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 책 보세요 선생님. 어제 막 들어온, 따끈따끈한 상태예요. 창고에는 오늘 오전에 들어와서, 서점에서 배본 미팅하고 오늘 아마 다 출고됐을 거예요. 인쇄도 잘 나왔고요.
소진: 책값이 올랐더라고요? 오른 거죠? 물가가 반영됐구나, 싶었어요.
캠퍼: 네네 종잇값도 많이 오르고, 제작비가 많이 올랐어요. 주변 분들 표지 반응은 어때요?
소진: 아 표지, 좋았어요. 주변 분들 반응도 좋았고요. 증발이라는 느낌을 잘 살린 표지여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캠퍼: 다행이네요. 오늘은 진짜 그냥 편하게, 편하게 해주시면 돼요.
소진: 네네.
캠퍼: 이제 책이 딱 나온 거잖아요, 이번 책 내면서 소회가 어떠세요?
소진: 이번 책은 특히나 압박감이 좀 심했던 것 같아요. 정희진 선생님께서, 앎은 아픔이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 저는 그 말이 너무 좋았거든요. 이 책이 딱, 그 말에 어울리지 않았나 싶어요. 앎은 아픔이라서, 그 앎을 표현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꼭 말해야 하는 사실들, 우리가 꼭 알아야 하는 사실들은 때론 너무나 마음 아픈 일들이잖아요. 게다가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쉽지만 어려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느끼는 압박이 컸던 것 같습니다.
캠퍼: 작년(2022년)에 오월의봄 대표메일로 투고를 하셨어요. 왜 오월의봄이었어요?
소진: 사실 다른 출판사에 먼저 연락을 했는데, 너무 어둡다는 이유로 반려를 당했거든요. 원래는 학술지 논문을 먼저 쓰고 단행본 계약을 진행하려 했는데, 학술지 논문은 아무래도 제가 마감기한을 조절할 수 있다보니 이 주제를 끝까지 끌고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그런데 출판사와 계약을 해놓으면 어쨌든 연구를 마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으니까 그걸 역으로 활용해보자는 생각을 해서 출판사에 컨텍을 먼저 하려고 했죠. 오월의봄을 선택한 이유는 그 당시 친구와 어디 출판사에 연락을 해볼까 얘기하다가 친구가 요즘 오월의봄이 좋다고, 노동 쪽도 많이 하고 진보적이라고 추천을 해주면서 거절당하진 않을 것이라기에 메일로 투고를 해본 거죠.
캠퍼: 돌아온 길이지만 아무튼 다행이네요. 이 책이 퇴고 되게 많이 하셨잖아요. 논문 과정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단행본 퇴고가 꽤 지난했고, 학술지 게재된 원고를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한 책인데, 집필하면서 어떤 부분들에 중점을 뒀는지.
소진: 이번에는 노동문제만 다루는 게 아니라 가족 부분까지 세세하게 다뤄야 하다보니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크게는 가족, 노동, 존재론적 불안 이렇게 세 가지를 다뤘는데, 논문에서는 아무래도 분량의 제약이 있으니까 대표적인 사례들만 언급을 하게 되거든요. 그러다보면 이 여성들이 처한 상황의 맥락이나, 그러한 맥락에서 느껴지는 심각성이 드러나지 않아요. 저한테는 이 참여자분들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이야기로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는데, 그걸 쪼개고 나열하게 되는 거죠. 문제는 그렇게 하다보면, 이 하나의 이야기가 조각이 되어 독자에게 당도하게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러면 결국 사는 게 다 힘들지, 사람들 원래 다 그러고 살아, 이런 말들을 하기 쉬워지거든요. 그래서 저는 단행본은, 누구나 이 글을 읽었을 때, ‘이 상황에선 당연히 자살생각을 할 거 같은데?’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상황과 맥락을 풀어 쓰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캠퍼: 자살생각을 하는 이유의 맥락들을 좀 더 촘촘히 드러내는?
