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 《가장 느린 정의》가 드디어 출간됐어요. 요즘 저희 대화의 화두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대단함인데요. 그것과 더불어 ‘독자들께서 읽기 전부터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하시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었잖아요.
캠퍼: 맞아요. 그런 걱정이 있었는데… 장애정의가 한국에서 낯선 말이기도 하고, ‘돌봄’도 자칫하면 꽤나 추상적으로 또는 협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말 같고요. 이 책의 장점은 현장감이 뛰어나다는 건데요. 당사자이자 활동가이자 문화노동자임에 기반한 저자의 경험적 글쓰기라는 지점이요. 서문부터 ‘침대로부터의 운동’ ‘침대로부터의 혁명’이라고 선언할 정도로. 자신이 살아내고 또 목격한 삶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라는 데서 이 책이 팔딱팔딱 뛰는 것처럼 독자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사실 분량도 역주와 역자 해설이 들어가서 많아 보이는데, 실제 분량은 그렇게 많지도 않고요. 역주를 꼼꼼히 읽는다면 당연히 더 좋겠지만, 필요한 부분만 참고해서 읽어도 되니까요. 그런데 또 역주를 자랑하자면… 역주에서 본문에 나오는 인물들도 웬만하면 거의 다 소개하고 있어요. 이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저자가 학자들 이름이 아니라 자기와 같은 활동가들의 이름을 많이 언급하고 그들의 말을 또 인용하거든요. 장애정의의 인물들 말이죠. 그런데 이 인물들은 인터넷에 검색한다고 잘 나오지도 않거니와 나오더라도 파편적인 정보로, 또 영어로만 쓰인, 한국의 우리에게는 낯선 인물들이에요. 그걸 역자 선생님들께서 하나하나 다 소개하고 정리해주셨어요. 이런 정보들이 정말 꼼꼼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편집하면서도 이 운동판 안에 있는 사람들의 지형을 파악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모래: 그게 이 장애정의운동의 핵심이기도 하잖아요. 장애정의운동은 주변부에 있던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운동이니까, 역자 선생님들께서 그 의미를 책에 잘 녹여 완성해주신 것 같아요.
캠퍼: 사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거든요. 근데 다 하셨단 말이죠. 역자 선생님들께서 ‘장애정의를 이해하기 위한, 운동의 역사와 현주소를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책으로 만들겠다’라고 하셨거든요. 그 노고가 단순히 번역을 잘했다는 걸 넘어서 역주와 해제를 통해 완전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모래: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4년이 걸렸어요. 어떠셨어요? 가장 느린 4년······
캠퍼: 이 책의 작업도 어찌 보면 굉장히 ‘장애정의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저도 작업하면서 역자 선생님들께도, 스스로에게도 비장애중심주의적 속도를 요구한다는 걸 깨달았고요. 전혜은 선생님도 저도 아픈 사람들이라 컨디션 기복이 심하고, 제이 선생님께서도 작업 중에 몸이 아프셨어요. 작업 속도가 느린 상황에서 저는 또 저대로 어떻게든 비장애적 속도에 조금이라도 맞추려고 하다보니 오히려 일이 더 꼬이기도 하고…… ‘아무것도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조바심을 내고, 스스로를 닦달하고 자책하기도 했거든요.
모래: 홍은전 선생님께서 비장애중심주의의 다른 말이 능력주의라는 말을 하신 적 있어요. ‘능력에 따라서 차별하는 것은 공정한 것이다’라는 이데올로기에 관해서. 사회가 기준으로 삼는 ‘능력 없는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배제하고, 삭제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둘은 맞닿아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능력주의와 성과주의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특정하게 ‘정상’으로 상정된 몸이 완성해낼 수 있는 기간을 정해놓고, 그 안에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죠. 그런 지점을 앞으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캠퍼: 맞아요. 각자의 속도에 맞게 산다는 게 누군가의 ‘편의’를 봐준다고 인식하는 사회인 것 같아요.
모래: 그러니까 이 ‘불구 감성적 지성’*이 없는. *《가장 느린 정의》 1부 2장 참조
캠퍼: 이런 게 사실 비장애중심주의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데, 저도 막상 현실에서는 실천하기 어렵더라고요.
