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회의 도중 동료들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22일 오늘이 딱 저의 입사 1년이 되는 날이거든요. 그래서 갑자기 이번 레터에는 저의 1주년 소회를 적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수상 소감도 아니고 이제 겨우 1년이 되었는데 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제가 일한 기간이 여러분과 만난 기간이기도 하니 결과적으로 저는 쓰게 되었습니다(!)
아래에는 오월의봄 사람들의 은밀한 한주에 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늘 레터 시작할게요🕊️
오늘 제 휴대전화 디데이 어플에는 +366이라는 숫자가 떠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우연히 제 휴대전화 배경 화면에 있는 위젯을 보면 한마디씩 하곤 했어요. "설마 디데이 해 놓은 거 회사 입사일이야···?" 그렇습니다. 좋아하던 출판사에서 일하게 된 것을 기념하고 싶었던 듯해요. 이제는 불어나는 날짜를 보지 않고도 제가 여기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처음 출근할 때 파주에는 약간의 건더기만 남은 듯한 나무들이 있었고, 저는 위의 사진처럼 푸르러진 나무들을 보며 일 년을 보냈습니다. 이제 다시 아름다운 건더기들이 제 출근길을 반기네요! 메일을 보내드리기 시작한 것은 2022년 1월이니 여러분 메일함에 찾아간 것도 얼추 1년이 되어 가요. 동료 편집자님들의 '편집 후기' 디자이너님의 '디자인 후기'에서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덧대었던 생각과 문제나 의제에 관한 치열한 고민과 물음, 함께 작업한 사람들에게 느끼는 존경 등을 읽어낼 때 '나도 이런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습니다. 비슷한 듯 다르지만 저도 '우당탕(?) 조금 솔직한 마케팅 후기'쯤 되는 글을 써볼까 해요.
제가 처음 오월의봄에 들어왔을 때 출간된 책은 『병역거부의 질문들』입니다. 제 책상에는 며칠 이 책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어요. 출간 후 원고를 읽기 시작하는 건 지금 생각하면 시간상으로 답 없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땐 그 책을 그냥 열심히 읽었습니다. '와, 일하면서 책을 읽어. 완전 대박 복지'라는 생각으로요. 주변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맡게 된 첫 책이 진짜 좋거든. 『병역거부의 진실들』이라는 책인데 좀 사서 읽어봐···." 알맹이 없이 무작정 말하면서 정신 없이 책 제목도 잘못 말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한 농민의 삶과 죽음』이 나오고 저는 괜히 수려한 갈대밭에 찾아가 책을 놓거나, 일단 나무에 대고 책 사진을 예쁘게 찍고, 좋았던 구절을 올리고,『유언을 만난 세계』가 출간되고···. 생초짜인 마케터를 만나게 해서 그 책들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시간은 계속 흘렀고 일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괴롭지 않게 보내면서도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고민 덩어리가 늘 저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숫자를 자주 만져 오른쪽 숫자칸이 없는 키보드는 구입하지 않지만, 점점 그것 말고도 내가 한 책을 어떻게 읽어내고 요약할 것이며, 어떻게 독자들이 함께 감응하길 바라거나 시의에 맞는 이야기를 각 홍보 채널에 맞는 시대적 언어로 재조합할지에 골몰했어요. 그러다가도 <이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출판 마케터가 뭐 하는 사람이지?→책 팔고 알리는 사람→책 팔아서 돈을 벌도록 하는 사람→어떻게?→책을 읽고 소개하고 재밌는 이벤트도 하고 협업도 하고 영업도 하고 그래야지→이게 (다가) 맞아?>의 수순의 생각이 빈번했죠. '근데 너 왜 어디 가서 책 잘 파는 마케터가 되고 싶다고 안 해? 설마 지식이나 예술이나 신념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불순하다는 생각을 주입 받은 거야···? 그래서 책 잘 파는 마케터 말고 그냥 책 잘 알리는 마케터가 되고 싶은 거야? 여긴 회사야. 너 혼자 책 읽으면서 감명받는 도서관이 아니라고!' 별생각이 다 들기도 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는『집으로 가는, 길』을 읽으면서 처음 탈시설의 세계에 관해 알게 되었어요. 지하철 시위 현장에 다녀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안다는 것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모르겠고 어떤 일이나 한 사람에 대한 전적인 이해가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책은 확실히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끌 수 있구나, 이 느낌을 많은 사람들과 같이 느끼고 싶다, 라는 생각을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열심히 책을 잘 알려보고자 합니다. 그러면 잘 팔리겠죠? 물론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여러 기술과 촉, 경험을 연마해야겠지만요...!
오월의봄의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도 제 1년이 충만했던 이유입니다. 덩그러니 책이랑 놓여져 있던 제가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어요. 기다려주시고 도와주신 덕분입니다. 점점 수상소감처럼 변해가고 있어 이만 줄일까 합니다. 이제 더 이상 동료 편집자님들께 메시지를 보낼 때 맞춤법 검사기를 돌리지 않고 보내지만, 아직도 놓치는 것들이 있을까 걱정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네요. 그래도 한결을 이기는 것은 없으니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일해보렵니다. 마지막으로 오월의봄에 애정을 보내주시는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의 인사 전합니다! 🐣
오월의봄에는 지난 한 주간 (아마도) 긴장감이 맴돌았습니다. 마니또를 하기로 했거든요. 뽑기로 각자의 마니또를 뽑은 뒤 몰래 선물을 전하고 자신의 마니또가 누구인지 이 레터를 통해 확인하기로 했어요. 저는 원고를 미리 받아 여기 옮기면서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에 약간 뭉클해지기도 했답니다. 누군가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마니또! 여러분도 선물을 정하실 때 힌트가 되길 바라요!
