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셀카와 인생샷: 『인생샷 뒤의 여자들』 디자인 후기

🧞‍♀️디자이너 피차

표지 발주서가 메일함에 꽂힌 날, 문득 이유 없이 떠오른 이미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가수 채연의 ‘눈물 셀카’인데요. 발주서와 간략한 책 소개 글을 한차례 읽고 난 뒤에도 이 눈물 셀카의 잔상은 여전히 남아있었기에… 이왕이면 여기서부터 시작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여기’부터라 함은 이런 것들을 일컫습니다. 당대를 주름잡았던 싸이월드라는 SNS 매체와 작은 사각형을 꽉 채운 여성의 셀카의 만남. 그렁그렁한 눈과 볼을 감싸고 있는 꽉 쥔 손, 그 아래에 펼쳐지는 눈물에 대한 서시와 자기 긍정. 채연은 이 셀카로 모 방송에서 ‘미니홈피 흑역사 스타 1위’로 뽑히기까지 했다는데요. 흑역사 스타라니.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저변에 깔린 ‘허세다’ ‘오글거린다’라는 비아냥 섞인 평가는 모양만 바뀐 채 반복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비약일지는 모르겠으나, 싸이월드는 인스타그램으로 옮겨가고 눈물 셀카는 인생샷이라는 이름하에 수많은 모습으로 변형됐을지도요.

아무튼 저는 여성의 얼굴 사진이 가진 임팩트를 표지에 싣고 싶었습니다. 뒷모습보다는 앞모습을, 그림보다는 실제 인물의 사진을, 서양인보다는 동양인의 얼굴을 써보고 싶었어요.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이미지 사이트를 열심히 뒤졌고, 현재 표지에 쓰인 사진과 행운처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공간을 표지에서 보여주기 위해 무엇이 효과적일지 고민하던 중 일명 ‘스토리’ 기능에서 단서를 얻었습니다. 스토리에 사진을 업데이트하고 보고 있는 당사자, 즉 일인칭의 화면으로 설정했어요. 좌측 하단에 하트가 둥둥 떠다니고 있고 누군가 조회한 흔적이 반쯤 겹친 세 개의 동그라미로 남아 있는 건 스토리를 올린 당사자만이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거든요. 또한 표제와 부제에서 ‘뒤’라던가 ‘안팎’이라는 어감에서 나타나는 공간감을 살리고 싶어 스토리 이미지를 구석에 몰아넣고, 인스타그램 로고의 그러데이션에 있을 법한 진한 주홍색과 분홍색을 개별 박스로 만든 뒤, 이 박스들을 오른편으로 확장해 본문으로 길을 열어주게끔 배치했습니다. 각 박스의 구획에 따라 표지 문안의 글자들이 알맞게 자리 잡았어요. 앞표지에서 확장된 상자는 반전되어 뒤표지와도 이어집니다. 

단단하지만 경쾌한 느낌을 주기 위해 표지 대부분의 텍스트에는 위예진, 이수현 디자이너가 제작한 그레타 산스(산돌)를, 내지 본문 서체로는 함민주 디자이너가 제작한 함렡(하이퍼타입)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함렡은 본문 조판용으로는 처음 시도해봤는데요. 이 책이 서체로서 얼굴을 가진다면 명조도 고딕도 아닌 그 사이에서 열심히 제 길을 걷는 인상이 아닐까 싶었거든요. 씩씩하지만 날카로운 함렡 서체가 이에 딱 들어맞을 것이라 판단했습니다. 살짝 멋을 부린 느낌을 더하기 위해 쪽 번호 서체로 장식적인 느낌이 강한 AG 남상준체를 사용했습니다. 한 손에 집어 들기에 무리 없는 판형을 선택하니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 페이지 수가 나왔고, 자연스레 두꺼운 책등이 확보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래 들고 있기에 크게 무리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벌크지* ‘마카롱’을 내지 용지로 사용했고요. 표지 종이로는 매끈한 CCP 용지에 유광 인쇄를 덧입혔습니다. 긁힘에 취약한 용지이지만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이 책은 CCP 용지를 써야만 한다!'라는 강한 결심이 섰었거든요.  

책이 공정을 거쳐 독자 앞에 당도하기까지 수많은 결정거리들이 줄을 서곤 합니다. 원고에 디자인을 입혔을 때 형식과 내용이 잘 맞아떨어지는지, 안쪽 여백은 적당한지, 서체가 너무 작거나 행간이 너무 넓진 않은지 등등. 무한할 것만 같은 고민의 쳇바퀴를 열심히 굴립니다. 그러다 며칠 생각을 중단하고 인디자인 파일을 잠시 덮어두었다가 다시 열어 봤을 때 ‘이만하면 괜찮은데?’ 싶은 순간이 오면 그제야 편집자님께 파일을 넘깁니다. 이후에도 연거푸 수정된 파일이 인쇄소로 넘겨지면 책은 복잡다단한 인쇄 공정을 거쳐 비로소 물리적인 형태로 거듭나게 됩니다. 어쩌면 책 그 자체의 '인생샷'을 만들어내는 과정 또한 북디자인에 치환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문득 상상해보니 재미있습니다. 

*동일한 평량의 종이에 비해 볼륨감이 있어 두껍지만 동일한 두께의 책에 비해 훨씬 가벼운 종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