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지나 어느덧 춘분을 향해 가고 있어요. 경칩을 맞아 화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보로니아 한 단을 사와 화분에 심었습니다. 아직 고개 숙인 몽우리에 머물러 있는데도 향이 온 집을 뒤덮었어요. 하루에 몇 번 그 앞에 가서 코를 콕 박고 있습니다. 12월 끝자락부터 여태 시작에 관한 이야기죠? 그래도 이때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으니 실컷 누리려 합니다. 오늘은 그 마음을 끌어와 입문서에 관해 얘기를 해볼까 해요. 여러분의 이야기와 세계를 여는 곳에 종종 오월의봄이 함께이길 바라며 오늘의 레터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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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학기 맞이 입문서 추천 오월의봄'es s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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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과 삶의 긴밀한 연결성을 감각하게 하는 생생한 책
새 학기는 잘 시작하셨나요? 파주에 있는 저는 아직까지 내복을 입지만(누군가 내복은 개천절부터 식목일까지라고···) 완연한 햇살을 맞이하고 보니 마음만은 봄이고, 나름의 새 학기를 시작해보고 싶은 마음도 마구 듭니다. 오월의봄에는 정말 좋은 입문서가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퀴어, 젠더, 트랜스』(리키 윌친스 지음, 시우 옮김)는 퀴어이론에 입문하기에 더없이 좋은 책입니다. 리키 윌친스가 1990년대부터 30여 년을 활동안 젠더권운동가인 만큼 이 책은 운동 현장과 이론을 기막히게 아우르거든요. 이론과 삶의 긴밀한 연결성을 감각하게 하는 생생한 책이라는 점에서, 퀴어이론 입문서로 강력 추천합니다. 아니 그런데, 이론과 삶/운동의 연결성을 말하고 보니 이 책도 빼놓을 수가 없네요. 퀴어가족정치를 말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김순남 지음)를 말이죠. 혈연과 결혼으로만 가족을 구성할 수 있는 이곳에서 답답함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도 꼭 장바구니에 넣어두세요.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방법을, 가족을 저항의 언어로 다시 사유하는 길을 안내해준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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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세계 사이를 연결할 언어가 나에겐 아주 절실하게 필요했다
⏳모래
어떤 세계로 입문하는 계기는 실로 다양하지만, 저는 대부분 처음 맞닥뜨린 충격의 감각을 계속해서 잊지 않고 파고들기 위해 내게 없는 언어를 정립해준 사람들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의 세계를 확 열어젖혀 준 고마운 책 『짐을 끄는 짐승들』(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 유리‧장한길 옮김)을 소개합니다.
홍은전 선생님의 추천의 글에는 이런 내용이 나와요. 몇 년 전, 장애인들이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질병수당을 받지 못했던 주인공이 지원기관에 항의하며 했던 행동을 오마주해 '나는 개가 아니다, 나는 OOO이다'라는 구호를 장애등급심사센터 건물 외벽에 커다랗게 쓰는 시위를 했습니다. 이 시위 기사 아래에는 '개와 소, 돼지는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겁니까?'라는 문제제기 댓글이 달리며 격렬한 논쟁이 시작됐어요. 저도 같은 기로에서 어수선한 마음을 가졌던 기억이 있어요. 이 모두를 바라보던 홍은전 선생님께서 이어 '두 세계 사이를 연결할 언어가 나에겐 아주 절실하게 필요했다.'라고 쓰신 문장이 꼭 제 속이 하는 말 같아 저를 후벼파면서도, 이 책이 나에게 그 실마리를 가져다줄 것 같아 가슴이 뛰고 마음이 웅웅 울렸습니다.
수나우라 테일러는 선천적 관절굽음증을 가진 장애 당사자로, 유년 시절 고속도로 위에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닭 수백 마리를 실은 트럭을 마주한 뒤 동물 착취와 살해에 관해 '인식'하게 됩니다. 너무도 강렬해서 잊기 힘든 이 감각을 동물 문제로 연결시키고, 장애학의 렌즈를 통해 이를 바라보죠. 책은 장애가 있는 몸을 비정상화하고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상정하는 비장애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는데, 테일러는 여기에 단단히 스민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짐승의 몸'을 교차해 사유합니다. 동물과 장애가 맺고 있는 관계, 동물화와 병리화, '동물 불구', 비거니즘 등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사유는 장애해방운동과 동물해방운동이라는 영원한 불화 속에 있을 것 같은 두 운동을 이어주죠.
무엇보다 내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함부로 단정 짓지 않는 저자의 태도는 제가 몇 번이고 이 책을 다시 열게 해주었어요. 이 책이 벼리고 있는 문제의식을 적용해 번역하고, 상세히 설명한 역자의 각주도 이 책이 입문서로서 잘 작용하도록 중요한 역할을 해주고 있으니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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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더 많은 불온하고 편파적인 교과서가 필요합니다
📖 편독자
『장애학의 도전』(김도현 지음)은 ‘입문서’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단연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입니다. 이 책의 고유한 의미를 더욱 도드라지게 해주는 부제, ‘변방의 자리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다’를 꼭 함께 음미해보시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네요. 오월의봄의 여느 책들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객관성’을 표방하는 입문서는 아닙니다. 오히려 ‘객관성’이라는 것의 실체를 의문시하죠. 이 책을 편집하며 흔히 교과서의 덕목으로 알려져 있는 그 특성이 사실은 너무나 ‘주류 서사’를 지시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세상엔 더 많은 불온하고 편파적인 교과서가 필요합니다.
