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선생님, 이제 선풍기나 에어컨 없이 살 수 없게 된 안희제입니다.
저는 오늘 인터뷰이 중 ‘홍대’를 만나고 직접 책을 전달하며 이야기를 나눈 뒤 신촌의 한 카페에 혼자 앉아서 답장을 쓰고 있어요. 본문에서 처음 등장하는 인터뷰이이기도 하고, 책의 방향성을 정하는 데 특히 큰 영향을 준 인터뷰이 중 한 명이기도 해서 뜻깊은 날이에요. 홍대 님이 이 책을 어떻게 읽어주실지 떨리고 설레네요.
책을 쓰면서 걱정이 많았습니다. 제 걱정이 가득 담겨서 A4로 10쪽을 넘겼던 첫 서문을 기억하시죠? 연구해서 쓰는 첫 책이라서도 그랬지만, 지난 일을 괜히 들쑤시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실제로 누군가가 힘든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 힘들어질까봐 걱정되는 것도 컸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떤 면에서는 걱정이 조금 과했던 것 같기도 해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이 원고의 시작이 된 리포트 〈“좋아하기 위해서 치열해진다”: 아이돌 ‘논란’ 속 망설임에 담긴 윤리들의 충돌과 확장〉의 경우 2부가 훨씬 큰 지금의 형태와 달리 절반 이상이 지금의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이었죠. 실제로 해당 리포트를 위한 프로포절의 제목은 〈기다리는 관심의 공론장: 캔슬 컬처와 아이돌 ‘논란’을 중심으로〉였으니까요.
온라인 공론장과 비주류 팬들의 이야기를 연결하게 된 계기는 사실 지극히 개인적이기도 했어요. 적지 않은 (인류학적) 탐구가 자신의 삶에서 출발하듯, 저 또한 논란을 겪은 팬이기도 해요. 아주 커다란 논란은 아니었고, 기본적으로는 돌판 안에서 터진 인성 논란의 한 변주였죠. 그런데 저는 덕질도 처음이고, 논란도 처음이었거든요. 너무 힘들었어요. 정말 한 이틀 정도는 잠도 설치고, 머릿속이 오직 그 논란으로 바글바글했던 것 같아요. 결국 그 논란에 대한 제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서야 조금 진정이 되었죠. 물론 인터넷에서도 다행히 곧 잠잠해졌고요.
그때 문득 생각이 들더라고요. 논란이 이렇게 많은데, 그리고 이렇게 힘든데, 팬들은 이걸 어떻게 견디고 있을까, 하고요. 그러다가 ‘관심경제’라는 개념을 수업에서 접한 거예요. 그때 저의 고민들이 갑자기 연결되기 시작했어요. ‘아, 조회수나 좋아요 개수와 같은 숫자 이면에 마음이 있다’ ‘관심경제 안에서 만들어지고 아파하는 마음이 있다’. 논란 있는 아이돌로부터 관심을 회수하는 탈덕은 물론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탈덕하지 못하는 데에도 제각기 이유와 감정들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들이 들기 시작했어요. 어쩌면 제가 겪은 감정을 어떻게든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지도요.
사실 저에게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비평과 비주류 팬들의 인터뷰를 엮어내는 것은 당연하기도 했어요. 요즘의 덕질이란 게 기본적으로 온라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데다가, 돌판은 논란이 끊이지 않는 곳이잖아요. 그런데 팬덤의 주류적인 의견은 온라인으로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어요. 기존의 연구들도 그런 방식으로 진행된 것들이 꽤 있고요. 하지만 팬들을 직접 만나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또 다르거든요. 저는 그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러한 마음들이 갖고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어요.
책에 서문에도 썼지만, 책의 제목이 될 뻔한 『불순한 공론장』은 공론장이 논리와 이성으로만 구성되지 않고, 오히려 마음과 더욱 깊이 관련된다는 의미였잖아요. 관심경제는 논란을 만들고, 논란은 공론장을 만들며, 그 안에서 어떤 팬들의 이야기는 가슴에 파묻혀 세상에 나오지 못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고요. 그래서 제게 온라인 공론장과 비주류 팬들의 이야기 사이의 연결은 자연스럽기도 했어요.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저는 공론장이 먼저 있고, 그곳에 논란이 들어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순서가 거꾸로입니다. 논란이 생기면 그때마다 특정한 공론장이 일시적으로 만들어지는 거죠. 그래서 특히 온라인 공론장은 기본적으로 조각보patchwork의 형태로 존재해요. 일관된 하나의 논리나 세계관이 있다기보다, 사건마다 다른 논리와 감정으로 모여드는 사람들과 댓글들과 계정들이 있는 거죠. 그것들이 서로 얼기설기 꿰매어져 있는 게 온라인 공론장이라는 거대한 공간이고요. 그래서 공론장이란 사실 언제나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수많은 행위가 지금도 세상을 만들어나가고 있고, 저는 우리가 그런 생성에 얽혀 있다는 점에서 언제나 세계에 대한 책임을 공유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수많은 사람이 말을 얹는 논란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저는 다른 마음을 통해 논란에 임하는 다른 태도를 발견하는 것이 다른 형태의 공론장을 생성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공론장을 개선하거나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돌판은 정말 역동적인 네트워크예요.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는 건 새로운 공론장이 계속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그런데도 왜 계속 비슷한 종류의 일이, 비슷한 형태로 처리되고 있는 걸까? 저는 이 지점이 신기했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종류의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나 비슷하다는 건, 무언가를 비슷하게 만드는 작동이 있다는 의미로 보였거든요. 그래서 어떤 네트워크가 돌판에서 공론장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알아야 했어요.