모래: 경사로, 수어 통역, 문자 통역 같은 물리적인 접근성에 관해서만 생각하다 보니 이 책에서 말하는 ‘불구 감성적 지성’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이를테면, ‘불구 감성적 지성은 결코 함부로 추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 어느 것도.’(137), ‘불구 감성적 지성은 누군가가 약속을 취소해도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그 사람을 계속 초대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잊어버리지 않는 것이다.’(132), ‘불구 감성적 지성은 누군가의 얼굴, 몸짓언어, 에너지를 읽고 그가 고통받고 있거나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걸 알아보는 능력이다. 불구감성적 지성은 고통, 피로, 압도, 트리거trigger를 알아차리는 기술에 능숙한 것이다.’(134) 같은.
아, 저는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와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그 사이 어디쯤 이 책이 있다고도 느껴졌어요. 앨리스 웡도 굉장히 신랄하고 위트 있게 비장애중심주의를 잘 비꼬잖아요. 그 방식이 이 책의 저자와 조금씩 같기도, 다르기도 한 게 재밌어요. 독자들께서도 이 세 책을 페어링 해서 같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캠퍼: 맞아요.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는 이 책보다 조금 더 이론적 자원을 제공하는 책이고, 사회적 사건들이 사례로 등장한다면, 《가장 느린 정의》는 저자가 당사자이자 활동가로서 경험한 장면과 사람들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그 지점에서 많은 게 상호보완적인 책이죠. 《페미니스트, 퀴어, 불구》는 원서가 2013년에 출간되었고 장애정의란 용어는 2015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책이 ‘장애정의’란 용어를 직접적으로 쓰진 않지만 중요한 책이에요.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 저자 앨리스 웡은 이 책의 저자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 《급진적으로 존재하기》의 기획자이자 엮은이이기도 해요. 같은 장애정의의 자장 안에 있는 책들이에요.
모래: 저도 그 현장성 때문에 더욱 이 책이 ‘재밌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이 재미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요?
캠퍼: 학술적 글쓰기를 읽을 때는 새로운 지식과 그 영역을 이해하고 저의 무언가가 깨지고 이론적 자원을 얻는 이런 시간이 즐겁다면, 이 책은 굉장히 잘 만든 다큐멘터리나 코미디를 볼 때 느끼는 즐거움과 비슷한 것 같아요. 분명 같은 개념들에 기반하지만 그걸 생활의 말들로 얘기하면서 정곡을 찔러요. 현실에 딱 발 붙이고 있는 이 감각이 정말 좋아요. 이런 서술은 책 전체에 걸쳐 있지만 특히나 빛나는 지점들은 장애정의운동사를 이야기할 때인데, 이걸 저자가 자신의 개인사로서 이야기하거든요. 마치 할머니가 하는 전란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그런 구술사적인 면도 있죠.
모래: 맞아요. 저는 저자의 위트와 더불어 이 책의 문장들이 왜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는 느낌이 들고 자꾸 울컥하게 될까 생각해봤어요. 제게는 자신과 주변을 지킬 줄 아는 사람만이 자아내는 그 확고한 태도 때문인 것 같아요. 타인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자기를 지킬 수 있다는 그런 순간들이 이 책에 잘 담겨서.
캠퍼: 사실 저는 운동이라는 것도 크게 보면 그런 것 같거든요. 사회가 바뀌어야 내가 잘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는 게 운동이기도 하잖아요. 페미니즘 담론하고도 연결되는 게, ‘내가 잘되고 내가 성공하는 게 곧 여성 인권 증진이다’ 이런 생각을 요즘 많은 사람이 하는 것 같은데, 완전 거꾸로잖아요. 체제 안에서 내가 잘되고 성공하고 그래서 무언가를 바꾼다? 더 나아진다? 어려운 일일뿐더러 이런 시각이 상상력을 더 협소하게 만드는 듯해요. 이 책은 장애정의를 말하는 책이지만, 장애정의는 비단 장애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회정의의 방향이에요. 사회정의의 방향이 장애정의로 가야 한다는 거죠. 결국에는 비장애중심주의와 맞물린 모든 억압체계와의 싸움이라고 저자는 말하고요. 그러니 반자본주의하고도 무관할 수 없고.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라는 말이 단순히 엘리베이터 설치에서 끝나는 얘기가 아닌 것처럼, 《가장 느린 정의》는 단순히 ‘난 장애 없는데’ ‘내 주변에 장애인 없는데’ ‘난 아픈 사람은 아닌데’ 하면서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 절대 아니에요.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비장애중심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모래: 서문에 〈장애 정의의 10가지 원칙〉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걸 읽으면 이 책이 단순히 장애에 국한된 논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거예요. ‘집단적 해방’이라는 말이 정확히 쓰여 있잖아요. 그 집단적 해방을 위해 뒤에 아무도 남겨두지 않기를 실천하는 것, 그게 이 책을 이루는 것들이죠.