소진: 네.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촘촘하게 그물처럼 드러냄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우리가 처한 상황이, 의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라는 점을 드러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캠퍼: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 진짜 많은 얼굴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소진: 아 그래요? 다행이에요. 최고의 칭찬입니다.
캠퍼: 처음에 청년여성들의 자살생각을 연구 주제로 삼게 된 이유가 뭐였어요?
소진: 그건 이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왜 청년여성들이 자살생각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이었어요. 저는 너무나 이해가 가는 이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정말 이상한 상황으로 비춰진다는 것이 시발점이었어요. 처음에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못했고요. 너무 뻔하니까. 근데 저한테 뻔하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뻔한 건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게 이렇게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라면 누군가는 이 상황에 대해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저출생도 비슷한 맥락일 수 있는데, 저는 저출생도 너무나 이해가 가요. 인터뷰를 할 때마다 결혼이나 출산에 대해서 의견을 묻는데 여성분들은 한결같이 의견이 유사해요. 웃긴 건 제가 물을 때 몇몇 분들의 표정인데, ‘이걸 몰라서 묻는 거야?’라는…… 그럼 또 설명을 드리죠. 저도 알아요. 저도 아는데, 이게 연구다보니 제가 물어봐야 돼요, 라고. 그럼 다들 말을 잘해주세요. 이런 세상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다고. 환경오염, 성차별 등 내가 경험하고 있는, 내가 아이를 낳기 싫어하는 그 이유들이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죠. 근데 저출생도, 우리는 다 이해하지만 다른 분들은 이해를 못하기도 하잖아요. 핵심은 하나거든요. 이런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 라는 마음으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캠퍼: 청년여성 21명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셨잖아요. 프롤로그에서 듣기의 윤리와 재현의 정치에 관해 고민하셨다는 이야기가 저도 그렇고 마케터도 그렇고 인상적인 지점이었거든요. 인터뷰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소진: 이 연구는 사실 다른 인터뷰에 비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요. 왜 그랬나를 돌이켜보면 참여자들의 이야기가 제 경험의 변주였기 때문인 거 같아요. 노희경 드라마에 그런 대사가 있어요. 친밀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비밀을 공유해야 한다. 그래서 저도 제 이야기를 많이 했죠. 그냥 공감하기보다는, 저도 그런 일 있었어요, 라고 서로 대화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럼 참여자분들도 제가 알고 있다 생각해서 그런지 더 많은 이야기를 말씀해주시고. 그래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인터뷰를 하다보니 다른 인터뷰보다 어떤 측면에서는 슬펐지만, 편하고, 그래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인터뷰이기도 하지 않았나 합니다.
캠퍼: 거의 대화처럼 하셨겠네요.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기보다.
소진: 그쵸. 그래서 세 시간에서 다섯 시간씩 한 거죠. (웃음)
캠퍼: 이 책이 연구서인데, 선생님의 입장과 경험, 생각들을 되게 적극적으로 드러낸 글을 쓰셨어요. 프롤로그랑 에필로그가 특히 그렇고 본문에서도 ‘우리’라는 말을 많이 쓰고. 그러다보니까 저는 선생님이 연구자로서 쓴 에세이인 《경험이 언어가 될 때》 그 책도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글에서 느껴지는 어떤 감정들이 그 책하고도 연관되는 것 같아서. 그런 지점에서 연구나 이론이 결국에는 치열한 자기성찰에서 첫 단추를 끼우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프롤로그부터 자살생각을 했던 경험을 얘기하고 시작을 하잖아요. 이런 지점이 중년여성 마트 캐셔 노동자들을 인터뷰해서 쓴 《시간을 빼앗긴 여자들》 때랑 다른 것 같기도 하구요. 어떤 의도로 그러신 건지 궁금해요.
