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두맨: 처음 저희가 책 출간하기로 하면서,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영화 개봉에 맞춰서 책이 나왔으면 했는데 딱 맞춰 나오게 되었네요. 우선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채영: 안녕하세요. 저는 다큐멘터리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에 출연한 박채영입니다. 《이것도 제 삷입니다》를 쓰기도 했습니다. 두 마리 고양이랑 함께 살고 있어요.
🥟만두맨: 어떻게 책을 쓰시게 됐는지부터 말씀해주신다면요.
📍채영: 〈두 사람을 위한 식탁〉 김보람 감독님이 제안해주신 것이 계기였어요. 섭식장애를 앓으면서 제가 꾸준히 써온 일기도 있었고요. 복잡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섭식장애라는 질병이 단순히 이상한 행동양식이 아니라 여성의 오랜 역사가 녹아 있는 질병이라는 것을 저도 정리하고, 사회적으로도 알리고 싶었어요. 한편 가족사와 저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들어가 있어서 사적인 이야기가 공적으로 읽힐 수도 있을지 궁금해하며 썼습니다.
🥟만두맨: 몸이나 질병은 개인의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계, 사회, 구조와 교차하는 장이기도 하죠.
📍채영: 실제로 〈두 사람을 위한 식탁〉 상영회 GV에서 왜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적인 것이라고 하는지 질문하신 분이 계셨어요. 질문하신 분은 섭식장애를 가진 딸을 둔 엄마였고, 병원에서 딸이 진단을 받으면서 모녀 관계의 문제가 결정적인 원인일 수 있다고 들었다는 거죠. 딸도 본인도 그 이야기가 의아하기도 하면서, 딸이 아픈 이유가 자신인 것 같아서 괴로웠고요. 그런데 또 영화를 보고 나니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처럼 엄마의 부족함을 섭식장애의 원인으로 삼는 것 같다고요. 그래서 섭식장애의 원인이 엄마에게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하는 데 동의하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런 질문이 충분히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질병의 원인이 모녀 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그것을 여자의 탓이라고 해석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원인은 여성들을 아프게 만드는 사회, 즉 그런 엄마가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있는 것이고 그쪽으로 논의를 끌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섭식장애가 ‘귀족병’이라고 불린 이유는 귀족 여성들에게 발병했기 때문인데, 그건 귀족 여성들이 코르셋을 입으며 살을 빼야 했기 때문이었어요. 문제는 여성들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코르셋을 입혔던 사회, 가부장제에 있는 것이죠. 자기 몸을 그 기준에 맞춰야만 살 수 있었던 여자들이 있는 거잖아요. 결국 섭식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의 서사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점점 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만두맨: 이런 문제에서 대개 엄마를 ‘비난’하는 데서 끝나고, 그 뒤의 구조적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채영: 정신분석이나 심리학에서 엄마의 역할을 굉장히 강조하잖아요. 제가 예전에 엄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의 삶을 직접 살아보지도 않은 전문가들이 엄마에게서 원인을 찾고, 엄마로부터 내 문제가 비롯됐다고 했을 때 왜 우리가 그렇게 쉽게 그 말에 동의했을까. 왜 우린 그렇게 그들에게 쉽게 우리의 삶을 비난하도록 허락했을까.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자신의 자긍심을 반납하고 자책했을까.’
🥟만두맨: ‘프로아나’, ‘먹토’ 이런 말들이 유통된 지도,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취급된 지도 꽤 오래되었고, 또 섭식장애가 정신질환이면서도 사회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병이라는 인식은 어느 정도 생긴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언제나 딱 거기까지만 말하고 끝나버린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거든요. 이 질병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사람은 대개 권위를 가진 치료자들이게 마련이고, 당사자의 목소리는 취재나 연구의 대상으로만 들리는 경우가 많고요.
📍채영: 특히 한국에서 당사자의 말이 더욱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이미 정신질환에서 당사자들의 말하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었다고 들었거든요. 정신질환은 어느 날 사고를 당해서 벌어지는 게 아니라 그 개인의 시간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 말하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두맨: 질병을 겪은 당사자가 그 질병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보통 ‘투병기’를 기대잖아요. 저는 이 원고가 그런 원고가 아닌 걸 알고 있었는데도, 원고를 읽을 때 저도 모르게 관습적으로 질병을 단선적이고 매끈하게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거예요. 원인, 진단, 문제, 해결은 무엇인지. 그런데 이 책이 거기에서 벗어나는 서사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조한진희 선생님께서도 추천사에 “이것은 투병기가 아니다”라고 써주셨고요.
이 책에 선생님께서 직접 써주시길, 병의 증상에 대한 묘사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하셨는데, 나의 질병 경험에 대해 글을 쓰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쓰고 싶었을까요?
📍채영: 저는 제 병의 핵심이 ‘관계’에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내 삶에서 중요한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을 때, 나를 가장 아프게 한 것도, 내가 가장 해결하고 싶었던 것도 관계였어요. 또한 병도 나와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제가 글을 쓰게 된다면, 뭔가를 말하게 된다면 내가 가장 많이 한 고민인 ‘관계’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만두맨: ‘병과 관계를 맺고 있다’라는 것을 좀 더 풀어서 말씀해주신다면요?