이런 고민은 이론적인 배경에서 오기도 했어요. 사실 편지에서는 이론 이야기를 안 하려고 했는데, 구성 자체와 이론이 많이 관련되어서 어쩔 수 없이 잠깐 얘기해볼게요. 『망설이는 사랑』 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학자의 이름은 주로 셋이죠. 브뤼노 라투르, 가브리엘 타르드, 그리고 사라 아메드요. 여기서 구성과 가장 깊이 관련된 건 라투르예요.
라투르는 행위자-네트워크-이론을 탄생시킨 이들 중 하나인데, 이 이론에서 핵심적인 전제 중 하나는 인간이든 아니든 모든 존재는 계속해서 변화의 과정 안에 있다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변화 자체가 특별한 현상은 아니에요. 오히려 무언가가 변하지 않는 게 신기한 거죠. 논란이 신기한 건 바로 그 지점이에요. 모든 논란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처리되는 방식은 이렇게나 비슷한 걸까. 무엇이 이 천차만별의 논란들을 다 비슷하게 만드는가. 이게 1부의 주된 내용이기도 하죠.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인간 아닌 존재를 모두 ‘행위자’라고 지칭하면서, 이들이 모두 행위를 한다고 해요. 소셜미디어 플랫폼, 알고리즘, 스마트폰 등을 댓글보다 더 깊이 분석한 건 그런 이유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방대한 네트워크를 쫓아가다보면 종종 놓칠 수 있는 게 사람의 표정, 거기에 담긴 감정이에요(물론 하는 사람의 역량에 달려 있는 것이겠지만요).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팬들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논란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행위자들 중에서 팬들의 마음에 깊이 들어가고 싶었고요. 2부가 길어진 건 그 때문이었어요. 인터뷰를 다시 들여다볼수록, 팬들의 일상적인 실천들 하나하나에 담긴 마음과 그것이 만들어낼 수 있는 공론장이 중요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렇게 2부를 쓰다보니 결국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비판적 힘으로서의 사랑에 관한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자꾸 사안에서 거리를 두자고 하고 멀어지자고 하는데, 외부로부터의 비판만이 적절한 비판이며 객관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과연 그런가요? 문제를 정말 해결하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온 사람들은 사안에서 거리를 두는 사람들이었나요, 아니면 사안에서 도무지 자신을 분리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었나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없다면 객관성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사랑이 무비판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저는 무언가를 사랑할 때만 가장 정확히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정말 정확한 비판을 하기 위해 드는 품을 감당하려면 사랑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걸 내부로부터의 객관성이든, 비판적 근접성이든, 뭐라고 부르든 간에, 사랑만이 가진 비판적 힘이 있어요. 어떤 철학자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쓰지 말라고. 아마 그 철학자는 사랑할 때만 비로소 갖게 될 수 있는 정확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맥락에서 『불순한 공론장』 이 『망설이는 사랑』 이 될 수밖에 없었던 건, 어떤 마음이, 어떤 사랑이, 더 정확한 공론장을 만들어내는지 보고 싶기 때문이었겠지요.
온라인 공론장이 곧 팬들을 행위하게 하는 하나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그 비평은 곧 현장에 대한 설명이기도 했어요. 다소 거칠게 나누자면, 1부는 현장 소개, 2부는 그 현장 속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팬들의 마음이 온라인 공론장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팬들의 마음이 온라인 공론장을 만들어내기도 하기에, 온라인 공론장에 대한 비평과 팬들에 대한 구술 작업은 한 덩어리일 수밖에 없었어요.
글을 수십 번은 족히 고치면서 원고를 지긋지긋하게 본 이후인 지금조차도 저는 어떤 인터뷰이들의 말을 다시 읽으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날 것 같은 때가 있어요. 저는 더 많은 분들이 이런 마음들을 들여다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마음을 들여다보는 건 그 마음을 통해 새로운 공론장을 만드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선생님께서 읽어주신 것처럼, 저도 망설임과 헤맴이 그 자체로 관심경제에 반하는 급진적 문제 제기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몸이 아파서 느릿느릿해서 그런지, 저는 좀 더 느린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좀 더 충분히 각 사안을 이해하고 들여다보며 그 안의 마음들을 접할 수 있는 공론장이요. 『망설이는 사랑』 이 그런 공론장을 만드는 데 조금은 기여할 수 있을까요? 정말 큰 꿈이겠지만, 제 책이 누군가가 삶의 어느 순간에 잠시나마 멈칫하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것 같아요.
공론장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여야 해요. 그때 비로소 우리가 서로를 잃지 않는 세상에 조금씩 가까워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편집자님이 저 자신보다도 제 원고를 더 아껴주신 것 같아서, 그리고 인터뷰이들의 마음에 감응해주셔서, 작업하는 내내 정말 감사했어요. 작업하는 중에도 몇 번 말씀드린 것 같지만,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