소진: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자살생각을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 이력만을 놓고 보면, ‘뭐 이런 사람이 자살생각을 하겠어?’라고 생각하실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도 밖에서 말을 안 하는 거지 자주 불안해요. 며칠 쉬면 진짜 심해져서, 아 이제 좀 더 가면 우울증 각이다, 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서로 말을 안 하니까, 요즘은 더욱더 자기 PR시대라고, 내가 한 성과만을 두고 이야기를 하지 보통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약점이라 생각해서 더 말을 안 하잖아요. 그래서 당신만 그런 순간을 경험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하나 더 나아가자면, 저 사람도 자살을 생각했는데 나아졌구나, 하는 가능성. 평생 지속된다고 생각하면 답이 없어요. 저 〈강철의 연금술사〉(일본 만화)에 그 장면 되게 좋아하거든요. 호문클루스라는 생명체가 있는데. 만화에서 그 생명체가 불사로 그려져요. 근데 한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거든요. 죽을 때까지 죽여주마. 그러곤 결국 호문클루스를 없애죠. 우리가 무찌를 수 없을 것 같았던 적을 없앨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은 생각보다 사람을 강인하게 만들죠. 그래서 지금의 자살생각이 당신의 평생은 아니다, 라는 걸, 조금이나마 그 가능성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캠퍼: 이 책을 전체적으로 요약해보자면 청년여성들의 자살생각을 추동하는 위험들을 가족위험, 돌봄위험, 노동위험으로 분석하고 이것이 존재론적 불안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드러내는 거잖아요. 그래서 사실 매 논의가 매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책이고 다 중요한데, 그래도 특히나 유의해서 읽어줬으면 하는? 아니면 이걸 읽은 독자들이 이거에 대해서만큼은 적극적으로 얘기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소진: 아 가족이죠. 저는 인터넷커뮤니티 글을 많이 읽는데요. 네이트판이나 뭐 카페 글들. 정말 매일같이 두세 건씩 올라와요. 청년여성의 고민들이. 가족들이 매번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데 갚지 않는다, 오빠가 집을 거덜내는데 엄마가 나한테 한탄하면서 오빠한테 주려고 돈을 가져간다, 뭐 이런 글들. 근데 이 친구들이 가족과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더라고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 물어요. 이게 저는 되게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집에서 태어날지 선택은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와 계속 인연을 이어갈지는 선택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부모와 연을 끊는 걸 되게 금기시하는 문화가 있어요.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부모다워야 하는 게 먼저잖아요. 그래서 가족과 멀어질 수 있다는 거,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거, 당신을 죽고 싶게 만드는 가족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 이런 부분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되었으면 좋겠어요.
캠퍼: 근데 진짜 그 부분, 엄마에 관련한 내용, 가족에 관련한 내용은 어떤 면에선 너무 익숙한 이야기예요. 누구나 겪는 가족에 관한 일들. 특히 딸이라면 더욱. 거기서 나오는 얘기들이 많은 문제를 함의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여성과 가족이 너무 착 달라붙어 있어서.
소진: 네 맞아요. 그런 말 있잖아요. 딸이면 금메달, 아들이면 은메달. 그 말도 딸한테 결국 돌봄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금메달이라는 거잖아요. 이게 칭찬인가요? 저는 가끔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그렇게 나빠지더라고요. 우리들도 다 노력하는 건데 그걸 마치 생물학적인 차이로 환원해서, 우리의 노력을 우리의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느낌. 화나죠.
캠퍼: 책 구성에서 조금 독특한 점이 있다면 두 가지 부록을 덧붙이신 거죠. 하나는 질적연구 방법론에 관해서고, 인터뷰지도 원문 그대로 넣었어요. 연구하는 이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라는 생각에서 그러신 건데. 질적연구에 관한 선생님의 전반적인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요.