📍채영: 병과 나의 밀착된 정도? 증상과 별개로 제가 이 병을 대하고 있는 마음이 계속 변하는데 저는 그게 관계라고 생각해요. 어떤 시기가 되면 증상으로 도피하기 위해 병을 찾게 되고, 어떤 시기에는 이 증상으로부터 멀어지기도 한다는 점이 사람과 관계 맺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전문가들이 섭식장애에 대해 말할 때 ‘망망대해에서 겨우 잡은 나무토막’이라는 은유를 많이 사용해요. 이 나무토막을 떠나서 더 안전한 보트로 옮겨 타거나 수영할 방법을 배워야 하는데, 그걸 놓는 순간 내가 물에 빠져 죽을 것 같아서 더 떠나지 못하는 거라고. 섭식장애는 제게 제일 외로운 시절을 같이 보내준 친구 같아요. 나의 가장 약한 모습, 어두운 점을 다 알고 그 모든 걸 내가 전부 보여주었던 단 한 명의 친구. 그래서 이 친구를 놓기가 너무 두려운 거죠. 다른 사람에게도 내가 섭식장애 앞에서 꺼내 보였던 많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사실 내가 단 한 명의 친구와 나누고 싶은 수많은 것들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만두맨: 이 책이 총 3부로 이루어지는데, 한 부를 ‘나를 키운 여자들’에 할애하셨어요. 말 그대로 모계사회에서 자라셨죠. 이 부분을 집필하실 때 가장 힘들어하셨는데, 그런데도 끝내 이 부를 책에서 배치해내고야 만 그 이유를 설명해주신다면요?
📍채영: 제가 스스로 낸 하나의 과제였던 것 같아요. ‘너는 이걸 해내고 가야 한다. 이 애증을 한 번은 정리하고 가야 한다.’ 책에 나오지만 제 사촌 언니도 섭식장애가 있거든요. 저로 인해서 사실 섭식장애가 우리 가족 내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어요. 엄마는 ‘우리 가족에게 내려진 저주’ 같다고 표현했지만, 저는 내가 가족으로 안고 태어난 이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있고 그것이 우리를 이어주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과연 뭘까 질문하고 싶었던 거죠.
병동에 있을 때도 우울증, 조현병 환자와도 방을 같이 쓰는데 유난히 여자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이 여자들을 이렇게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일지 질문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섭식장애가 저를 여성주의로 이끌고 갔다고 생각해요. 퇴원하면서 섭식장애 책을 찾아봤고, 어쩔 수 없이 이건 여자들의 이야기 때문에 여자의 삶에 대해서 궁금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소수자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거죠. 그 과정에서 어느 순간 다른 여자들의 삶은 위로하고 궁금해하면서 가장 가까운 가족들을 용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의미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이모들이 “채영이는 꼭 소설가 돼서 이모들 얘기 글로 써야 된다”라고 붙잡고 얘기했거든요. 우리 얘기는 쓰면 장편 소설 하나 나온다고 그러면서.
🥟만두맨: ‘내가 우리 집 여자들의 과업을 한번 해내보겠다!’
📍채영: 네. 그래서 그냥 이건 제 숙명 같았어요. 제가 얘기 듣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그것을 제 말로 한번 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만두맨: 저는 개인적으로 3부를 가장 좋아하는데요. 우리 책의 제목이 왜 ‘이것도 제 삶입니다’가 됐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 같아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이 병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여성주의를 접하게 되고, 소수자성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잖아요. 섭식장애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고통스럽지만 내 세계가 달라지고, 확장되는 경험이기도 했다는 것이 3부에 쓰여 있는데 그게 너무 좋은 거예요. 이 책은 당사자 혹은 당사자의 가족이나 주변인인 독자들께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접점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사회적으로 받게 되는 시선이 납작하기 짝이 없고, 그러다 보면 자기 인식도 축소될 수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것을 걷어차버리니까 완전히 시원한 느낌! 이런 것이 독자분들께 많이 가닿았으면 좋겠어요.
📍채영: 감사합니다(웃음). 3부 쓰면서 제일 재미있었고 제 청소년기를 많이 돌아보고 처음으로 애틋한 마음으로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내가 10대에 많이 불안했고 외로웠지만 잘 버텼구나. 그 시기를 볼 자신이 생겼어요.
🥟만두맨: 이 책을 쓰시면서 상정한 독자가 있다면요?
📍채영: 저의 지난 15년을 불안하게 봐왔던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가장 자신 있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심시키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 곁에 있는 사람이 아프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책하게 되잖아요. 직접 겪는 것이 아니기에 그 고통을 상상하다 보면 더 두려운 것을 상상하게 되기도 하는데, 제가 버틴 만큼 그분들도 옆에서 같이 버텨준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에게 충분한 자원이 되어주었다는 것에 감사했고, 고생했다고 전하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가장 책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두 번째는 아무래도 여기저기 숨어 있을 섭식장애 당사자들과 그의 가족, 엄마들이 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고통스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간 질병을 묘사하는 방식이 고통과 공포를 자극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어서 저는 그걸 가장 피하고 싶었거든요.
🥟만두맨: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채영: 책 많이 사주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