해 각인된 우리의 내면세계를 살필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 겁니다. 넷째는 자본주의의 목적이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있다고 냉정히 진단했던 보드리야르입니다. 그를 통해 우리는 소비사회의 유혹적인 논리를 파헤치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다시 한번 숙고해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문지성은 페라리스입니다. 그는 지금 진행되는 혹은 앞으로 진행될 자본주의체제의 진화과정, 자동화와 웹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체제를 끈질기게 성찰합니다. 그 성찰로 우리는 자기긍정이 자기착취가 되는 현상을 면밀히 살피고 거기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더듬어볼 수 있을 겁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를 돌아보고, 자본주의 너머의 세계를 상상해보면 좋을 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