소진: 여성학의 핵심은 상황과 맥락이라 생각하는데, 질적연구는 그 상황과 맥락을 드러내기에는 아주 좋은 연구방법이라 생각해요. 언제나 늘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저는 늘 참여자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래서 항상 첫 질문은 ‘어떻게 살아오셨어요’라고 물어요.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차용하는 기호들이 다 그 사람의 시각을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발 딛고 서 있는 경제적 토대죠. 그래서 가족의 경제적 배경도 중요하고요. 그리고 언제든 연구질문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한 분을 만날 때 많은 정보를 끌어내고, 연구질문이 조금씩 바뀌더라도 대응이 가능하도록 인터뷰를 합니다. 사실 부록에 제가 잊어버리고 안 쓴 부분이 있는데, 저는 녹취를 직접 타이핑합니다. 제 스승이신 김은실(여성학자) 선생님께서도 늘 저에게 말씀해주셨지만, 녹취를 스스로 풀면서 인터뷰 과정을 반성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스스로 풀면서, ‘아 여기서 이 질문 했어야 하는데 못했다’라거나 ‘왜 이렇게 말했을까?’라거나. ‘여기서 한 번 더 물어봤어야 하는데 못했네’ 등 녹취를 풀면서 어떤 지점이 미흡했나 한번 더 살펴봐요. 그리고 인터뷰를 몰입해서 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고 녹취를 풀잖아요? 그 사람이 제 머릿속에 싹 들어와요. 클로버노트 같은 프로그램으로 풀면 편하긴 하지만 인터뷰 내용이 머리에 들어오기까지 더 많이 읽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늘 직접 타이핑을 하면서, 참여자들의 말이 사실인지 해석인지, 내가 사실을 해석으로 넘어갔는지, 해석을 사실로 넘어갔는지, 이런 걸 풀면서 다 생각하는 거죠. 인터뷰가 항상 잘되는 건 아니니까. 풀면서 반성하죠. 아 너무 피곤했네, 어휴 이소진 너무 피곤했어. 혼잣말도 하면서. (웃음) 오늘도 녹취 풀다 왔어요.
캠퍼: 이번엔 좀 다른 얘기를 해볼게요. 이번 책을 만들면서, 선생님이랑 저랑 협업하는 과정에서 저희가 긴장관계가 있었잖아요? 한 권의 책이 여러 사람이 협업한 결과물이긴 한데, 주요하게는 어쨌든 저자와 편집자의 소통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도 이번에 소통과정에서 갈등도 있었고 논쟁도 있었잖아요. 제목부터 문장 하나하나까지. 개인적으로는 선생님하고 작업하면서 편집자의 역할이나 원고에 대한 개입의 수준, 그리고 또 뭐를 어디까지 저자한테 맡기고 편집자가 뭘 강고하게 주장해야 되는지 많은 고민이 들더라고요. 선생님 생각도 궁금해요.
소진: 저는 글을 쓰고, 선생님께서는 글을 매끄럽게 다듬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역할은 다르지만 결국 목적은 좋은 글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잖아요. 그럼 어떤 게 좋은 문장인가, 라는 질문에 봉착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가끔 작업을 하다보면 제 문장을 고치실 때 선생님들께서 설명을 안 해주세요. 아무래도 마감기한이 있다보니 그런가 싶긴 하지만. 저는 또 반대로 그걸 원안으로 되돌릴 때 설명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거든요. 그래서 그 부분이 조금 고민이 되죠. 예를 들면, 저는 이 부분을 일부러 두 번 읽게 만든 문장인데, 그걸 고치시거나 하면 저는 왜 그렇게 썼는지 설명해야 할 것 같잖아요. 설명을 안 하면 또 ‘제 문장 고치지 마세요’라고 받아들여지거든요. 그래서 어디까지 내가 내 문장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걸까, 싶은 생각들. 그래서 조금 더 협업을 할 때, 서로 의사소통하는 과정이 구구절절했으면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캠퍼: 그쵸. 그게 참 뭔가, 저도 일하면서 어쨌든 마감일은 정해져 있고, 언제까지 책을 내야 한다? 그러니까 일정에 맞춰서 가려다보면 자꾸 스킵하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소진: 맞아요 맞아요. 너무 이해해요.