⛺캠퍼H→📚편독자
책 『리아의 나라』+ 귤
기지가 번득이는 선물을 준비하고 싶었지만 결국 이보다 더한 월동용품은 떠올리지 못했네요. 책과 귤. "나는 언제나 가장 볼만한 것은 중심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다른 무엇과 만나는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편독자님이 만드는 책들이 떠오르는 책 속 한 문장이었어요. 진득하면서도 치열한 편독자님의 행보에 저도 마음을 다잡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늘 응원하고, 작은 선물이지만 겨울나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편독자→🎨가내수공업자
귀염'둥이' 파우치
저의 마니또는 북디자이너 가내수공업자님입니다. 어떤 선물을 사야 하나 궁리하다가, 문득 가내수공업자님의 사랑스러운 반려견 ‘둥이’가 떠올랐죠. 가끔 사무실에 출근(?)하곤 하는 둥이는 일정 시간마다 모든 이들의 책상을 순회 돌며 애정과 사랑을 수거해가는 애교쟁이 비숑입니다. 그 천진난만한 얼굴을 떠올리는 순간, 몇 달 전 장바구니에 고이 넣어두기만 한 파우치가 생각났어요. 둥이와 판박이인 귀여운 비숑이 점점이 박힌 파우치였거든요. 이제야 결제의 동기를 찾은 거죠 ㅎㅎ 파우치의 주인은 제가 아니라 가내수공업자님이었습니다. 어디서든 귀염'둥이'와 함께하시길!
🎨가내수공업자→⏳모래
비건 피스타치오 스프레드 + 반려동물 간식
저는 우리 출판사에서 탕비실 간식 담당을 맡고 있습니다. 각자의 취향을 반영하기도 하고 제가 좋아하는 것을 사기도 하는데요. 제가 마니또를 하게 된 모래 마케터님은 비건입니다. 비건 간식의 불충분을 이번 마니또로 조금 사죄하고자 제가 최근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를 준비했고, 더불어 모래님의 동물 가족을 위한 간식도 준비했어요. 피스타치오 스프레드에는 설탕 함유량이 많아서 충분히 달달하고 당연히 피스타치오의 고급진 고소함이 가득합니다. 구운 빵 위에 살짝 발라 먹으면 엄청나게 중독됩니다. 맛있게 드세요.
⏳모래→🚶♂️서패동 뚜벅이
음반 - 정밀아 3집 <청파소나타>
최근 원통형 베개를 구입했는데 아침에 정말 개운해서 관절 문제 동지(?)인 뚜벅님께도 선물할까 생각했어요. 몸에 따라 편차가 심할 것 같아 고민하다 뚜벅님과 최근 노래에 관해 짧게 이야기 나눈 것이 떠올랐습니다. 요샌 정밀아님의 음악을 듣는다고 하셨죠. 19화에서 뚜벅님은 쉴 때나 마음이 힘들 때 음악을 듣는다고 쓰셨는데, 쉼이나 위로 무엇이든 간에 누리셨음 하여 음반을 준비했습니다. 여기 수록된 「오래된 동네」 의 "오래된 도시에 더는 오래된 것들이 없고/ 오래된 동네에 더는 오래된 사람이 없네"라는 가사를 들으며 동네 산책에 애정을 보이는 뚜벅님이 떠올랐답니다. 편집하신 『가난이 사는 집』도요(깨알홍보). CD 플레이어를 갖고 계신지는 못 여쭤봤어요···. 비밀 마니또라···.
🚶♂️서패동 뚜벅이→🥟만두맨
화장품 - 탄력크림과 미백앰플
책을 살까? 아니면 옷? 만두맨께서 뭘 좋아할지 여러 차례 고민했습니다. ‘~에 관심 없다’는 말을 종종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더 고심했던 듯해요. 그래, 제일 좋아하는 건 먹을거리였지. 먹을 걸 사러 갔다가 화장품이 눈에 띄었습니다. 화장품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고, 내려놨다 들었다를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좋아할까? 화장품 또한 만두맨의 관심 대상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먹을 것 대신 화장품을 택했습니다. 로션을 바르고 자신을 챙기는 만두맨의 모습이 나빠 보이지 않아서였습니다. 혼자만 발라요~
🥟만두맨→⛺캠퍼H
팥쟁이 선물 세트
함께 일하는 캠퍼H는 오월의봄의 제일가는 팥쟁이입니다. 한여름에는 팥빙수를 사먹다 사먹다, 종내에는 가정용 빙수 기계를 집에 들여 팥빙수를 만들어 먹는 자이기도 합니다. 그런 그를 위해 팥쟁이 선물 세트(미니 붕어빵+단팥 호떡+쑥 찹쌀떡+단팥빵)를 나름 고심해서 구성해보았습니다. 뚝심 있게 책을 내는 멋진 편집자이자, 특유의 유쾌함과 배려심으로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고마운 동료인 그에게 이 선물이 따뜻한 한입의 응원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출간 뒤 코로나의 영향으로 독자분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를 가지기 어려웠던 책들이 많았죠.
『세상과 은둔 사이 』가 드디어 독자 여러분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한국현대사를 전공하는 역사연구자이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로 계신 저자 김대현 선생님의 북토크가 열려요.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기획운영위원이자 『가족을 구성할 권리』공동 편저자로 함께하신 나영정 선생님께서 진행을 맡아주십니다. 같이 이야기 나눠요!