캠퍼: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김순남 선생님의 《가족을 구성할 권리》 하고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 책을 편집하면서 ‘아 뭐가 이렇게 가슴이 뜨거워지는 거지?’ 하던 궁금증이 있었는데, 출간 후 북토크에서 패널로 참여하셨던 김은정 선생님(《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저자)이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연대의 동료를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쓰였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 말이 저한테는 크게 남았어요. 내가 언어화하지 못했던 게 바로 이 지점이었구나, 그런 책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생각했거든요. 《가장 느린 정의》도 꼭 그래요. 이 책은 너무나도 “연대의 동료를 확장시키는 방식”으로 쓰였어요. 이 연대의 이유를 저자가 자신이 경험하고 목격한 이야기들로 굉장히 잘 설득해내기 때문에 순간순간 울컥하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모래: 우리가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 점들이 많은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우선 이 원제가 《Care work》잖아요. 직역하면 돌봄 노동, 이 얘기도 해보면 좋겠어요.
캠퍼: 돌봄, 돌봄노동이라는 게 어떤 면에서는 저에겐 좀 공허하다고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막연한 느낌? 그것만으로 되나?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돌봄을 말하면서 이건 ‘접근 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운동을 건설하는 데 필수적이다’라고 분명하게 말하거든요. “우리가 누군가 괜찮은지 확인하기 위해 문자를 보내고, 몇 시간이고 통화를 하고, 소파에서 잡담을 나누고, 자그마한 돌봄이라도 전해줄 때, 우리는 운동을 건설하고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258)라고요. 돌봄노동은 생존을 위한 것인 동시에, 이 생존 자체가 장애인들에겐 투쟁이고 저항이었고, 저자의 말처럼 ‘혁명적 노동’이었던 거예요. 얼마 전에 기후정의운동을 하시는 채효정 선생님이 또하나의문화에서 진행하신 발표를 들었는데, 거기서 채효정 선생님도 저항과 돌봄을 맞물린 것으로 얘기하시거든요. 정확히 인용하자면 “저항 없는 돌봄은 공허하고, 돌봄 없는 저항은 맹목이다”라고. 장애정의운동도 바로 이러한 저항과 돌봄의 훌륭한 예시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언어가, 매우 구체적인 사례가 역사 속에 계속 있었고, 진행 중이고,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게 저한테는 엄청나게 느껴져요. 어떻게 보면 온갖 사소하고 잡스러운 시간으로 치부됐던 것을 명확하게 저자가 ‘그것도 운동이고, 저항이고, 건설이다’라고 말해주잖아요. 하찮은 일로 취급하는 것에 대해 계속 비판하면서.
그리고 저자가 감정노동, 돌봄노동, 젠더에 관해 말할 때 온갖 뒤엉킨 억압과 저항의 역사를 얘기하는 부분이 있어요. 노동계급 여성들,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시설에 감금돼서 보호작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 교도소에서 푼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 성노동자들······ 이 모든 억압과 저항의 뒤엉킨 역사와 현실을 빼놓고 감정노동, 돌봄노동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쓰거든요. 이 복잡한 현실들의 구체성을 드러내는 게 저는 이 책의 엄청난 특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현실이라는 걸 똑똑히 알려줘요. 전혀 공허하지 않아요. 또 장애인이 흔히 돌봄을 받는 사람이라고 여겨지지만, 저자는 장애인들이, 특히 아프고 장애가 있는 노동계급 유색인들이 주체로서 돌봄을 주고받으면서 생존해왔고, 그것 자체가 유일한 생존방식이었기 때문에 그걸 가장 잘하는 사람들임을 정말 잘 보여주기도 하고요. 그러니 이 사람들에게 배워라 비장애인들아, 라고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설득되지 않을 수 있겠어요.
모래: 맞아요. 저는 이들이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치유정의’에 관해 말하는 5장 〈아프고 미친 치유자〉 도 인상 깊었어요. 그간 기존 세계에 있었던 치료 담론, 그러니까 ‘비정상을 다시 정상으로 되돌려놓음’으로 행해지는 치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책들을 읽어왔기 때문인지, 저도 모르게 치유나 치료라는 단어 자체가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장에서는 장애인이면서 유색인이면서 퀴어이면서 온갖 교차하는 정체성을 가진 당사자들이 서로 치유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들이 자신의 몸과 정신에 대해서 모든 권한을 갖는 주체라는 걸 이해한 채로 행하는 치유를 말하죠. “고치는 것이 치유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자율적이고 아름답도록 불완전하게 존재하는 것이 치유라는 쪽으로 치유에 대한 관념을 바꿔”(193)내면서 치유라는 단어를 재점유해요. “내가 아는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시도하는 치유는 통증 또는 불안을 줄이거나 유연성을 키우는 등 구체적인 것들에 대한 바람이지 비장애-신체가 되길 원하는 건 아니다”라고 192쪽에서 분명히 말하거든요. 그래서 이 단어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비장애 신체가 되는 것을 치유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비장애중심주의라는 걸 깨달으면서 반성하기도 했고요.
