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레터>의 주제가 ‘5.18’로 정해졌습니다. 그럼, 누가 쓰느냐?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저를 바라봤습니다. 아니 저 말고 다른 사람이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저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써야 하지 않느냐며 모두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오월의봄’이란 이름으로 출판사를 시작했는지도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그 눈빛들이 하도 단호해서 더는 고개를 흔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네요. 그런데 5.18에 관해 무엇을 쓸 수 있을까요?
우리 오월의봄 구성원은 6명입니다. 그중 30대가 3명, 20대가 1명입니다. 맞습니다. 올해로 5.18광주항쟁이 일어난 지 42년이 되었으니, 우리 구성원 중 과반수는 그 항쟁이 일어난 이후에 태어났습니다. 저 또한 아주 어린 시절에 겪은 사건입니다. 즉 우리에게 5.18은 하나의 ‘역사’입니다. 촛불시위나 세월호처럼 직접 겪은/겪고 있는 사건이 아니란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공부하고 느끼지 않으면 5.18을 직접 맞닥뜨릴 수 없는 세대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5.18에서 무엇을 봐야 할까요?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당시 계엄군 측에 내가 서 있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명령대로 시민들에게 총을 겨눴을까? 죽더라도 명령을 어겼을까? 소심한 반항이라도 해봤을까? 반대로 내가 한 시민으로서 현장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마지막까지 도청을 사수할 수 있었을까? 진압군을 향해 돌멩이를 던질 수 있었을까? 아니면 무서워서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을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자신 있게 대답을 못 하겠더라고요. 많은 문학작품과 영화, 연극 등에 이런 역사적 현장에 내던져진 주인공들이 등장하죠. 그래도 가끔 이런 질문들이 삶의 나침반은 되어주는 듯합니다.
우리가 아는 5.18은 딱 열흘간 일어난 사건입니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민주화운동은 곧 광주항쟁의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이었고, 6월항쟁으로 어느 정도 민주화를 성취하기도 했습니다. 그 뒤에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은 멈추지 않았죠. 그 열흘 동안의 항쟁이 한국 현대사를 뒤흔들었으니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5.18은 데이터로 나타나는 사건의 규모로 보나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의 경험의 깊이로 보나 우리 현대사의 최대 사건이며 오늘 우리에게 느껴지는 그 결과와 의미 또한 가늠하기 어려운 무게를 갖는다.”(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광주항쟁의 주체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엘리트 계층이 아니었죠. 그분들은 총을 맞고 쓰러진 사람, 폭력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히 짓밟히는 현장을 보며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평등하며, 사랑이 넘쳐흐르던 며칠간의 ‘절대공동체’를 이뤄냈습니다. “5.18이 우리 근대사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갖는 의미의 핵심은 이 절대공동체의 체험일 것이다. 그곳에는 사유재산도 없었고, 목숨도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고 시간 또한 흐르지 않았다. …… 그런 곳은 실제로 이 땅에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있었다.”(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그러나 그 무질서했지만 모두가 모두를 존중했던 그 순간은 곧 ‘질서’를 되찾고 말죠. 그분들이 이뤄내고 지키고자 했던 자유, 사랑, 평등, 민주주의의 공간이 우리가 5.18을 계속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출판사 이름이 ‘오월의봄’인지라 이런 질문을 꼭 받게 됩니다. ‘그 오월’과 상관있느냐? 처음엔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오월 광주도 있고, 메이데이도 있고, 프라하의봄도 있고…… ‘오월’과 ‘봄’을 결합해 이렇게 의미부여도 했죠. 무엇보다 5월의 봄은 정말 아름답잖아요?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한국사회의 갖은 문제, 싸우는 사람들, 소수자의 시선, 사회운동, 진보적인 관점 등등…… 이런 거창한 단어들을 나열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지금 이 시대의 현장을 책에 담아보고픈 욕심이 커서 느닷없이 생각난 단어를 출판사 이름으로 정한 것입니다. 아무튼 출판사 이름을 그렇게 정하고 지금까지 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출판사를 차린다면 절대 그 이름으로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게 많아지니 고개를 숙이게 됩니다.)
저는 5.18 하면 ‘인간의 존엄성’ ‘고통’ ‘부끄러움’ ‘수치심’ ‘슬픔’ ‘사랑’ ‘자유’ ‘민주주의’ ‘해방’ ‘평등’ 등의 단어가 떠오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가치들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거겠죠. 모든 곳에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오월의봄이란 공간에 그 가치들이 만발하면 좋겠습니다. 개인이 자유롭고 서로 평등한 공간, 누가 누구를 억압하지 않는 공간, 시간권리를 누릴 수 있는 공간…… 아무리 좋은 책을 낸다 한들 이런 것들이 지켜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월의봄이 5.18의 가치를 조금이라도 실천하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지켜봐 주세요.
-서패동 제이와이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