캠퍼: 일을 하다 보면 관성적으로, 뭐 이해하시겠지, 하고 달리게 되는 것도 있거든요. 근데 되게 오랜만에 이 과정에 대해서 지적해주시는?
소진: 제가 또 워낙 쉬운 글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좋은 글이 쉬운 글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정희진 선생님의 《페미니즘의 도전》은 정말 처음 읽을 때, 두 번째 읽을 때, 세 번째 읽을 때 다 다른 생각을 하도록 만들거든요. 제가 그 책을 중학생 때인가 처음 읽었는데, 그때는 이게 뭔 말인지, 정말 글자만 읽었던 것 같고. 두 번째는 학부 때 페미니즘 스터디 하면서 읽었는데 그때는 뭔가 이해하는 줄 알았어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른 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도 같고. 그런데 여성학과 다니면서 한 번 더 읽었을 때는 정말 문장 하나하나가 이해가 가면서 많은 질문들과 생각거리를 던져주더라고요. 저는 그런 책을 쓰고 싶었어요. 그리고 너무 쉬운 책은 아무래도 해석의 범위를 좁히거든요. 너무 쉬운 문장으로만 쓰여진 책 보다는, 어떤 문장은 좀 어려워서 '뭐야 이게 무슨 말이야?'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 긴장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렵지만요.
캠퍼: 저 같은 경우에는 문장을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되게끔 교정교열을 하거든요.
소진: 대부분 선생님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캠퍼: 그런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이거는 다시 읽게 하는 게 의도다. 그 얘기를 듣고 저도 문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무조건 직접적으로 단번에 전달되는 문장이 좋은 문장은 아닐 수도 있다.
소진: 저는 보통 의미를 고정하고 싶지 않을 때 메타포를 쓰거든요. 그런데 그걸 풀어서 쓰면 의미가 딱 고정되어버려요. 그 뜻도 있긴 지만 다른 뜻도 같이 담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근데 아직 필력이 부족해서...... 늘 노력하고 시도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캠퍼: 이 얘기의 연장선에서, 저자로서 편집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요?
소진: 아무래도 냉철한 평가를 해주시면 좋죠. 단행본은 아무래도 학술지 논문보다는 호흡이 길다보니까, 저도 글을 쓰다가 보면 뜬금없는 내용이 중간에 들어가기도 하고, 단락 배치가 조금 흩어지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제가 글쓰는 속도가 빠르다보니까 조사가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 제가 저자로서 그 글 안에 있을 때 보지 못한 부분들을 잡아주시고, 이 부분은 조금 위험하다거나, 이런 부분들을 짚어주시는 것이 편집자 선생님들의 역할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모든 일들은 경계가 모호하다보니 그런 경계는 작업하면서 맞춰가야 하겠지만요.
캠퍼: 가장 엄밀한 독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는?
소진: 그쵸. 그리고 저는 코멘트 너무 좋아하거든요. 평가가 저는 제일 좋아요.
캠퍼: 이제 마지막 질문 드릴게요.
소진: 근데 재밌는 게 나올까요? 말을 너무 재미없게 한 거 아닌가?
캠퍼: 아뇨, 잘 나올 것 같은데요. 마지막 질문은 이거예요. 이 책의 독자를, 아마 첫 번째로는 자살생각을 하는 청년여성들이 읽었으면 하시겠지만, 그들과 더불어서 꼭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소진: 부모들요. 기성세대들. 청년여성들이 나약해가지고 자살생각 하는 줄 알아요. 상황이 바뀐 걸 잘 모르니까요. 그분들이 자라날 때 한국은 성장하고 있었고, 이 고생이 나중에는 끝난다는 약속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세대에게는 그런 약속보단 오히려 절망의 그림이 그려지죠. 우리에게는 '더 나아질 거야'라는 믿음이 없어요. 그게 중요한 차이죠. 그래서 그런 차이를 아셨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자녀들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아 내가 차별을 하고 있었구나, 라는 것을 인정하시면 좋고요.
캠퍼: 알겠습니다. 책이 진짜 잘되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