캠퍼: 9장 〈예시적 정치와 급진적으로 접근 가능한 공연 공간〉도 읽을 때마다 너무 좋아요. 정말 잘 쓰인 에세이라는 생각도 들고. 11장 〈’인간 정신의 승리’ 따윈 엿 먹어라〉도 출판노동자로서 크게 와닿는 글이었고요. 10장 〈만성적으로 아픈 순회공연 예술가가 전하는 유용한 조언〉 같은 내용은 저자가 읽는 이를 꽤 세심하게 배려해서 나름 '쉬어가는 부분'을 배치했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아 그리고, 또 하나, '불구 계보'에 관한 이야기도 하면 좋겠는데요. 이 책에서 글로리아 안잘두아처럼 본인을 장애인으로 지칭하지도, 그런 운동을 하지도 않았지만, 어떤 인물들을 장애정의의 조상으로서 불러내거든요. 장애정의운동 자체가 조직화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런 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는 사람들은 역사 속에서 계속 찾아낼 수 있는 거잖아요. 발작과 기면증이 있었던 노예해방운동가 해리엇 터브먼 같은 사람도 있고요. 이전에는 장애정의라는 말이 없었을 뿐이지, 그걸 실천해왔던 사람들은 역사 속에 계속 있었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하고 있고, 이런 불구 계보를 만드는 과업을 이 책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요.
모래: 계보라는 것이 과거적인 성질이 있다고만 생각하기 쉬운데, 계보는 계속 미래로 향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 운동이 지속되는 것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서 감동적이었어요. 레터에 이 책의 좋음을 낱낱이 다 말하기에 지면이 너무 부족한데, 혹시 독자들께서 이렇게 읽어주시면 좋겠다, 하는 게 있을까요?
캠퍼: 사실 이 책의 한 장 한 장 다 얘기하고 싶어요. (웃음) 저만 이 좋음을 느끼기엔 너무 아쉬워요.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많이 하시면 좋겠어요. 저는 읽으면서 자꾸 ‘이건 힙합이다’ ‘비트를 깔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데, 저자가 욕도 서슴없이 쓰고, 직설적인 감정 표현도 많이 하거든요. 거기에 기본적으로 이 저항정신과… 저자가 시인이기도 하니까 말에 리듬감이 있고… 번역을 또 그렇게 잘하셨다는 얘기이기도 하겠죠. 아무튼 랩 같다고 느껴지는 책은 또 처음인 것 같아요.
모래: 사회운동은 원래 감정적인 거니까요. 모쪼록 많은 분이 이 책을 꼭 한번 펼쳐보시면 좋겠어요. 저도 두 번 읽었는데, 한 번 더 읽어보려고 해요. 홍은전 선생님께서 ‘어떤 앎은 자기 안에 들어와서 차곡차곡 쌓이고, 어떤 앎은 자기가 쌓아왔던 모든 걸 무너뜨린다’ 이런 종류의 말씀을 하셨는데, 이 책은 정말 다 부숴버리는 것 같아요.
캠퍼: 《망명과 자긍심》 저자 일라이 클레어가 추천사에서 “당신이 알고 있던 것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라고, “마주할 준비를 단단히” 하라고도 했잖아요. (웃음) 저도 편집하면서 정말 많이 봤지만, 앞으로도 계속 다시 읽어볼 것 같아요. 이 책은 다 중요해서 진짜 말하기 어려워요. 계급, 인종, 섹슈얼리티, 젠더, 장애 이게 다 교차하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모래: 그거 때문에 미치겠는 거예요. 좋음을 설명하기 어려운 게, 그러려면 이걸 다 얘기해야 하는데 다 얘기할 순 없고.
캠퍼: 그냥 “책을 읽어보세요”라고 말할 수밖에……
모래: “책을 읽어보세요”라고 말하려면 왜 읽어야 하는지를 말해줘야 하는데 그럼 또 다 말할 수가 없고……
캠퍼: 책을 읽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