사회복지학, 재활학, 특수교육학 등 장애를 다루는 학문이 이미 존재하는데, 굳이 ‘장애학’을 접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결정적으로 장애학은 그 학문들과 시점/관점을 달리합니다. 그것들이 밖(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안(장애)을 바라본다면, 장애학의 시선은 안에서 밖을 향하죠. 이는 곧 ‘변방’의 시좌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좌에서 가시화되는 광경은 가령 이런 것들입니다. 여전히 지배적인 ‘우생학’ 논리, 장애인이 겪는 사회적 억압과 배제, 장애인의 자립 및 자기결정권 문제, 장애인의 노동을 향한 편견 등등. 그 자체로 대단히 중요하고 첨예한 화두를 이 책과 함께 차근차근 탐구해보세요.
기왕 이런 컨셉(?)으로 가게 된 마당에, 지배적인 입문서의 형식을 거부하는 입문서를 한 권 더 밀어보렵니다. “교과서를 초과하는 교과서”라는 수식어가 찰떡인 『국가에 관한 질문들』(기욤 시베르탱-블랑 지음, 이찬선 옮김)입니다. 이 책은 ‘교과서’라는 말 속에서 마땅히 떠올릴 법한 ‘하나의 정돈된 답안지’나 ‘보편적인 가계도’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이질적인 지형도’를 그려나갑니다. 국가를 둘러싼 복잡 미묘하고 다의적인 맥락들을 포착하기 위함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자면, 이 책에서 우리는 ‘국가 그 자체’가 아닌 ‘국가를 둘러싼 무수한 질문과 담론’을 만나게 됩니다. 프랑스혁명에서 시작해 러시아혁명을 거쳐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에 이르는 19~20세기의 200여 년간, 정치철학이 ‘국가’라는 대상을 중심으로 어떤 역사적·사회적 담론들을 축적해왔는지 생생히 살펴볼 수 있죠. 그 여정이 다름 아닌 국가의 우연성을 사유하는 것, 즉 “국가 그 자체와 동일시되는 정치철학”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정치철학 담론 자체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이야말로 오래 곱씹어볼 만한 지점이고요. 어려운 난이도를 뚫고 읽어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오묘한 입문서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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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라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세요!
🥟만두맨
“노동, 노동자, 노동권을 이해하는 첫걸음”을 부제로 정한 뒤 속이 후련했던 기억이 납니다. 평범한 문장이지만 이 책의 의도를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었기 때문입니다.
『모두를 위한 노동 교과서』(김철식, 김혜진 외 7명 지음/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기획)는 노동 분야의 여러 연구자, 활동가, 법률가들이 오래 머리를 맞대고 쓴 ‘노동 교과서’입니다. 여전히 노동 교육이 필수적 시민 교육이 아닌 상황에서, 이론과 현장이 만나는 쉽고 종합적인 개론서가 절실해서 세상에 나오게 된 책입니다. 그런 책을 만들려다 보니 노동, 신자유주의, 비정규직 등 전반적 개념을 시작으로 구체적인 노동 현실, 노동권(임금, 노동시간, 노동안전, 노조, 파업), 나아가 노동 관련 법제도까지 우리 사회의 노동을 구석구석을 담아내려고 저자들께서 무던히도 애쓰셨던 기억이 납니다.(게다가 담당자였던 저까지 입문서로 나갈 것이니 더 쉽게 써달라, 구체적으로 써달라, 사례를 더 들어달라며 오래도록 졸라댄 통에 더 힘드셨던 것 같고요).
이 책을 매만지며 저는 이 책과 함께 노동에 대한 관점을 바꾸고, 현실을 마주하고, 권리를 되찾을 누군가의 첫걸음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곤 했습니다. 여러모로 노동, 노동 인권에 대한 감각이 필요한 요즘, 이 책으로 시작해보시길 권합니다.
세 가지 질문, 다섯 가지 사상가와 함께 떠나는 페미니즘 철학으로의 여정
🥟만두맨
‘페미니즘’ 입문이 아니라 ‘페미니즘 철학’ 입문이라고 합니다. 페미니즘 철학이란 무엇일까요? 여성이 하는 철학이 페미니즘 철학일까요? 아니면 가부장제 철학에 반대하는 안티철학이 페미니즘 철학일까요? 우리는 왜 페미니즘 철학을 알아야 하는 것일까요?
『페미니즘 철학 입문』(김은주 지음)은 페미니즘과 철학이 만나는 자리(‘페미니즘 철학은 무엇인가’), 여성의 지위(‘여성은 인간인가’, 여성은 누구인가(‘여성인가, 여성들인가’)라는 세 가지 질문으로 짜여 있습니다. 그리고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시몬 드 보부아르, 베티 프리단, 슐라미스 파이어스톤, 오드리 로드의 삶과 핵심 저서를 중심으로 그들의 사상을 통과하며 이 세 가지 질문을 함께 사유해 나갑니다.
이 여정들 속에서 저자는 페미니즘 철학의 자리를 철학의 세계에 단단히 자리 잡아둡니다. 타자인 여성이 자신을 억압해온 기존의 철학을 도구와 재료로 삼아 기존의 사고와 가치를 부수고 새로운 개념으로 창조하는 것으로 페미니즘 철학을 소개하죠. “기존의 철학을 겹쳐 쓰고 같이 쓰면서 뿌리 깊은 기성 철학의 입장에서 벗어서 어디서든지 살아낼 수 있는 다양한 사유들의 목초들, 풀들을 자라나게 하는 일”이라는 문장을 보며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납니다.
페미니즘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책과 사상가를 중심으로 지금 여기의 문제와 삶을 함께 엮어내는 저자의 목소리 덕에, 이 책은 충실한 입문서이면서도 대단히 현재적입니다.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그리고 거대한 백래시의 흐름 속에서 페미니즘을 둘러싼 권력, 차별, 혐오의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섬세한 관점을 얻을 수 있고요. 새로운 세계관과 겪어본 적 없는 자매애을 상상하는 시작에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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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역사는 어느 순간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걸어가는 연습생
왜 극우 세력은 5.18에 대해 망언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요? 『너와 나의 5.18』(5.18기념재단 기획, 김정인 외 지음)의 필자들은 단호히 말합니다. 그들이 그토록 5.18을 왜곡하는 이유는 아직도 5.18에 대한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다시 또 5.18을 말해야 한다고.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등 국가와 관련된 대형 사건이 계속되는 한 5.18은 결코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고 말입니다.
이 책은 대학생을 위한 교양서로 기획됐습니다. 5.18 당시 광주 시민들은 목숨을 바쳐 부당한 권력과 싸우며 한국사회에 커다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책의 필자들은 그 질문들이 무엇이며,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5.18이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진실은 무엇인지를 파헤칩니다. 그리고 5.18이 지금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인식하고, 나 자신이 피해자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공감할 때 5.18은 ‘우리 모두의 5.18’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이후 우리의 역사는 어느 순간 반복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독재자 이승만과 박정희가 다시 ‘국가의 위인’으로 되살아나고 각종 제도가 후퇴하고 있다고 느껴지니까요. 여러 번 비극을 겪고도 제대로 된 반성이나 평가를 하지 못하면 역사는 늘 이렇게 안 좋은 쪽으로 반복된다고 여러 사람이 경고하기도 했죠.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서중석 답하다, 김덕련 묻고 정리하다)라는 시리즈가 있습니다. 무려 20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예요. 1945년 해방의 순간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 현대사를 다룬 여러 책들이 있지만, 그 책들은 대부분 역사의 큰 흐름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다룬 경우가 많았습니다. 반면 이 시리즈는 구체적 사실을 충실히 반영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총체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즉 한눈에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짚을 수 있고,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해주는 소중한 시리즈입니다. 단언컨대 이 책들을 읽으면 더는 이승만, 박정희를 ‘국가의 위인’으로 생각지 못할 겁니다. 그들이 얼마나 한국의 경제, 사회, 문화에 해악을 끼쳤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시리즈는 또 ‘살아 있는 민주주의 교과서’이자 ‘민주화 운동사를 총정리한 책’이기도 합니다. 한국 현대사만큼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닫게 해주는 스승도 없을 겁니다. 이 시리즈에는 독자들이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4월혁명‧부마항쟁‧광주항쟁‧6월항쟁 등 여러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분간 계속해서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이 등장할 겁니다. 필요할 때마다 역사책을 들춰보며 그들에게 저항할 필요도 있을 듯해요. 20권으로 이루어진 시리즈이지만, 단권으로 읽어도 무방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이만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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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을 만드는 사람》
마창거제산재추방운동연합(산추련) 기획 | 이은주·박희정·홍세미 글
이주노동자는 한국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정작 그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가끔 뉴스에서 인권 침해와 노동 착취의 피해자로서만 이따금 등장할 뿐이죠.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결코 무력한 피해자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국사회가 자행한 인권 침해와 노동 착취에 저항하고, 오랜 투쟁 끝에 이주노조를 합법화시킨 장본인들이기도 하죠. 또한 공동체를 꾸려 힘든 이주 생활에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차별 없는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유로운 연대를 실현해오고 있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노동자로, 예술가로, 활동가로 다양한 삶을 일궈내면서요.
그 다채로운 투쟁과 삶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이주 활동가의 목소리로 듣는 이주노동자들의 ‘진짜’ 이야기가 3월 말 찾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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